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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법이 비껴간 우병우의 죄

양선희 논설위원

양선희 논설위원

검찰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야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검찰과 민심이 쫙 갈라진 건 처음 봤다. 모두 우병우의 ‘힘’이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은 시작도 마무리도 우병우였다. 검찰과 특검은 전 대통령과 무소불위의 왕실장을 비롯해 장관과 청와대 수석들까지 줄줄이 구속하는 집념과 쾌거를 보였다. 하지만 단 한 명, 우병우를 구속하지 못해 ‘역시 대한민국 검찰은 안 된다’는 확신을 온 국민의 뇌리에 깊이 심어줬다.
 
“우병우 사단인 검찰 수뇌부를 보호하기 위해” “검찰은 결코 자체 개혁을 할 수 없는 조직” “현재 요직을 차지한 검사들과 연루될 수 있는 부분은 다 빼버린 검찰의 전략” “적당한 선에서 타협된 범죄 혐의만을 조사한 부실수사”….
 
그나마 좀 점잖은 비판 여론이 이렇다. 이런 비판 여론을 보고 있자면 한 국가기관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 영화에나 나옴 직한 ‘협잡조직’을 전제한 듯한 인상도 받게 된다. 검찰이 이를 예측하지 못한 건 아니라고 본다. 지난주 검찰이 박근혜와 우병우 기소로 마무리지은 국정 농단 사건 수사발표에서 질의응답을 제외한 발표 42분 중 32분을 박근혜가 아닌 우병우 사건 수사 의혹을 해명하는 데 쓴 것도 그래서일 거다. 그럼에도 이런 결말에 이른 검찰은 정말 구제불능으로 썩어빠져서 그런 것일까.
 
며칠 전 몇 명의 부장검사 이하 젊은 검사들과 저녁자리에서 이 문제를 놓고 편하게 얘기한 적이 있다. 내가 가졌던 의심 하나를 우호적 화법으로 물었다. 박근혜 정부 내내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처럼 뭔가 본말이 전도된 듯한 개운찮은 정치적 결론에 도달한 형사사건들이 숱했는데, 혹시 검찰은 이 사건들이 흔들리면 사법적 안정성이 깨질까봐 이번에도 법을 구부린 것이냐고 말이다.
 
이에 한 검사는 “검사들은 최소한 증거를 덮진 않는다. 증거가 나오면 또 수사하면 된다”고 했다. 검찰이 때로 ‘권력의 주구(走狗)’ 노릇은 해도 법으로 장난치지는 않는다는 항변이었다. 다른 검사는 반성할 점을 꼽았다. “이번 건을 보면서 법원과 검찰이 머리가 굳어버려 거악을 처리할 능력을 잃어버린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우병우는 분명 거악의 행동대장이었고,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권력자가 물라면 무는 사냥견 역할에만 몰입해 국정을 혼란시켰다. 그럼에도 그는 횡령이나 뇌물을 받아 챙기는 등 부패범죄의 증거가 없다는 거다. “법원·검찰 모두 직무유기·직권남용 등은 증거를 찾기가 너무 어려워서 소명 의지도 없고 방법도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권력형 범죄는 뇌물 같은 부패 증거를 중심으로 범죄를 구성하는 아주 쉬운 길로만 가려는 습관이 몸에 배어 부패의 증거가 없는 우병우는 법에서 빠져나갔다.”
 
실제로 우병우는 400억원대의 자산가다. 법을 구부려 권력에 아부하는 과정에 돈을 탐했다는 증거는 없다. 어쩌면 아들이 코너링만 잘해도 군대에서 꽃보직을 받게 할 수 있는 권력의 달콤함은 돈 몇 푼으로 살 수 없는 것이기에 그는 ‘청렴사악’의 길로 빠진 것일 수 있다. 그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홍만표·최유정 변호사의 전관예우 사건의 경우도 그들을 봐준 현직 검사·판사는 없는 걸로 결론이 났다. 이 역시 의심 가는 정황은 있어도 돈이 오간 증거가 없어서 다 빠져나갔다는 거다.
 
이제 우리도 자산이 축적된 사회에 사는지라 돈이 목적이 아닌 ‘청렴사악한 권력범죄’를 저지르는 우병우는 앞으로 수없이 나올 수 있다. 한데 돈이 빠진 권력범죄는 강도 높게 다스릴 방법이 없다. 우병우 사건의 핵심은 바로 이건지도 모른다. 세상이 변했는데도 옛 방식과 관성적 사고에 얽매여 변치 않는 법과 검찰의 실력이 우병우에게 살길을 터줬다는 것.
 
그 옛날의 법가 한비자도 이렇게 말했다. “옛법 바꾸기를 망설이면서 어지러움이 다스려지길 기대하면 안 된다. 법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고, 금령(禁令)은 재능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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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