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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아닌 자유인 되세요

일상 프리즘
14년간 사장으로 이끌어 왔던 밀레코리아에서 지난해 9월 정년퇴직했다. 40년 가까운 직장 생활의 희로애락을 뒤로 하고 가정으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앞만 보고 내달렸던 직장 생활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많았던 해외출장 중에 많은 대화를 나눴던 독일 친구가 있다. 밀레 독일 본사의 최고기술경영자(CTO)였는데 이제 그도 퇴직을 했으니 직장 상사가 아닌 인생 친구일 것이다. 조기퇴직을 한 그는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필요한 돈, 취미 생활과 여행을 하는 데 필요한 목표를 모두 계획해 뒀기에 아쉬움이 없다고 말했다. 남은 시간은 가족과 자기 자신에게 쓰겠다는 그를 보며 내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며, 어떤 계획을 세워 두고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 몸 담았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으로 돌아갈 퇴직을 앞둔 모든 직장인에게 ‘모든 것을 인정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퇴직 후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만큼 중요한 마음가짐은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얽매어 현재를 살아가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정년퇴직 6개월이 지난 지금은 부담 없는 삶을 보내고 있다. 골프를 치더라도 과거에는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관계를 생각하며 샷을 했지만, 현재 나에게 골프는 그저 즐거운 운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웃오브바운드(OB)가 나더라도 웃고, 공이 잘 맞아도 웃을 수 있는 삶은 나에게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퇴직 후 개인 삶도 마찬가지다. 퇴직을 한 선배들에게 배우자와의 관계가 가장 풀기 어렵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다. 나는 배우자의 생활 리듬을 배려하고 인정해 줌으로써 편안한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아내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용 캘린더를 만들어 스케줄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삶을 인정해 주는 것이 퇴직 후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금의 나 자신을 백수가 아닌 자유인이라고 부른다. 백수는 본인은 일을 하고 싶은데 여건상 일을 할 수 없는 경우지만, 나는 퇴직을 했으니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이다. 40년 사회생활을 하면서 몸 컨디션에 상관없이 움직여야 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이제 시간을 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느긋함이 나른한 행복을 주기도 한다.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꼭 지켜야 할 목표를 가지고 별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 또한 자유가 아닌가.
 
요즘은 최대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워낙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어 회사차를 이용할 때보다 불편하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역 이름만 검색하면 길을 찾아 주니 약속 장소를 찾아가는 게 전혀 어렵지 않다. 몇 번 잘못 갈아타는 실수도 했지만,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하는 업무상 약속이 아니기에 지인들에게 웃음을 주는 이야깃거리가 돼 줄 뿐이다. 주말에 겨우 시간을 내 만나던 지인들을 주중에 한가롭게 만날 수 있는 것도 달라진 부분이다. 과거 직장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에 순응하는 것이 정년퇴직 후를 살아가는 스마트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안규문
전 밀레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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