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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 지휘자, 온화한 카리스마로 베를린에 서다

24일 독일 베를린에서 베를린심포니와 지휘자 오충근의 공연이 열렸다. [사진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

24일 독일 베를린에서 베를린심포니와 지휘자 오충근의 공연이 열렸다. [사진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

 베를린은 ‘녹색의 메트로폴리탄’이었다. 최첨단 건물과 녹지,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공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도심의 초록지대 티어가르텐 숲을 걷다 보면 베를린 필하모니홀이 나온다. 숱한 명연이 탄생한 교향악의 성지이자 음악의 오아시스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 음악감독 시절인 1963년, 건축가 한스 샤룬의 설계로 건립됐다. 서커스단 텐트 모양으로 ‘카라얀 서커스(Zirkus Karajani)’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극장의 객석은 2440석. 롯데콘서트홀로 잘 알려진 빈야드(Vineyard, 포도밭) 스타일의 원조다. 무대를 둘러싼 객석이 블록으로 분할됐다.
 

오충근 부산심포니 지휘자, 23일 베를린 필하모니홀 공연
모두 독일 레퍼토리로 청중 호응 이끌어내

23일 오후 4시(현지시간) 지휘자 오충근(부산심포니 음악감독)이 베를린 필하모니홀 지휘대에 섰다. 베를린 심포니 정기 연주회를 객원 지휘하는 무대였다. 
 
1961년 동독 정부가 베를린장벽을 세웠다. 베를린 슈타츠오퍼와 코미셰 오퍼가 동베를린 지역으로 할당되자 실직한 서베를린 음악인들이 만든 오케스트라가 오늘날의 베를린 심포니다. 1967년 창설된 베를린 심포니는 현재 리오르 샴바달이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베를린 심포니는 베를린 필하모니홀과 콘체르트하우스 등 공연장에서 연간 100여회 이상 연주를 소화한다. 워크숍 콘서트와 패밀리 콘서트로 젊은 층에게도 인기 높다. 매년 독일과 유럽 투어에 나서며, 고전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레퍼토리를 자랑한다.
 
부산 출신의 오 지휘자는 KBS교향악단 바이올린 단원을 거쳤다. 현재 부산 심포니와 KNN 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이다. 활동무대를 넓히기 시작한 건 2014년. 프라하 스메타나홀에서 노스 체코필 테플리체를 지휘한 음반 발매(소니)가 계기가 됐다. 공연과 음반을 접한 베를린 심포니 측이 2016년 한국 투어 지휘자로 오충근을 낙점했다.  
 
지난해 9월 오충근은 베를린 심포니와 부산, 거제 서울 무대에서 베토벤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후 악단 측의 초청으로 이날 오 지휘자가 악단의 활동 무대인 베를린 필하모니홀에 섰다.
 
일요일 오후, 베를린 필하모니홀 대극장은 2천3백여 청중으로 붐볐다. 노년층 관객들과 더불어 어린 소년 소녀들도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관람 태도가 너무 좋아서 나중에 물어봤더니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팀파니를 연주한다고 했다.  
 
베를린 심포니 단원들이 자리잡고 오충근이 등장했다. 모두 독일 레퍼토리로만 꾸민 이번 공연의 첫곡은 슈만 ‘서곡, 스케르초와 피날레’였다. 서곡 부분의 불길함이 명랑하게 바뀌는 부분의 진행이 경쾌했다. 스케르초는 멘델스존을 연상시키는 이지적인 질주였다. 피날레에서도 이 느낌은 이어지다 이탈리아의 햇빛처럼 환해졌다. 마침 우박과 비, 맑게 개인 하늘을 모두 보여줬던 이날 베를린 날씨 같았던 첫 곡이었다.
 
곧이어 베를린 심포니의 악보계가 등장해 무대를 정리했다. 그런데 덥수룩한 수염이 브람스와 꼭 닮아서 객석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났다. 다음 곡이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브람스 악보계’가 퇴장하고 협연자 위지만(26)과 오충근이 등장했다.  
 
위지만은 서울예고 졸업 후 손가락 부상으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현재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피에르 아모얄(78)에게 배우고 있다. 위씨는 “작품과 작곡가에 얽힌 맥락을 샅샅이 살피도록 강조한다”고 스승의 스타일을 설명했다.  
 
