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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해서 더 애틋했던 시절 삶을 그렸지요

“누구에게나 유년 시절 가장 즐거운 기억은 구멍가게와 연관 있지 않나요?”
  

‘구멍가게’ 그림에세이 낸 이미경
20년간 전국 250곳 펜화로 담아
“이젠 시골서도 찾기 쉽지 않아
낡았다고 없애면 나중에 후회”

지난 2월 그림에세이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남해의봄날 출판사)을 펴낸 이미경(48·사진) 작가의 말이다. 그는 20여 년 간 전국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동네마다 보석처럼 박혀 있던 구멍가게 250여 곳을 펜화로 그렸고, 그중 80여 점을 추려 책으로 엮었다. 출간 즉시 SNS를 타고 확산된 이씨의 그림은 영국 BBC방송에도 소개됐다. 책은 발간 두 달 만에 6쇄를 찍었고 프랑스와 영미권, 일본, 대만 등지에 판권 수출도 진행되고 있다. 
 
홍익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구멍가게에 홀린 건 1997년 이사한 경기도 퇴촌 관음리 산책길에서였다. “둘째 아이를 낳고 100일쯤 됐을 때 동네를 산책하는데 구멍가게가 너무 예쁘게 보이는 거예요. 매일 지나던 곳인데 그날따라 석양에 빛나는 양철 지붕의 오묘한 색깔이 눈에 들어왔어요. 어린 시절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면서 ‘이거다’ 싶었죠.”
  
전국의 구멍가게를 찾아 나섰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몰라 처음엔 남의 블로그 또는 TV 다큐멘터리에서 본 가게를 무작정 찾았다. 지인의 기억대로 찾아갔지만 그새 없어져 허탕을 친 경우도 여러 번. “한 번 집을 나서면 3~4일씩 정처없이 걸어 다녔죠. 그러다보니 ‘저 모퉁이만 돌면 있을 것 같다’는 통밥도 생기더라고요.”(웃음)
 
빨간 우체통, 널찍한 평상, 처마 밑 외등, 녹슨 자전거와 리어카 그리고 이 모든 풍경을 든든히 지키고 선 나무. 이씨의 구멍가게 그림에 꼭 등장하는 소품들이다. “소명을 다하고 이젠 잊혀진 소품의 예뻤던 시절을 그리고 싶었어요.” 사실 이씨의 그림에는 비밀이 있다.
 
어디엔가 있을 법한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구멍가게를 뼈대로 그리되 주변 소품이나 집 앞 나무 등 없던 걸 그려 넣기도 해요. 난 사진가가 아니고 화가니까요. 사람들 기억 속의 따뜻한 풍경을 지켜주고 싶어요.”
 
그림에 왜 사람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나 물었더니 이씨는 “온전히 구멍가게가 주인공이 되려면 시선을 잡아끄는 사람은 배제해야 했다”고 답했다. 
 
최근 이씨는 몇 통의 메일을 받았다. “부산 철마동에 있는 철마 슈퍼를 그려달라는 사연이 특히 기억나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작은 아버님이 운영하는 슈퍼에서 자랐대요. 힘들었지만 행복한 어린 시절이었다고, 말기 암을 선고 받은 지금도 작은 아버지와 조카들에게서 여전히 큰 사랑과 도움을 받고 있다며 그림을 선물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서울시 미래유산팀의 전화도 받았다. 박원순 시장이 책을 보고 ‘바로 이런 곳들이 미래유산으로 지정돼야 한다’며 정확한 장소를 찾았단다. 
 
이씨의 구멍가게 그림의 가치가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만 있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건축은 삶’이라는 소박한 명제를 환기시키고, 오래 두고 간직해야 할 의미와 이유를 담아낸다.
 
“그런데 요즘은 지방에서도 이렇게 정겨운 풍경의 구멍가게를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사람들은 자꾸만 낡은 것을 없애려고만 해요. 유럽은 오래된 돌바닥 길까지 가치 있는 것으로 남겨두는데 말이죠. 다 잃어버리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텐데 안타까워요.” 
 
마석=글 서정민 기자
사진 김경록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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