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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곡선’ 실험한 레이건처럼 … 트럼프, 감세로 경제 살릴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참모인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왼쪽)과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이 26일(현지시간) 세금개혁안을 발표했다. 법인세 20%포인트 인하 등이 주요 내용이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참모인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왼쪽)과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이 26일(현지시간) 세금개혁안을 발표했다. 법인세 20%포인트 인하 등이 주요 내용이다. [AP=뉴시스]

급진적인 세금 감면(radical tax cut).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감세정책에 대한 블룸버그의 평가다. 실제로 한 번에 법인세를 20%포인트나 인하한 전례는 없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법인세 인하 폭은 12%포인트였다. 트럼프는 법인세 인하가 기업의 생산과 가계의 소비 활동을 자극해 세수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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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 감면은 세계적인 추세다. 2002년과 2017년을 비교하면 영국과 독일, 스페인은 각각 11%포인트, 프랑스는 1%포인트 인하했다. 2000년대 신자유주의 열풍과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기업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법인세를 경쟁적으로 낮췄다. 한국도 27%에서 22%로 5%포인트 내리며 이 흐름에 올라탔다.
 
최근 법인세 인하 바람은 더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3월 영국이 2020년까지 17%로 인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에마뉘엘 마크롱도 법인세를 25%로 내릴 계획이다. 2013년 법인세를 조정한 일본에서도 추가 인하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한국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주요 대선주자들이 복지재원 조달을 위해 법인세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실효세율을 올리고, 그래도 세수가 부족하다면 명목세율까지 인상한다는 계획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최고 과표 구간을 신설해 이익이 많이 난 기업의 세금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법인세율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만 법인세 인상에 부정적이다.
 
감세는 경제의 공급 측면을 자극하는 조치다. 저축 증가, 이자율 하락, 투자 및 고용 증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감세를 통한 공급 확대의 이론적 배경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이던 아서 래퍼가 가운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그래프 ‘래퍼 곡선’(Laffer Curve)을 통해 처음 제시했다. 74년 미국 워싱턴의 한 레스토랑에서 딕 체니, 도널드 럼즈펠드와 식사하면서 냅킨에 감세 이론을 설명하는 그래프를 그린 일화로 유명하다. 래퍼는 당시 대통령인 제럴드 포드에게 이 이론을 전달하기 위해 백악관 비서실장이던 체니에게 설명했다.
 
이론의 원리는 간단하다. 세율이 100%라면 모든 소득은 세수로 걷힌다. 이 경우 경제활동을 하려는 기업이나 개인은 사라지게 된다. 반대로 세율이 0%라면 경제활동은 활발하겠지만 세수가 없어 정부는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다. 활발한 경제활동과 세수가 극대화되는 최적의 세율이 존재한다는 것이 래퍼 곡선의 설명이다.
 
레이건은 이 이론에 기반해 세율을 낮추고 노동·생산을 확대하는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를 가동했다. 당시 미국은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침체인 스태그플레이션 양상이 나타나던 시기다. 레이거노믹스 덕분에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의 두 배가 넘는 1.8%로 치솟았다. 실업률은 80년 7.0%에서 88년 5.4%로 떨어졌고, 인플레이션은 10.4%에서 4.2%로 내려왔다.
1974년 아서 래퍼가 워싱턴의 한 레스토랑에서 냅킨에 그린 래퍼 커브. 세로축은 세율, 가로축은 세수다. 세율이 상승하면 세수가 늘지만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세수는 오히려 감소한다. [국립미국사박물관]

1974년 아서 래퍼가 워싱턴의 한 레스토랑에서 냅킨에 그린 래퍼 커브. 세로축은 세율, 가로축은 세수다. 세율이 상승하면 세수가 늘지만 일정 수준 이상 오르면 세수는 오히려 감소한다. [국립미국사박물관]

 
그러나 감세가 만능열쇠는 아니다. 지나친 감세는 정부 재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당시 미국은 소련과의 국방비 경쟁을 벌이며 재정 지출이 대폭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중은 레이건이 취임한 81년 1월 14.5%에서 퇴임한 89년 1월 31.5%로 두 배 이상 커졌다. 세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적정 세율 수준을 알기 어렵다는 래퍼 곡선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레이건과 경쟁하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세금을 깎아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것은 사람을 현혹시키는 연기를 피우는 일”이라며 “알맹이는 없는 주술 경제학(voodoo economics)”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세금을 깎아 경제의 공급 측면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공급 경제학(supply side economics)의 정책 처방이 이번에는 작동할 수 있을까. 트럼프의 감세 정책으로 기업이 실제 고용을 늘릴지는 불확실하다는 분석이 많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4.5%로 완전고용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더 이상 고용이 늘어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을 지낸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이미 대부분의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력의 증가는 정체될 것”이라며 “4%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 트럼프의 포부는 좋지만 매우 어려운 목표”라고 평가했다.
 
고용을 기준으로 봤을 때 법인세 감면 조치가 더욱 필요한 것은 미국보다는 한국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15~24세 청년실업률은 10.7%로 높은 수준이다.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부진하다는 뜻이다. 해외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거나 국내 기업의 투자를 독려할 필요가 있다. 주요국들이 벌이고 있는 법인세 인하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 기업 투자 유치 경쟁에서 낙오될 가능성도 있다. 경제가 위축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특히 지난해 조세 수입이 318조1100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등 과잉 세수가 나타나고 있어 법인세 인상 필요성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인세는 정치적 저항이 적기 때문에 복지 수요 증가와 발맞춰 정치권에서 인상 논의가 활발하다”며 “그러나 결과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국민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세수 구조 개편과 같은 큰 그림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과 교수는 “여러 대선주자들이 실효세율을 먼저 올리겠다고 주장하는데, 대외 여건을 감안하면 실제로 급격한 법인세 인상은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무작정 법인세를 내리는 건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재진 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레이거노믹스에서 보듯 감세로 인한 재정 악화는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문제”라며 “감세로 인한 재정 악화는 결국 아래 세대에게 빚을 물려주는 것으로 세대별 재정 수요에 맞춰 세금정책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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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