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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적벽에서 패한 단 한 가지 이유

무한을 떠나기 전에 한 곳을 더 둘러보기로 하였다. 관우가 지켰다는 철문관(鐵門關) 유적이다. 장강변에 위치한 철문관은 차량들만 분주하다. 그 옆 건물엔 우왕(禹王)의 사적만이 번듯하고 관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안내자가 철문관 옆을 흐르는 장강을 가리키며 관우와 관련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장강변에 위치한 철문관 [사진 허우범]

장강변에 위치한 철문관 [사진 허우범]

저기 장강에서 관우가 적토마를 목욕시켰습니다.

관우가 지나간 곳이라는 짐작만 되면 그 어떤 곳도 유적지가 될 수 있으니 중국인의 관우숭배는 그야말로 온 천지를 뒤덮고도 남으리라. 이곳 철문관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삼국시대 오와 위의 각축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철문관이 세워진 때는 당나라 때다. 

관우가 지켰다는 철문관(鐵門關) 유적
군사적 요충지, 삼국시대 오·위의 각축장
삼국지 최대의 전쟁지 적벽대전, 장강 주변
조조, 적벽대전 패한 이유 ‘자만과 오만’

 
이때는 통일국가시대여서 군사요충지로서의 기능보다는 교역로의 역할이 컸다.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이곳에 왔을 수도 있겠지만, 북방 관리에 더 집중해야 할 때였다. 그러므로 이곳과 관우의 관련성은 후세에 지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관우가 지켰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청나라 때, 터만 남은 이곳을 재정비하고 관제묘를 세웠는데 여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삼국지와 관련된 많은 유적지 중에서도 적벽은 누구나 꼭 보고 싶은 곳이다. 그러하기에 적벽으로 가는 길은 출발부터가 설렘으로 가득하다. 나관중은 총 120회의 소설 중에서 적벽대전 부분을 8회에 걸쳐 썼는데, 그만큼 적벽대전의 이야기는 가장 인구에 회자되는 소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 최대의 전쟁인 적벽대전이기에 그 장소가 어딘가에 대한 논쟁이 없을 수 없다. 몇 군데로 나뉘어 논쟁이 벌어졌지만 이제는 모두 포기(蒲圻)시에 있는 적벽이 적벽대전의 장소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포기시는 호북성 무한(武漢)에서 남서쪽으로 140㎞지점에 있는데, 전쟁이 벌어진 적벽산은 이곳에서 다시 북서쪽으로 40㎞ 떨어진 장강가에 있다. 
 
적벽으로 가는 배를 타는 오림부두 [사진 허우범]

적벽으로 가는 배를 타는 오림부두 [사진 허우범]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은 조조군에 대항하기 위하여 장강을 거슬러 올라 삼강구(三江口)에 진을 친다. 연합군은 동오의 도독 주유가 진두지휘를 맡는다. 조조는 적벽대전을 앞두고 탐색전에서 동오의 감녕에게 패한다. 청주와 서주군사들이 수전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조조는 장윤과 채모로 하여금 수군훈련을 시키도록 한다. 장윤과 채모는 형주사람인데 조조에게 항복한 자들로 수전에 익숙한 장수들이다. 이들에 의해 실시되는 수군훈련은 절묘하고 깊이가 있었다. 그리고 주야를 가리지 않고 위세를 드높이고 있었다. 주유가 이를 엿보고 크게 걱정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조는 기분이 언짢았다. 탐색전의 패배로 사기가 꺾였는데 수군 영채까지 정탐을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때 조조의 막빈(幕賓)으로 있던 장간이 공을 세우고자 스스로 세객(說客)을 자청한다.    
 

저는 어릴 때부터 주유와 함께 공부하며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제가 강동으로 건너가서 세치 혀로 항복하라고 설득하겠으니 승상께서는 편안하게 보고만 계십시오. 제가 가서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심기가 불편하던 조조는 매우 기뻐하며 흔쾌히 수락한다. 한편, 주유도 장윤과 채모를 처치해야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고민하고 있던 차에 동문수학한 친구 장간이 조조의 세객이 되어 오자 천재일우의 기회임을 알고 부하들에게 장간을 역이용하는 계략을 지시한다.
 
