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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돈 모아 자기만족형 소비 … 2030 ‘탕진잼’에 빠지다

다이소·인형뽑기방 열풍 왜
빨래바구니, 주방세제, 비닐팩, 칫솔 그리고 냄비까지.
 

젊은 층 자조 섞인 소비 신조어
‘가용비’‘인간사료’ SNS 확산

얇은 지갑과 소비 욕구 반영
불황기 등장한 새로운 소비행태

“낚시처럼 인형뽑기 핵심은 손맛
여자친구 생일선물 마련하러 들러”

“소소한 비용으로 자신 위로”
“숨겨진 1인 코드에 주목해야”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에 살고 있는 대학생 이호성(26)씨의 자취방은 다이소 상품들로 가득했다. 13㎡(4평) 남짓한 원룸은 인근 다이소 매장을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보였다. 이씨가 초저가 생활용품 판매점인 다이소를 애용하게 된 건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씨는 “2년 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자취방 물건들이 모두 탔고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사야 했는데 다이소에서 한 번에 구입할 수 있었다. 최근 이사를 하면서 다이소에서 쇼핑한 생필품만 2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월세 38만원을 제외한 이씨의 한 달 생활비는 50만원 수준이다. 지난 6개월 동안 다이소에서만 30여만원을 썼다. 그는 “다이소에서 파는 물건들은 주로 1000, 2000원으로 천원 단위 가격이 매겨져 있어 한 달 예산 짜기에 편해 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1 대학생 이호성(25)씨가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자취방에서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있다. 빨래바구니 등 생필품 대부분은 다이소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김경빈 기자

1 대학생 이호성(25)씨가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자취방에서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있다. 빨래바구니 등 생필품 대부분은 다이소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김경빈 기자

2·3 인터넷 커뮤니티 ‘다이소 털이범’에 등록된 다이소 탕진잼(탕진+재미) 인증샷. [사진 네이버 밴드]

2·3 인터넷 커뮤니티 ‘다이소 털이범’에 등록된 다이소 탕진잼(탕진+재미) 인증샷. [사진 네이버 밴드]

 
 
 
젊은 층의 생필품 ‘성지’ 다이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20~30대 젊은 층에게 다이소는 생필품 ‘성지(聖地)’로 꼽힌다. 다이소 털이범이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회원 1만5000명이 모여 다이소에서 구입한 제품 사진을 찍어 공유한다. 지난 19일 점심시간 무렵 찾은 마포구 다이소 신촌 본점은 직장인부터 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 손님들로 북적였다. 지난해 1월 새로 문을 연 본점은 그릇 등을 판매하는 지하 1층을 포함한 지상 3층 규모였다. 식칼과 앞치마 등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고 있던 대학생 송현수(25)씨는 “일주일에 2~3번 다이소에 들르는데 다이소에선 물건을 사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며 “근처 백화점은 가끔 옷을 사러 들른 뿐이고 가격이 비싸 쇼핑을 하러 자주 가지는 못하는데 다이소에선 2만원 정도면 쇼핑 바구니를 가득 채울 수 있어 스트레스 풀러 온다”고 말했다. 스테인리스 쟁반을 고르던 송씨는 “저가 제품이 많아 쓰다 보면 금방 망가지기도 하는데 다시 사면 되고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홍익대 다이소 매장도 대학생들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최근 이사한 원룸 인테리어를 위해 매장에 들렀다는 대학생 백희정(22)씨는 “비싸도 1만원이니 마음먹으면 뭐든 살 수 있어서 자주 들른다. ‘탕진잼(탕진+재미)’ 인증샷도 인터넷에 올린다”고 말했다. 백씨는 이날 3000원짜리 포인트 벽지를 골랐다. 매장에서 만난 다이소 직원은 “2000~3000원 수준인 캐릭터 상품이나 볼펜, 립밤 등이 탕진잼 물품들”이라고 말했다. 신촌과 홍익대 등 젊은 층이 집중된 다이소 매장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 이상 성장했다.
 
