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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가 100명, 대선 주자에게 "국가 전체를 '혁신의 놀이터'로 바꿔달라" 요구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제, 창업 초기 사무공간 제공, 과학기술의 역할을 논의하는 사회적 협의체 구성’. 적어도 이 세 가지 제안은 차기 정부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23일 열린 ‘한국사회 혁신생태계 조성을 위한 콘퍼런스‘에서 제안된 여러 정책 중 대통령 후보를 낸 4당 정책 책임자들이 이 세 가지 정책에 대해선 이견 없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날 콘퍼런스는 민간 싱크탱크인 재단법인 여시재가 주최했다.  
 

100여명의 혁신가 4개월간 토론 끝에 10개 정책 제안
‘벤처 기술 탈취하면 징벌적 손해배상’ 주장에 4당 전원 찬성
정의당 제외 전원 “신산업에 네거티브 규제 도입”
차기 정부 SI 계열사 강제 계열분리 가능성 높아

벤처기업ㆍ사회적기업ㆍ비영리단체ㆍ연구원 등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100여 명이 사전 협의를 통해 제안한 정책에 대해 문재인ㆍ안철수ㆍ유승민ㆍ심상정 대선 후보캠프 정책 최고 책임자가 후보들의 의견을 내놨다. 주최 측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후보캠프 정책 담당자도 초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일단 차기 정부에선 중소기업 기술을 보호하는 제도가 등장할 전망이다. 황승익 한국NFC 대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을 빼앗는 하도급법 제도가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3년~2015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접수받은 하도급법상 기술탈취 혐의신고는 14건에 불과하다. 황 대표는 “대기업에 기술을 뺏겨도 소송하면 고작 1000만원 받는데다, 대기업은 형사처벌도 안 받는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벤처 기술을 탈취하면 징벌적 손해배상ㆍ과징금 부과(5억원)와 함께 형사처벌을 해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4당 대표는 모두 공감했다. 하승창 문재인 캠프 사회혁신ㆍ사회적경제위원회 공동위원장(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대기업이 벤처기업 기술을 뺏어가면 공정거래위원회만 고발할 수 있지만, (집권하면) 중소기업이 직접 고발할 수 있게 하고, 대기업이 불공정거래를 하면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이 창업 초기 필요한 사업공간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공공 유휴 공간 자원 정보시스템’을 구축해서, 놀고 있는 공공기관 공간을 벤처 사무실로 빌려주자는 생각이다. 또 정권 변화에 무관하게 과학기술의 역할을 논의하는 사회적 협의체(일명 과학의회)를 구성하자는 제안도 등장했다. 이런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4당 정책 담당자는 전원 동의했다.
 
주로 스타트업 대표들이 제안한 ‘신산업 규제 샌드박스’는 이번 콘퍼런스의 뜨거운 감자였다. 넘어져도 안전한 모래놀이터(sandbox)처럼 신사업이 기존 규제적용을 받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다. 권소진 사회적기업 CHRD 대표는 “자율주행차ㆍ핀테크 등 기존에 없던 산업이 태동할 때는 기존 관행ㆍ규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는데, 규제가 혁신을 억제하고 있다”며 “정부가 지정한 특정 산업은 2년 동안 일괄적으로 규제를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ㆍ국민의당ㆍ바른정당 정책 담당자들은 한목소리로 “(법적으로 가능한 행위를 규정한) 포지티브 규제를 (불가능한 행위만 나열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김형탁 심상정캠프 조직2본부장은 “샌드박스 때문에 반드시 규제가 필요한 부분을 규제하지 못할 수 있어 면밀하게 검토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혁신의 전제는 공정한 경쟁이다. 이 자리는 혁신가들이 대기업에 ‘양보’를 구하는 자리기도 했다. 벤처 생존을 위해 대기업이 일부 기득권 포기해 달라는 것이다.  
특히 재벌기업이 보유한 시스템통합(SI) 업체가 도마에 올랐다. 김병권 사회혁신공간 데어 이사는 “AIㆍ빅데이터ㆍ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은 소프트웨어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재벌기업 SI 회사가 계열사 물량을 독점하고 있어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벌 소유 SI업체를 강제로 계열분리해달라는 주장에 문재인 캠프를 제외한 전원이 동의했다. 다만 하승창 공동위원장도 “적극 검토는 하고 있다”고 밝혀 차기 정부가 SI 업체를 강제 계열분리할 가능성이 커졌다.
 
SI 계열분리나 기술 탈취 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대기업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중소 상생 생태계가 조성되면 결국 대기업도 유리해진다.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는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이 경쟁하는 환경이 조성되면 가장 품질좋은 솔루션만 생존한다. 그럼 대기업도 저렴한 가격에 훌륭한 SI업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하경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본지 주필)은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경제 발전을 이끈다”며 “혁신가들이 제안한 정책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즉각 출범할 새 정부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청년 사업가들이 대선 후보에게 제안한 정책은 지난 4개월여 동안 100여 명의 의견을 취합해 추려졌다. 5차례 그룹인터뷰를 통해 의견을 수렴했고, 대전ㆍ광주ㆍ대구 등 전국에서 이 의견을 검증하는 워크숍이 열렸다. 여시재 혁신생태계연구팀은 전문가 자문을 거쳐 10개 정책을 엄선해, 23일 4당 캠프 정책 책임자에게 이를 전달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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