그리하여 장윤과 채모가 동오 쪽과 긴밀히 연결을 취하고 있는 가짜편지를 만들고 장간이 이를 훔쳐 달아나게 한다. 조조는 장간이 가져온 편지를 보고 격분하여 장윤과 채모를 죽인다. 그러나 조조는 자신이 계략에 속았음을 알고 곧 후회하지만 모르는 척한다. 간웅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유의 계책에 속아 조조에게 가짜편지를 전하는 장간 [사진 바이두]

주유의 계책에 속아 조조에게 가짜편지를 전하는 장간 [사진 바이두]

주유는 자신의 계략대로 장윤과 채모가 처형되자 기뻤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부처님 손바닥 보듯이 하고 있는 제갈량이 있었기에 걱정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주유는 동오를 위해 제갈량 또한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조조군의 군량을 기습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제갈량을 죽이도록 하려 했으나 결국은 제갈량의 논리에 밀려 취소하고 말았다. 주유는 다시 제갈량에게 십만 개의 화살을 열흘 이내에 만들라고 하며 목숨을 옥죈다. 제갈량은 태연자약하게 사흘 안에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안개 낀 새벽, 노숙과 함께 짚단을 쌓은 20척의 쾌속선을 타고 조조군의 영채로 가서 십만 개의 화살을 가져온다.    
 
온 천지 짙은 안개 장강을 뒤덮으니 一天濃霧滿長江
거리도 알 수 없고 강과 육지도 막막하여라 遠近難分水渺茫
소낙비처럼 메뚜기 떼처럼 화살이 날아드니 驟雨飛蝗來戰艦
공명이 오늘은 주유를 굴복시키네. 孔明今日伏周郞  
 
주유는 제갈량의 귀신같은 지략에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 조조군에 대항하는 전략을 상의한다. 서로가 화공이 상책임을 알고 기뻐한다. 그러나 둘 사이의 대결은 끝난 것이 아니다. 조조군과의 전쟁을 앞두고 잠시 숨고르기를 할 뿐이었다.    
 
적벽대전을 지휘하는 제갈량 [사진 7888닷컴]

적벽대전을 지휘하는 제갈량 [사진 7888닷컴]

연달아 당한 조조는 매우 분했다. 동오의 진영을 염탐하여 역전의 기회를 잡아야 했다. 이에 순유의 계책에 따라 채중과 채화로 하여금 거짓으로 항복하게 한다. 하지만 주유는 이들을 역으로 이용한다. 황개의 고육계(苦肉計)와 감택의 거짓 항복이 조조의 마음을 움직이고, 방통의 연환계가 조조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손유동맹의 전략은 완벽했고 준비 또한 철저하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동남풍이 필요하였다. 제갈량이 제단을 쌓고 바람을 불렀다. 과연 동남풍이 불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철저히 준비된 동맹군이었지만 자못 걱정스러웠다.  
 
이에 비해 준비 없는 조조는 자만에 빠져있었다. 사소한 실수는 있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일이 너무 순탄함을 의심하지 않았다. 전쟁에 있어서 자만은 곧 필패로 이어진다. 천하의 8할을 차지한 조조는 스스로의 위세에 자만해 있었기에 순탄함을 의심하지 않았다. 매사 의심이 많은 조조도 자만을 의심하지는 못했으니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자만과 오만, 그게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패한 유일한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세 시간 정도를 달려 오림(烏林)에 도착하였다. 조조군이 적벽대전을 앞두고 대군영을 세운 곳이다. 오림은 육지 뿐 아니라 강가에 있는 대군도 북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아울러 조조군이 보급품 조달을 위해 군량비축장소로 사용한 곳이다.  
 
