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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세상을 읽는 눈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5월 주제는 ‘세상을 읽는 눈’입니다. 어떤 국가가 번영하고 어떤 국가가 쇠락하는지, 문명화된 사회에서 왜 반지성주의가 득세하는지,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지 등을 짚어보는 세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스파르타도 출산율 저하로 망했다
다시, 국가를 생각하다
토드 부크홀츠 지음
박세연 옮김, 21세기 북스
488쪽, 2만2000원
 
오늘날 국가는 위기를 맞고 있다. 국경은 더 이상 국민들에게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하지 못한다. 양차대전이라는 거대한 외부 위협을 잘 막아낸 국가들조차 내부로부터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위기의 원인은 다양하다. 1988년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서 군사력의 과도한 확장이 초래한 국가 위기를 지적한 이후, 대런 에스모글루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에서 ‘빈곤’을,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2014)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지그문트 바우만은 『위기의 국가』(2014)에서 ‘정치 부재’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여기에 저자는 ‘국민들 사이의 분열’이라는 치명적 이유를 보탠다.
 
분열이 치명적인 이유는 ‘성공한’ 나라에서 빚어지는 ‘번영의 패러독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분열의 이유로 가장 먼저 출산율 저하를 든다. 진부한 얘기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출산율 저하란 오늘날 갑작스럽게 생겨난 문제가 아니다. 기원전 5세기 천하무적이었던 스파르타도 출산율 저하로 망했다. 잇단 전쟁으로 토지와 노예를 소유하게 되면서 스파르타인들은 자녀의 노동에 의지할 필요가 없었다. 기원전 4세기 초반에 스파르타의 인구는 80퍼센트나 감소했다. 그야말로 스스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한때 천하무적이었으나 이제 사라져버린 스파르타. 적의 공격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인구 감소로 서서히 몰락했다. 사진은 스파르타 전사들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300’의 한 장면. [사진 중앙포토]

한때 천하무적이었으나 이제 사라져버린 스파르타. 적의 공격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인구 감소로 서서히 몰락했다. 사진은 스파르타 전사들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300’의 한 장면. [사진 중앙포토]

나폴레옹 이후의 프랑스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풍요는 출산율 저하를 초래하고 이는 국가 쇠퇴로 이어졌다. 출산율이 대체율(여성 한 명당 2.5명) 밑으로 떨어지면 이민자의 유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민자는 결코 환영 받는 존재가 아니다. 오늘날 서구사회 분열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이민자 문제지만 그것 역시 얼마 전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20세기초 영국의 노동운동가인 벤 틸렛이 학살을 피해 영국에 이주한 유대인 노동자들에게 한 환영사는 이랬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여러분에 대한 의무를 다할 것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이 땅에 오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몇 가지 이유를 더 들며 분열의 원인을 분석한 저자는 위기를 극복할 리더십을 역사에서 찾는다. 2부가 돌연 알렉산드로스와 터키의 아타튀르크, 일본의 메이지,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등의 영웅전으로 바뀌어 조금 당혹스럽다. 하지만 “이것도 나라냐”는 자괴감이 팽배한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이 읽고 우리도 전혀 예외가 아닌 문제들의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술술 읽히는 사람 이야기가 훨씬 수월할 테니 말이다.(1989년 나온 첫번째 책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서 증명됐듯 뛰어난 ‘글발’로 1부도 술술 읽히지만)
 
윌리엄 워즈워스는 “서로 다른 것들을 화해시켜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게 만드는 알 수 없는 힘”을 노래했다. 저자는 그런 신화가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이민자들까지 단결시켜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이다. 그래서 신화와 전설이 될 수 있는 영웅들의 오점을 찾아내기 위한 시도들을 안타까워하는데, 이승만·박정희 공과(功過) 논란이 끊이지 않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S BOX]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 ‘애국주의자 선언’
저자는 결론에서 ‘애국주의자 선언’이라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애국주의자(patiotist)’란 저자가 만든 신조어로, 막연히 애국심을 느끼는 ‘애국자(patriot)’와는 달리 애국심을 갖는 게 사회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민족적이고 배타적인 애국 보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글로벌 애국자인 셈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패러디한 선언을 읽어보자. 앞부분만 읽어도 오늘날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터다.
 