 
4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등록된 인형뽑기 탕진잼 인증샷. 10~30대 사이에선 인형뽑기 열풍이 불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4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등록된 인형뽑기 탕진잼 인증샷. 10~30대 사이에선 인형뽑기 열풍이 불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1만~2만원 수준의 적은 돈을 탕진하는 재미를 뜻하는 탕진잼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최근 회자되는 신조어다. 인터넷 키워드 검색 빈도를 수치화해 보여주는 구글트렌드에서 탕진잼은 2014년 10월 처음으로 관심지수가 등록됐고 올해 1월 중순 관심도 최대치인 100을 찍었다. 불안정한 고용과 늘어난 주거비에 ‘쓸 돈’이 없어진 젊은 층을 상징하는 신조어는 또 있다. 시발비용(시발+비용, 스트레스를 받아 홧김에 돈을 쓴다는 뜻), 가용비(가격 대비 용량비), 인간사료(대용량 식품)가 그것이다. 시발비용은 불황기 소비행태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탕진잼과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구글트렌드에 따르면 시발비용의 관심도는 지난해 12월 초 26으로 올랐다. 시발비용은 올해 3월 관심도에서 탕진잼을 따돌렸다.
 
 
 
5 인형뽑기방에서 뽑기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 전국적으로 인형뽑기방 1500곳이 성업 중이다. [중앙포토]

5 인형뽑기방에서 뽑기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 전국적으로 인형뽑기방 1500곳이 성업 중이다. [중앙포토]

인형뽑기방 전국 1500곳 성업
우후죽순 늘고 있는 인형뽑기방에서도 탕진잼이란 소비 코드가 읽힌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 12월 24곳에 불과하던 인형뽑기방은 최근 전국적으로 1500곳으로 폭증했다. 지난 20일 오후 6시 동대문구 경희대 앞 인형뽑기방에서 만난 직장인 송진석(26)씨는 스스로를 ‘탕진재머(탕진잼에 빠진 사람)’로 칭했다. 지난해 개장한 인형뽑기방을 퇴근길에 정기적으로 들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그는 “핵심은 손맛”이라고 했다. 이날 인형뽑기 기계에 1만원을 투자한 송씨는 인형을 손에 쥐진 못했다. 그는 “PC방은 머리를 쓰는 곳이지만 인형뽑기는 단순하다. 어제는 네 개를 뽑았다. 낚시도 취미로 인정해주는데 나에겐 인형뽑기가 취미”라고 말했다.
 