양어장이 많은 오림의 봄날 [사진 허우범]

양어장이 많은 오림의 봄날 [사진 허우범]

오림의 중요성은 소설에서도 잘 나타난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주유가 장수들에게 내린 군령의 첫 번째가 감녕으로 하여금 조조군으로 위장하여 오림을 급습하라는 것이었다. 제갈량 또한 배풍대에서 주유의 계략을 벗어나 유비군의 근거지인 하구로 돌아오자마자 조운에게 가장 먼저 내린 명령도 이곳 오림을 장악하라는 것이었다.    
 
그 옛날 조조군이 화공에 전멸했다는 오림은 그야말로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옛날의 오림은 원시림이 가득하였는데, 적벽대전으로 인해 잿더미로 변했다고 한다. 이곳이 오림채(烏林寨)임을 확인하는 푯말을 찾으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길은 좁고 여기저기 물웅덩이 사이로 유채만이 빼곡하다. 알고 보니 콩, 깨, 유채가 이곳의 특산물이라고 한다. 
 
유채로 둘러싸인 마을 어귀에는 곳곳에 작은 연못이 많다. 양어장이다. 양어장 주변 논에는 오리와 거위, 닭들이 사이좋게 먹이를 찾고 그 옆에는 물소가 한가롭다. 마을 사람 여럿에게 물으니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아저씨가 푯말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 그런데 푯말을 찾고 보니 옆에는 쓰레기가 너저분하다. 마을 안쪽에 있는 조조만(曹操灣) 표지석은 더하다. 적벽대전 당시 조조 군영의 지휘부가 있었던 곳인데, 쓰레기더미를 덮은 풀을 헤치고서야 겨우 찾았기 때문이다. 사생결단의 역사도 허망함뿐인가. 무상한 역사의 애잔한 풍취만 푯말에 켜켜이 묻어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오림채 표지석 [사진 허우범]

마을 어귀에 있는 오림채 표지석 [사진 허우범]

근처에 조공사(曹公祠)가 있었다고 해서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하나 같이 모른다. 좀 나이든 이는 없어졌다고 한다. ‘조조의 유적이라 파괴되었구나’ 생각하며 공터를 지나오는데 공터 옆으로 부서지고 낡은 건물이 하나 보인다. 확인해보니 조공사다. 바로 옆에 두고도 모른다고 하고 없어졌다고 하니 저들의 심사는 무엇인가. 
 
조공사를 세운 까닭은 이곳에서 패한 조조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것일 터인데, 지금의 사람들은 아예 조조라는 이름조차도 부르기 싫은 것인가. 그러고 보니 조공사 안에는 관세음보살상과 관성제군상이 있다. 낡고 부서진 건물의 외양이 얘기하듯 조조의 사당은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이고, 이제는 마을사람들의 기복신앙장소로 바뀌어 있다. 그러니 어찌 조공사를 알 수 있겠는가.  
 
조조 군영의 지휘부가 있었다는 조조만 [사진 허우범]

조조 군영의 지휘부가 있었다는 조조만 [사진 허우범]

오림부두에 도착하니 붉은 색의 장강 너머로 멀리 적벽이 보인다. 적벽대전 최대의 격전장이었던 오림은 고요하고, 이곳을 지나는 장강 물결만이 당시 전사한 군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듯 찰랑거리며 흘러간다. 더운 날씨 탓인가. 적벽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우리 일행뿐이다.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배를 기다리며 소동파가 지었다는 ‘적벽회고(赤壁懷古)’를 나직이 읊조린다.  
 
동으로 굽이치는 장강의 세찬 물결은 大江東去 浪淘盡
옛 영웅의 흔적을 씻어 내려가고 千古風流人物.
사람들은 옛 보루의 서쪽을 故壘西邊 人道是
삼국시대 주유의 적벽이었다고 말하네. 三國周郞赤壁.
저마다 우뚝한 바위가 구름을 뚫으매 亂石崩雲  
놀란 파도는 강둑을 할퀴며 驚濤裂岸
천길 눈보라를 일으키네. 捲起千堆雪.  
강산은 그림 같건만 江山如畵
한 시절 호령하던 호걸들 그 얼마였던가. 一時多少豪傑!
 
글=허우범 작가
정리=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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