“자유주의 국가들에 유령이 떠돌고 있다. 그런데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은 질병이나 폭력 혹은 빈곤을 먹고 자라지 않는다. 대신에 현대의 번영과 교육받은 시민들을 뭉치게 하는 신화와 마술, 경외 그리고 매혹을 저버리고 외면하며 경멸하도록 만드는 힘을 먹고 자란다.”
 
이훈범 논설위원 cielbleu@joongang.co.kr
 
1년에 책 한 권도 안 사는 가정이 80%인 미국
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유강은 옮김, 교유서가
680쪽, 3만5000원
 
어느 시대나 야만과 문명, 지성과 반지성이 동거한다. 역설적으로 야만과 반지성은 문명과 지성에 자극을 준다. 힘을 북돋아준다.
 
미국은 지성과 반지성이 기묘한 균형을 이루는 나라다. 세계 최대 출판 대국이자 가정의 80%가 1년에 단 한권의 책도 사지 않는 나라다. 세계 최고의 대학들이 밀집한 나라지만 대학 교수들의 사회적 지위는 형편없이 낮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미국의 ‘지성·반지성 패러독스’를 해부한다.
 
1964년 퓰리처상을 받은 이 책은 미국에서 전개되는 지성·반지성의 주기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출간 당시 ‘미국의 지적 우월감을 한방에 날려버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티파티·트럼프 현상을 분석할 때 인용되는 생명력 있는 책이다. 2017년 한국의 반지성주적 현상을 해부하는데도 영감을 준다.
 
저자에게 지성이란 완전한 자기 확신을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는 마음과 생각의 습관이다. 그에게 반지성주의란 “지성이 이끄는 삶과 그런 삶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며 지성적인 삶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깎아내리려는 성향”이다.
 
미국의 반지성주의와 극우 보수주의와 복음주의의 연결고리를 논설한 이 책은 ‘반지성주의의 득세를 개탄하며 지성주의의 복원을 희구하는’ 상투적인 해석과는 거리가 먼 세련된 책이다. 당대 미국 최고의 역사학자였던 저자 리처드 호프스태터(1916~1970)에 따르면 반지성주의는 민주주의에서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또 반지성주의는 미국 역사의 시원부터 민주주의, 평등 사상과 한 몸이다. 반지성주의는 미국의 수치가 아니다. 저자가 환생한다면 ‘트럼프는 미국의 수치다’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관심 먹고 자라는 정치 … 서민 가슴에 금배지 달아야
서민적 정치
서민 지음, 생각정원
252쪽, 1만4000원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 있으랴.’ 요순시대의 한 농부가 읊었다는 격양가(擊壤歌)다. 이 책은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격양가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 자라는 정치,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기 때문이다.
 
무관심한 정치는 뼈아팠다. 책의 저자인 서민 교수는 사례를 멀리서 찾지도 않는다. 2014년 11월 ‘정윤회의 국정 개입 의혹’이 보도됐지만 국정개입 보도 5일 뒤, 우리의 관심은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에 쏠리고 만다. 그렇게 우리는 ‘최순실 국정농단사태’를 좀 더 일찍 수면 위로 드러낼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렸다.
 
청년들에게는, 이전 19대 국회와 이번 20대 국회에 비례대표가 아닌 20·30대 지역구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이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30년 전 12대 국회로 가보자. 당시 비례대표를 뺀 지역구 의원에만 30·40대 국회의원이 52.2%를 차지했다. 17대 국회에서도 44%였다.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가질 여력이 없다’고 하소연하지만 결국 그 하소연이 청년의 삶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서민 교수는 정치 고령화 사회를 종식하고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청년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가 어디 무관심뿐이랴. ▶색깔론 ▶지역감정 ▶영남 패권주의 등은 정치혐오를 더더욱 부추긴다. 서민 교수는 투표 연령상한제, 국회의원 정년제 같은 발칙한 제안도 하지만 무엇보다 300명 국회의원의 가슴이 아니라, 우리 서민들 가슴에 금색 배지를 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서민 교수 특유의 경쾌하고 시원한 글쓰기가 돋보인다. 정치를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이는 없다. 그것이 저자 서민이 말하는 서민적 정치이자, 서민들 하나하나가 정치적 주체가 되는 서민적 정치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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