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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요건이 '석식 선호 직원?'…한 드라마 PD의 죽음이 재조명한 '열정호구' 문제

"저기 뒤에서 일하는 직원 보여요? 저 직원 지금 25시간째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취업준비생 A씨는 며칠 전 한 정보기술(IT) 회사 면접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모처럼 찾아온 면접 기회였기에 최선을 다하려 했지만 이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A씨가 대답하지 못하자 면접관은 웃음을 터뜨렸고 결국 그 어색한 웃음을 끝으로 면접은 마무리됐다. 그날 이후 회사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과도한 업무량과 요원한 정규직 전환 등 고용시장에서 철저히 '을'일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열악한 노동환경을 비판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CJ E&M 소속 고 이한빛(당시 나이 28세) PD의 사연이 재조명되면서 '또 다른 이한빛'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18일 유가족들이 공개한 이 PD의 유서에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2~3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 PD의 사연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분노했다.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는 CJ E&M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은 "현재 1만 건에 가까운 서명과 100건이 넘는 '노동 착취' 제보들이 온라인을 통해 접수됐다"고 밝혔다. 22일에는 이 PD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행진이 서울 대학로에서 종묘까지 이어졌다.
 
 
한 업체가 올린 구인공고 '자격요건'에 '야근시 제공되는 석식을 좋아하시는 분'이라고 적혀 있다. [온라인 캡처]

한 업체가 올린 구인공고 '자격요건'에 '야근시 제공되는 석식을 좋아하시는 분'이라고 적혀 있다. [온라인 캡처]

많은 시민들이 이 사건에 공분하는 이유는 이 PD가 겪었던 노동 환경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어서다. 회사원 이모(30)씨는 "나도 신입 때는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새벽 1~2시에 퇴근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는지, 왜 굳이 그래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홍모(27)씨는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공고에 '석식 좋아하는 직원 환영'이라는 문구가 버젓이 적혀 있다. 그런 글을 '유머'랍시고 올려놓은 회사들을 보면 절망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네이버에서는 웹툰 작가 '솔뱅이'가 그린 '열정호구'라는 웹툰이 인기리에 연재 중이다. 취업준비생인 주인공이 '진상컴퍼니'라는 회사에 '6개월 뒤 정규직 전환' 조건으로 취직해 온갖 고초를 겪는 내용이다. 과도한 업무량에도 '정규직 전환'만을 바라보며 6개월을 버틴 주인공은 회사의 태도 변화로 결국 정규직이 되지 못한다. 웹툰을 본 독자들은 "내 이야기를 그려놓은 것 같다" 등의 댓글을 달며 공감하고 있다.
 
20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3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53시간이었다. 법정 근로시간인 40시간(월~금요일 하루 8시간)보다 13시간 더 길었다. 응답자 76.6%는 '근로시간이 너무 많다'고 느끼고 있었다. 22일 취업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418명에게 '가장 원하는 일자리 공약'을 묻자 이들은 주로 '근무시간 단축'(29.2%) '최저시급 인상'(25.6%) '정규직 채용 의무화'(25.1%) 등을 꼽았다.
 
청년단체들은 정치권에서 '경제 개혁' , '일자리 수십만 개 창출' 류의 공허하고 수에만 급급한 고용 정책이 아닌, 현실 속 '열정호구'들을 위한 고용 환경 개선 방안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년유니온·민달팽이유니온 등 20여 개 청년단체들로 꾸려진 '2017 촛불대선 청년유권자 행동'은 "'취업률' 일변도였던 기존 정책의 방향을 다변화 하고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대선 후보들이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민 팀장은 "향후 정책 간담회 등을 열어 제2, 제3의 이한빛 PD가 나오지 않도록 현실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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