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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하응백 '블랙리스트'에 대해 "정권 바뀌면 감옥 간다"고 경고했다

26일 블랙리스트 재판의 증언대에 섰던 문학평론가 하응백씨는 "블랙리스트는 사상의 자유를 억업하는 검열"이라고 말했다. 사진=문현경 기자

26일 블랙리스트 재판의 증언대에 섰던 문학평론가 하응백씨는 "블랙리스트는 사상의 자유를 억업하는 검열"이라고 말했다. 사진=문현경 기자

 “누가 장난치는지 모르겠지만 정권 바뀌면 반드시 감옥에 가게 됩니다.”  ‘나는 낚시다’라는 에세이로 유명한 문학평론가 하응백(56)씨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 측에 이같이 경고·예언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에서 26일 열린 ‘피고인 김기춘ㆍ조윤선’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하씨는 2015년 5~6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에서 벌어진 일을 고백했다. 이때는 하씨가 문예진흥기금 지원자를 선정하는 책임심의위원으로 위촉돼 문학 분야 사업 중에서도 규모(총 지원금 10억원)가 큰 아르코문학창작기금에 지원 심의에 참여하던 시절이었다. 전임 권영빈 위원장이 물러나고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의 논문 지도 교수였던 박명진(70) 서울대 명예교수가 새 위원장으로 부임했을 때이기도 했다. 

책임심의위원 시절 달려온 문예위 직원 "18명 꼭 빼고 도장 찍어 달라"
"을사오적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찍나"...결국 책임심의위원제도 폐지

 
2014년에 기금을 신청한 700~800명에 대한 2차 심사까지 마무리 돼 102명의 지원대상자가 추려진 뒤 최종 판단 과정인 3차 심사가 지연되던 2015년 5월 어느 날 장모 부장 등 문예위 직원 2명이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하씨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급한 용무' 때문에 문예위가 있는 전남 나주에서 올라온 것이었다.  
 
이날 법정에선 하씨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한 진술이 공개됐다. 진술 조서에 따르면 장 부장은 “102명 중 18명이 일종의 ‘검열’에 걸렸다. 문체부서 강력하게 내려온 지시 사항이다. 위에 청와대가 있는 것 같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아예 아르코 사업 자체를 무산시키겠다 하니 다른 위원들을 설득해서 (18명을) 빼줄 수 없겠느냐”고 말했다. 하씨는 “그 18명이 누구냐는 말에 장 부장이 명단을 꺼내려 하기에 ‘명단을 보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으니 보지 않겠다.1명 만 알려달라’고 했더니 이윤택(극작가) 이름이 나왔다”고 말했다. 하씨는 법정에서 “(이윤택의 작품은) 반체적인 것은 아니고 실험적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이순신인데 칼을 빼지 않고 총을 빼서 빵 쏜다는 식의 내용이었다”며 “‘왜 이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문예위 직원은) ‘아마도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 연설을 한 것이 원인이 아니겠느냐’고 했다”고 증언했다.  
 
6월 마지막 책임심의위원회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문예위 측은 “18명 중 8명은 도저히 안된다고 하니 빼고 도장을 찍어 달라”고 요구했고 하씨를 비롯한 심의위원들은 “1명이라도 문학 외적인 이유로 배제할 수 없다. 도장을 찍을 수 없다”고 버텼다. 하씨는 “만일 우리가 도장 찍으면 을사오적이 된다. 그걸 어떻게 찍겠느냐”며 “형편 없는 보수를 받고도 1년 내내 많은 일을 하는 건 책임심의위원이 굉장히 영광스런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누가 장난치는지 모르겠지만 정권이 바뀌면 감옥에 간다’고 했다”고 말했다. 
 
