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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토크①] 이성진 "딱 한 번의 도박, 전 재산 날렸죠"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NRG 출신 방송인 이성진은 '자숙의 아이콘'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7년이라는 세월 동안 대중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오랜만에 만난 이성진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여전히 위트가 넘쳤고 '아재 개그'를 펼치며 개그 욕심도 부렸다.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건데 어두운 이야기보다는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각오하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한순간의 어리석음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2박3일 동안 십여 년간 모은 재산을 탕진했다. 사기 사건까지 연루됐다. "정신적 사망 상태"라는 말을 언급하며 낚시터 컨테이너에서 생활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대중들에게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욕도 감당할 만큼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NRG는 올해 데뷔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팬미팅을 가졌다. 그리고 오는 11월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 발매를 약속했다. 이성진도 개인 활동에 대한 포부를 드러냈다. 하지만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저는 인기와 돈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미 다 잃었던 사람입니다. 대중과 방송국에서 저를 원하고 불러준다면 주변 분들을 빛내면서 즐겁게 해보고 싶어요."




- 공식질문입니다.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컨디션에 따라 달라져요. 기본적으로 소주 한 병 반 정도 마셔요.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면 미리 약도 챙겨 먹고요. 가끔 분위기가 좋으면 3~4병 정도 마셔요."

- 많이 드시네요.
"맞으면서 술을 배웠어요. 안재욱씨한테.(웃음) 제가 손목이 안 좋은데 15년 넘게 형들 폭탄주 만들다가 이렇게 됐어요."
 
- 굉장히 오랜만에 얼굴을 비치는 거예요.
"마지막 방송이 2010년이었어요. KBS N joy '꽃미남 포차' 이후 7년 동안 자숙의 시간을 가졌죠. 자숙이라기보다 실수한 부분이 있어서 인생공부를 했죠. 힘든 시간이었지만 좋기도 했어요. 오랜만에 이런 자리에 오게 돼서 반갑고 기쁘고 설레고 걱정도 돼요."

- 떨릴 것 같아요.
"사실 2009년에 사건이 터질 걸 알고 있어서 예능을 하면서도 즐겁지 않았어요. 애드리브를 해도 눈치를 먼저 봤죠. 이젠 마음 정리가 된 것 같아요. 물론 대중들의 반응은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SNS도 안 해서 반응을 잘 몰라요.(웃음)"


 


-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일요일마다 '재미 삼아' 연예인 야구팀에서 운동을 해요. 울산에서 음식점 오픈을 준비 중이고요."
 
- 도박을 했죠. 
"사람들은 상습적인 줄 아는데, 딱 한 번이에요. 2박3일에 십 년간 모은 돈을 다 날렸어요. 어리석었죠. 어린 마음에 오기도 있었고 승부욕도 있었어요. 잘못된 선택이었죠. 어렸을 때부터 경제 활동을 했으니 '금방 또 벌 수 있어'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 사기 사건도 연달아 터졌어요.
"도박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사기까지 겹쳤어요. 사실 건달들에게 도박 빚을 졌어요. 그들이 빌려준 돈을 받으려면 민사를 걸어야 하는데 도박장에서 빌려준 건 불법이니까 사기 소송을 건 거예요. 이미 도박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던 상태라 사기로 또 걸려도 잃을 게 없었죠. 정신적으로 사망상태였어요. 그래서 집행유예를 받았죠."

- 그러다가 음주운전을 했어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요. 연예인도 못 하고 돈도 없고, 어머니도 고생하시고. 그 다음부턴 술만 마셨어요. 그러다가 운전대를 잡은 거죠. 정말 후회스러워요. 용서받고 이해받고 싶진 않아요. 그냥 제가 잘못한 거예요."

- 반성을 했나요.
"이 일 말고 누구한테 해를 끼친 적이 없어서 자괴감이 많이 들었어요.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누구를 원망하진 않아요. 또 저는 누구한테 연예인이라고 티를 내본 적도 없고 누구한테 이득을 얻고 싶지도 않았어요. 누구한테 짐이 되는 것도 싫어해요. 그런 면에서 저를 욕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 우울증이 있었나 봐요.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는 걸 알면서 병원에 가기 싫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병에 대해 알게 되는 게 싫었어요. 연예인들은 누구나 다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 어떻게 이겨냈나요.
"가게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사람들이 저를 '열심히 살고 있구나'라는 눈빛으로 보니까 좋아졌어요. 상황이 가장 안 좋았을 때 세월호 사건이 터졌어요.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도 내 일처럼 우울해했고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요."
 
- 지금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어려움을 좋은 쪽으로 이겨내야 되는데 어리석게 나쁜 쪽으로 풀려고 했어요. 그게 정신을 차리게 된 계기였어요. 여러 가지 고비가 있었지만 아직도 전 살고 있잖아요. 다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 그렇게 울산에 내려간 건가요.
"아는 형님이 '멍 때리지 말고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 걸 찾아 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때 그 형님이 리조트 관련 사업을 했는데 그것과 연관되는 여행 사업을 했어요. 그때부터 정신이 돌아왔어요. 그러면서 어머니도 울산으로 모시게 됐죠."


 


- 자숙 기간에 힘들었나요.
"대중들도 이미 제 성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막에 떨어뜨려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 스타일이에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저를 걱정하는 게 힘들었어요."
 
-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요.
"인기가 많다고 돈도 많이 번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냥 어렸을 때부터의 본업이 가수·방송인이다 보니 다른 일을 하니까 치이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가게를 할 때는 안 해봤던 분야라 힘들었고, 쉬고 있으면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걱정이 많았죠. 4년 전엔 안 좋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분이 신고해서 119에서 왔는데 제가 술을 엄청 마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는 건 분명 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살던 건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거죠."

- 많이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면요.
"(안)재욱 형도 뇌수술을 받고 죽다 살아났잖아요. 그리고 회복해서 결혼도 했고요. 재욱이 형이 새 삶을 사는 기쁨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줬어요."

- 자숙 기간이 길어진 이유는 뭘까요.
"두려움이 70 정도 됐어요. 방송하는 게 즐겁지 않을 것 같았어요."
 
- 방송을 즐겁게 한 적은 없나요.
"사고가 터지기 전엔 즐거웠어요. 제 모토는 '내가 즐거워야 다른 사람도 즐겁다'예요. 절 보고 웃어주는 것에 만족하고 살아왔어요."

※②편에서 이어집니다.
 
이미현 기자
사진=박세완 기자, 영상=이일용 기자, 편집=민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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