1만원권 지폐를 손에 쥐고 인형뽑기에 몰입하고 있는 2030 세대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물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목적으로만 탕진잼에 빠져들진 않는다. 이날 만난 대학생 이지은(24)씨는 “갖고 싶은 인형이 많아 인형뽑기방에 들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학로에 위치한 인형뽑기방에서 만난 황용민(21)씨도 “여자친구의 생일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인형뽑기방에 들렀다”고 말했다. 뽑기방에서 뽑은 인형들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1회 뽑기 비용인 1000원의 다섯 배 이상 가격에 불티나게 팔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탕진잼이란 신조어에선 지갑은 얇지만 소비 욕구는 유지하고픈 젊은 층의 자조가 섞여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탕진잼을 ‘홧김소비’로 해석한다. 그는 “‘잼’을 붙여 순화했지만 결국 스트레스 때문에 돈을 쓴다는 게 본질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물건을 사는 건 아니다. 이미 쓰는 볼펜이 있더라도 캐릭터 볼펜이 새로 나온다고 하면 그걸 사는 식이다. 소소한 비용으로 자신을 위로한다”고 말했다. 주거지 이동이 잦은 것도 젊은 층의 탕진잼을 부추기는 요소다. 동작구 다이소 노량진점에서 만난 박모(26)씨는 “노량진을 언제 떠날지 모르고 비싼 가재도구를 살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탕진잼은 2030 세대의 소비 패턴 변화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39세 이하 가구의 전체 소비 지출(지난해 3분기 기준)은 5년 새 2.6% 오르는 데 그쳤지만 주거비(주거 및 수도) 지출은 같은 기간 26.5% 늘었다. 여윳돈이 줄었으니 푼돈이라도 모아 자기 만족형 소비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의 얇은 지갑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12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20대들은 평균적으로 현금 5만3000원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체 연령층 평균 7만7000원을 밑돈다. 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 팀장은 “평소에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며 알뜰하게 살다 기분전환을 위해 몰아서 소비하는 현상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탕진잼 마케팅에 기업들도 고심
탕진재머를 위한 소비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업들도 고심하고 있다. 10~30대가 고객의 75%를 차지하는 다이소는 탕진잼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다이소 심수연 대리는 “탕진잼 현상은 SNS에 올라오는 구매 후기나 인증샷이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1000원짜리 상품이 전체 판매 비중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사진이 잘 찍히는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테리어용으로 쓰이는 디즈니 만화캐릭터가 들어간 마스킹 테이프는 지난 3월 출시됐는데 SNS 입소문을 타고 하루 4000개가 팔린다. 캐릭터가 없는 일반 마스킹 테이프 판매량의 세 배”라고 덧붙였다.
 
광고기획사 이노션 월드와이드는 지난 3월 ‘대한민국 신인류의 출현: 호모 탕진재머에 대한 트렌드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이수진 이노션 데이터애널리틱스 팀장은 “장기 불황 속에서 현재의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탕진잼을 추구하는 경향이 높고 이들은 아주 적은 예산을 소비하는 과정에서도 재미를 느끼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탕진잼을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사회변화로 해석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탕진잼에 숨은 ‘1인 코드’에 주목한다. 이 교수는 “누구랑 같이 탕진잼을 하는 게 아니다. 혼자 즐기고 물품을 구매해서 SNS에 올리고 공감을 기다린다. 놀이적인 측면도 있고 주목받고 싶은 욕구와 연결되는 부분도 있다. 인형뽑기 열풍도 적은 돈으로 인형을 뽑고 ‘작은 사치’를 부렸다는 걸 자랑하고픈 심리가 숨어 있다”고 분석했다. 고시생이 몰린 노량진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는 500원짜리 코인 노래방에도 비슷한 해석을 적용할 수 있다.
 
탕진잼과 시발비용이 불안정한 시기에 발현되는 것이란 해석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우열 원장은 “사람은 미래의 더 큰 성취와 행복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지연시킬 수 있다. 하지만 불황기와 같이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현재의 즉각적인 만족과 쾌감을 추구하게 된다”며 “현재 어려운 한국의 상황에서 소소하고 즉각적인 만족과 쾌감을 준다는 점에서 탕진잼 자체가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소셜미디어 소비 신조어
→탕진잼  재물을 모두 써서 없앤다는 ‘탕진’과 재미를 줄인 ‘잼’을 합성한 신조어다. 웹툰 ‘즐거우리 우리네 인생’에서 2014년 처음으로 소개됐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려졌다. 1만~2만원 수준의 소액으로 물건을 구입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행태를 말한다. 불황기 20~30대의 소비 현상을 반영하는 자조적 표현이란 분석이 많다.


→시발비용  비속어 ‘시발’과 ‘비용’을 합친 단어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을 뜻한다. 미국에서 널리 쓰이는 ‘퍽유 머니(fuck you money)’와 닮았다.


→가용비 ‘가격 대비 용량이 많다’는 뜻. 10~30대 사이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대체하고 있는 표현이다.


→인간사료  동물 사료처럼 양이 많고 값이 싸다는 뜻. 가용비를 중시하는 소비층이 늘면서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창고형 할인 마트가 인기다.
 
 
강기헌 기자, 조수영·나영인 인턴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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