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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LA폭동 25주년 맞아 돌아본 다문화 사회

장태한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

장태한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

세월이 흘러 어느덧 로스앤젤레스 폭동 25주년을 맞이했다. 필자는 1992년 4월 29일 그날의 악몽이 지금도 순간 순간 기억난다. 로스앤젤레스 도시는 마치 전쟁터처럼 화염에 휩싸였고 총격과 약탈이 자행되는 무법천지가 되었다. 시민을 지키고 보호한다는 경찰들은 거리에서 모두 철수했고 폭도들이 도시를 완전히 장악했다.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한 백인 경찰들에 대한 무죄 평결이 난 후 흑인들이 흥분하면서 거리로 나왔고, 이는 순식간에 폭동으로 번졌다. 흑인 주도의 폭동이었지만 라틴계 이민자 출신들이 약탈에 참여하면서 한인 타운과 근처의 피코 유니언, 그리고 할리우드까지 퍼졌다. 미국 최초의 다인종 폭동이었다. 당시 흑인 지역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한인 소매업자들은 흑인들의 표적이 되었다. 총 1억 달러의 재산 피해 중 40%인 4000만 달러가 한인들의 경제적 손실이었다. 그동안 피땀 흘려 일군 아메리칸 드림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된 것이다. 정치력 신장에 관심조차 없었던 한인 사회는 속수무책으로 방화와 약탈의 현장을 지켜보아야 했다. 미국 경찰과 주방위군은 한인 타운 보호를 외면한 채 그대로 방치했다.
 
일부 한인 상인들은 자신들의 업소를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고 지붕에서 공포탄을 쏘면서 약탈범들의 접근을 차단해 가며 겨우 자신들의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미 주류 언론들은 총으로 무장한 한인 상인들을 집중 조명하면서 폭동의 피해자인 한인 상인들을 오히려 무법자로 둔갑시켜 버렸다.
 
92년 4월 29일. 미주 한인들은 그날을 사이구(4·29)로 기억하고 있다. 미주 한인 100년사의 전환점이며 미주 한인 사회를 자각하게 해 준 역사적 사건이다. 혹자는 코리안 아메리칸의 자아의식이 싹트고 미주 한인으로서 정체성이 재탄생한 날이라고도 한다. 미주 한인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의 시작이었다.
 
25주년이 지난 지금 4·29 폭동의 진원지였던 사우스 로스앤젤레스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시민 참여와 조직적인 단체 활동을 통해 범죄는 감소하고 있으며 교육과 의료의 질은 향상되고 있다. 하지만 폭동을 일으킨 주요 원인인 빈곤·차별·실업률, 그리고 경찰 과잉 진압 등 구조적 문제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미 주류 언론들도 연일 로스앤젤레스 폭동 25주년 특집 보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비친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흑인과 백인 사회의 문제로만 인식되고 있다. 폭동의 최대 피해자인 미주 한인들은 여전히 그들의 시각에서 외면되고 있거나 총으로 무장하고 자신들의 업소를 지킨 모습만 보도되고 있다. 물론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 폭동의 원인이다. 그러나 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미국 최초의 다인종 다민족 폭동이었고 한인들이 깊숙이 연루됐음에도 미 주류 언론은 여전히 흑백 문제로만 인식하고 있다.
 
80년대 한인 이민자들은 흑인 지역의 상권을 장악했고 한·흑 갈등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었다. 분명 한인 업소들은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심한 피해를 당했다. 폭동 때 전소된 한인 업소들은 재기하지 못했으며 타 지역으로 이주했다. 지금은 라틴계·중동계, 그리고 베트남계 등 타 인종들이 공백을 메우고 흑인 지역의 상권을 형성했기 때문에 한인 업소들은 더 이상 흑인 지역 주민들의 공격 대상이 아니다.
 
4·29 폭동 직후 한인 소유의 많은 마켓과 리커 스토어, 그리고 상점들이 방화로 전소되거나 약탈당했는데 그 결과 흑인 주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흑인 주민들은 기저귀·우유·빵 등의 생필품을 사기 위해 몇 마일을 걸어야 했다. 한인 상점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순기능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서로를 배려하는 변화의 자세가 필요함을 체감했다. 한인 상인과 흑인 고객 간의 마찰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한인 타운은 이제 그 악몽을 말끔히 씻어 내고 다인종과 젊은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폭동 이후 1.5세와 2세 단체들은 다인종 연대에 적극 앞장서면서 다인종 화합을 주도하고 있으며, 데이비드 류의 로스앤젤레스 시의원 당선은 한인 사회의 큰 경사였다.
 
미주 한인들은 다인종 사회의 인종 갈등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다문화 사회로 변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경종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가 근본적인 변화 없는 다문화 정책을 고수한다면 한국에서도 인종 폭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중·고교 중퇴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들이 소외되고 그들이 사는 지역이 게토로 된다면 불만이 고조될 것이다. 이는 사소한 사건을 쉽게 폭동으로 만들 소지가 될 수 있다. 한국 정부도 올바른 다문화 정책을 지금이라도 수립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종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25년 전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주는 교훈이다.
 
장태한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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