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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인 엄마가 비장애인 아이에게 읽어주는 동화책 만들어요"

시각장애인의 독서 장벽을 없애는데 앞장서는 도서출판 '점자' 김동복 대표. 김춘식 기자 

시각장애인의 독서 장벽을 없애는데 앞장서는 도서출판 '점자' 김동복 대표. 김춘식 기자

 “자, 여기 이 스티커를 동화책에 붙여볼게요. 됐어요. 이제 한번 만져보세요.”
 

장애인·비장애인 함께 읽을 수 있는 동화책 제작하는 '점자' 김동복 대표
'배리어프리 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 영화에 장애인 위해 더빙·자막 작업
장애인에 대한 물리적 장애가 없는 배리어 프리 사회 확대가 최종 목표


지난 21일 서울 성수동 도서출판 ‘점자’ 사무실. 사무실 바로 옆 작은 공장에서는 인쇄기들이 윙윙 소리를 내며 바쁘게 돌아간다. A4 용지 절반 크기의 투명 스티커를 동화책 책장에 붙인 이는 이 회사의 김동복(44) 대표. 기자가 스티커에 손을 대자 표면이 우둘투둘했다. 스티커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가 새겨져서다.
 
김 대표는 “'점자'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동화책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비장애인은 투명 스티커에 신경 쓰지 않고 동화책을 그냥 읽으면 되고, 장애인은 스티커 점자로 동화책을 읽을 수 있다. 김 대표는 "시각 장애가 있는 엄마가 비장애인 자녀에게 읽어줄 수 있는 동화책"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다.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서다.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특수교사로 15년 동안 일했다. "교사로 일하며 시각장애인을 둘러싼 열악한 환경을 절감했다"고 했다. 
 
“원예나 고전처럼 기본 교과 과정에서 조금만 벗어난 분야를 가르치려 해도 교재가 없었어요.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원을 가도 안내판에 점자가 없어 누구 하나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없었고요.”
 
결국 김 대표는 2009년 학교를 그만두고 아는 사람이 운영하던 도서출판 ‘점자’에 입사했다. 기업체 생리를 익혀 궁극적으로는 장애인을 돕는 사업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김 대표의 아이디어가 점자와 묵자(墨字·일반 책의 글자)가 뒤섞인 책을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누구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 정작 가장 기본적인 생활 영역인 책을 따로 봐야 한다는 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책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묵자 위에 같은 뜻을 가진 점자를 정확하게 배치하기 위해 점자와 묵자의 크기를 조정하는 일부터 시간을 잡아먹었다.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제작비가 턱없이 비싸졌다. 동화책 한 권 가격을 10만원으로 책정했더니 구입처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게 점자 스티커였다. 투명한 스티커 용지에 점자를 새겨 대량 복사한 다음 이 스티커를 동화책 책장에 붙이면 점자는 물론, 스티커 아래 비치는 묵자를 읽는 일이 불편하지 않았다. 점ㆍ묵자 혼용책과 점자 스티커는 ‘점자’의 대표적인 인기 아이템이 됐다.
 
김 대표는 2015년 ‘점자’의 대표이사가 됐다. ‘점자’의 책을 더 많이 보급하는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이나 일반학교가 점·묵자 혼용책 구입을 꺼린다"고 했다.
 
“점자책은 점자 도서관에 비치하면 되지 왜 굳이 공공도서관에서 들여야 하느냐는 시각이 많아요.”
 
그래서 김 대표는 요즘 출판사 영업 사원 업무를 마다하지 않는다. 각종 학술 세미나에 발제자로도 적극 참여한다. 점·묵자 혼용책을 알리고 보급하기 위해서다. 혼용 도서가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 ‘점자’의 책이 비싸지만 공공도서관에 들여놓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설득한다. 
 
그는 "나중에는 북한이나 중앙아시아 같은 곳에도 '점자' 책을 보급하고 싶다"고 했다. 고령자·장애인에 대한 물리적 장애가 없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사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시청각 장애인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제작하는 베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 김춘식 기자 

시청각 장애인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제작하는 베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 김춘식 기자

 
김수정(47) '배리어프리 영화위원회' 대표는 장애인도 감상할 수 있는 영화 콘텐트를 만든다. 작품성 높은 영화를 골라 음성 내레이션과 한글자막을 붙인 뒤 장애인 시설에 배급하거나 상영하는 게 그의 주된 업무다. 영화에 자막이나 음성 해설을 붙이는 기관이나 회사는 여럿 있지만 이를 전국 곳곳에 배급하는 업체는 김 대표의 회사가 유일하다. 지난 7년간 복지관ㆍ구청ㆍ학교 등 353곳에서 2만6342명의 장애인과 그 가족이 위원회가 '가공한' 영화를 관람했다.
 
그는 ‘시네마 키즈’였다. 고향 대구에서 자랄 때 아버지의 친구가 매니저로 있던 대구극장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과학교육을 전공했지만 결국 졸업 후 동국대 영화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당시의 기억을 잊을 수 없어서다. “영화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과 친밀한 감정을 공유했죠. 그 기억을 더듬다가 과감하게 영화계로 진출하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이후 그는 15년간 영화인으로서 커리어를 쌓았다. 대학원 졸업 후 한국 예술영화관의 시초인 '코아아트홀'의 매니저로 영화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서울단편영화제, 부천영화제, 아트선재센터 등에서 경험을 키웠다.
 
김 대표가 장애인을 위한 영화 콘텐트를 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2010년 일본 규슈에서 열린 ‘사가 배리어프리 영화제’에 참석하면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섞여 영화를 보는 장면을 목격한 김 대표는 한국 장애인 영화제의 열악한 환경을 떠올렸다.
 
"2000년대 초반쯤이었을 거에요. 자막 글자가 삐뚤삐뚤하고 배우의 입 모양과 목소리가 안 맞는데도 마치 첫 소풍을 나온 아이들처럼 장애인들의 표정이 환하더라구요. 극장에서 처음 영화를 봤던 거에요. 까맣게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영화인으로서 장애인에게 참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한 영화계 선ㆍ후배 2명과 함께 2011년 지금의 위원회를 차렸다. 매년 11월 장애인을 위한 영화제를 열어 왔다. 영화제에서는 3~4일간 30~40여 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연다. 지난해에는 3000명의 관객이 찾았다. 영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문화적 격차를 줄이는 게 영화제 취지다. “영화에는 배경이 되는 시대의 문화적 코드가 녹아있는데 그 걸 알지 못하면 장애인은 문화적으로도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배리어프리 위원회는 인건비 일부를 제외하곤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독립법인이다. 서울 은평구 혁신파크의 46㎡(14평) 넓이 원룸 사무실에서 6명의 직원들이 꾸려 간다. 컴퓨터 몇 대와 책상 몇 대가 위원회 살림살이의 전부다. 외부 도움 없이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구축 하는 게 목표다.
 
다행히 사업 취지에 공감한 연예인들의 재능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이요원씨는 7시간 넘는 화면해설 녹음에 참여했고 변요한ㆍ이연희씨도 올해내 작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굳이 장애인들이 극장까지 와서 영화를 봐야해?” “장애인도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그때마다 매해 영화제에 참석해 끼니도 잊은 채 하루종일 영화를 보는 장애인 관객을 떠올린다.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누군가는 걸어야 할 길입니다. 넷플릭스 같은 외국 대기업은 장애인을 위한 온라인 VOD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런 환경을 한국에서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김나한ㆍ서준석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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