결국 문예위는 책임심의위원회 의결 없이 70명 만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해 공고했고 독립성이 유지되던 책임심의위원회는 사라졌다. 하씨는 “그 전까지는 지원 대상과 심사위원을 모두 공개했지만 2015년도는 그렇지 않았다”며 “이런 부당한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하씨에 앞서 증인으로 출석한 홍모 문예위 무대예술부장은 “기초 예술은 지원을 받지 못하면 창작 활동을 할 수 없는 분야다. 문예위 직원들은 예술가들과 맞닥뜨리며 일해왔다”며 “문화예술을 진흥시킨다는 자긍심이 있었는데 지원배제 지시 이후 직원들이 현장에서 예술가들 만나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됐고 ‘사표를 내고 싶다’, ‘이런 일을 내가 왜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등의 이야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나도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 나중에야 알아"…국정원선 '온건ㆍ중도'로 분류
 
 
 
26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법정 증언을 한 문학평론가 하응백씨를 증언이 끝난 뒤 뒤 법원 인근 찻집에서 따로 만났다. 문예위 책임심의위원 시절 '블랙리스트' 실행을 강요받았던 그는 자신도 그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고 했다. 
 
-오늘 증인석에 앉아 어떤 생각을 했나
"1950년대도 아니고 일제 시대 때나 있던 검열을 2017년에 해서 정부 장관이나 비서실장 지냈던 분이 검열을 해서 법의 심판 받게 된 것이 얼마나 불행한가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예술가뿐만 아니라 관료와 정치인들도 예술의 자유에 대해 인식을 확실히 하게 되면 좋겠다."
 
-'검열'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검열은 우리 역사 속에 있었다. 일제시대 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하면 '빼앗긴 들'이라는 글자를 비워 놓았다. 사실 나라 독립하자는 것이나, 내 표현의 자유를 검열로부터 독립하자는 것이나 같은 맥락이다. 내 정신과 사상을 독립하자는 것이다."
 
-일제시대 이후에는 '검열'이 없었나
"검열 폐지는 곧 민주화의 역사와도 같다. 이승만 정권과 싸운 것, 박정희 유신정권에 맞선 것,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투쟁을 한 것도 '검열'이라는 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에는 이런 식으로 검열을 한 적이 없었다."
 
-'블랙리스트'는 모든 정권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물론 '잘하는 사람한테 떡을 더 주는' 경우는 있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인 전두환 정권 때, 일부 문인들을 해외로 여행 보내준 적이 있었다. 일종의 특혜를 줌으로써 '우리한테 너무 노골적으로 반대하지 마시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싫든 좋든 역대 정부에서 원하는 국책사업에 예술인을 나름대로 활용해 온 측면이 있어왔을 것이다."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의 차이는
"이전 정권에서 해오던 것은 '잘하니까 지원을 더 해줄게'라는 식의'화이트리스트'였다면, 이번에는 '너희들 안 줘'하는 '블랙리스트'를 썼다. 더 낮은 수준의 수단이다. 웃기는 일이다. '이렇게 무식해? 몇 년 가지도 못할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계 내에서 '블랙리스트' 관련 이야기는 언제부터 돌았나
"2014년 6월쯤부터 음악이나 전통 예술 등 분야에서 지원금을 가지고 누구는 주고 누구는 주지 않는 식으로 검열의 실체가 나타나고 있었다. 다만 누가 검열 지시를 하는지는 몰랐고 '청와대 어디에서 내려온 거라더라' 하는 등의 소문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선생님도 9473명 블랙리스트에 '2012년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이유로 이름이 올랐던데.
"어떤 언론 보도를 보고 지인이 내 이름이 올랐다고 알려줘서 알게 됐다. 문화예술인들도 얼마든지 지지선언을 할 수도 있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성숙이다. 그걸 가지고 '너는 왜 누구를 지지 했느냐'고 따지면 후진적인 것이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불이익을 받았는지
"블랙리스트 관련해서 입는 피해라는 것은 지원을 했는데 배제되는 게 피해인데, 나는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피해를 입은 것은 없다. 문학이라는 것은 자유로워야 하고, 자유롭다 보면 반정부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애초에 정부 돈을 타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문학인들은 우스갯소리로 '가만히 있는데 두드려 패냐? 받으려고 하니까 두드려 패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본인이 '좌파 예술인'이라고 생각하는지?
"재판에서 보여준 서류 중에 국정원에서 나를 분류한 내용이 있더라.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중도'라고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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