1악장에서 위지만의 접근은 대담했다. 큰 동작으로 거침없이 만드는 섬세한 고음은 베를린 필하모니 음향을 타고 귀를 황홀하게 했다. 조금 서두르면서 밸런스가 무너지는 부분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곧 회복하는 뒷심이 있었다. 카덴차는 요아힘의 것을 썼는데, 귀기가 서려 있어 브람스보다 파가니니를 연상시켰다.    
 
반주를 이끄는 오충근의 지휘는 권법이나 무술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지휘자답게 협연자에게 길을 터주는 모습에서 동양의 기가 느껴졌다. 섬세함과 예리함의 위지만, 힘과 기의 오충근이 충돌하고 때로 조화를 이루며 1악장을 만들어갔다.
 
2악장에서는 왠지 하이페츠의 연주가 생각났다. 아모얄이 하이페츠의 제자여서일까. 다만 빛을 발하는 듯한 바이올린의 지속음을 더 길게 가져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곧바로 이어진 3악장에서 위지만은 한 음 한 음을 성실하게 짚어냈다. 젊은 날의 강동석을 연상시킨 열정적인 연주 모습에 베를린의 청중들도 갈채를 보냈다. 
 
휴식시간 뒤 오충근과 베를린 심포니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주했다.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는 1악장에서부터 오충근의 지휘봉에는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시종 힘으로 몰아치는 악장이었다. 2악장에서 긴 마디를 지속적으로 연주한 클라리넷을 비롯해 플루트, 바순 등 목관악기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청중도 여유를 찾으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3악장 스케르초에서는 저음현부터 시작해 고음현으로 옮겨가는 푸가토가 정연했다. 독일 악단다운 면모를 읽을 수 있었다. 오충근의 지휘는 이 수위를 좀더 넘겨 찬가로 이끌었다. 4악장의 어둑한 여명은 이내 환희의 폭발로 이어졌다. 베토벤 평생의 모토 ‘암흑에서 광명으로’를 새삼스레 떠올렸다. 그 순간이 마치 와인의 향처럼 ‘열리는’ 모습이 눈 앞에서 그려졌다. 발을 구르며 “좀 더”를 주문하는 오충근의 지휘에서 ‘여전히 배가 고픈’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곡이 끝나고 오충근은 베를린 심포니 단원들 중 팀파니, 금관악기, 바순, 클라리넷, 오보에, 플루트 순으로 일으켜세웠다.    
 
지휘자 오충근이 부산에서 사랑받고 베를린에 서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부산의 메세나 기업이 없었다면 오충근의 오늘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충근후원회는 창립 10주년을 맞이했다. 비엔그룹, 부산은행, 조광페인트, 강림CSP, 세정그룹등은 오충근이 “부산의 메디치가”라고 부른다. 그 정도로 아낌없이 오 지휘자를 후원한 기업들이다.  
 
단원과 청중에 어필하는 오충근의 ‘온화한 카리스마’도 부산을 넘어 세계에 설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다. 베를린 심포니의 제2 바순 주자인 에바 슈라우베는 최종 리허설 뒤 오충근에게 와서 ‘’지난 번 한국 연주도 좋은 시간이었고, 이번에도 함께해 행복하다. 단원을 배려해주는 푸근한 마에스트로와 다음에도 연주 하고싶다“고 단원을 대표해 메시지를 전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으로 현재 부산심포니를 이끌고 있는 지휘자 오충근. [중앙포토]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으로 현재 부산심포니를 이끌고 있는 지휘자 오충근. [중앙포토]

이날 오충근이 나올 때를 기다려 함께 사진을 찍는 현지 청중들이 적지 않았다. 그 중 카를라 베장(71)은 ”따스하게 마음을 덥히는 지휘였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여행객이라는 엑토르 루이즈 에샤즈(65)는 ”환상적인 지휘“라며 ”오충근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테아트로 콜론에도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연 뒤 오충근은 ”음악의 심장 베를린 필하모니홀에서 베토벤의 핵심 ‘운명’ 교향곡을 연주한 순간은 ‘환희’ 그 자체였다. 베를린 청중의 환호는 평생 잊지못할 감동으로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2020년에는 부산국제아트센터가 들어선다. 이를 전후해 부산에서 오충근의 ‘온화한 카리스마’가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가 된다.
 
베를린=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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