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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연대 추구하는 젊은층, 페미니즘 프로젝트에 돈 쓴다

크라우드펀딩 시장에 부는 페미니즘 새 바람
반영구적인 생리대 블랭크컵. [사진 이지앤모어]

반영구적인 생리대 블랭크컵. [사진 이지앤모어]

최근 한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리스트에 ‘블랭크컵(월경컵)’이라는 낯선 단어가  1위에 올랐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선두 업체인 와디즈에서 진행하는 ‘블랭크컵 프로젝트’가 관심을 끈 결과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확보하는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은 일정 기간 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실패하는 구조다. <중앙SUNDAY 3월 5일자 18면> 20일가량 펀딩 기간이 남은 블랭크컵 프로젝트엔 지난 21일 기준으로 1479명이 참여해 약 3160만원을 모아 목표 펀딩 금액(5000만원)의 63%를 채웠다. 신혜성 와디즈 대표는 “하루 평균 방문자 수 1만5000명으로 150여 개 보상형 프로젝트 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관련 크라우드펀딩 1 블랭크컵 후원자 모으는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와 그가 참여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와디즈 사이트. 2 4300만원 펀딩 받아 책 출간한 이민경 작가. 3 펀딩으로 제작되는 국내 첫 생리용품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 4 텀블벅 주최로 열릴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미니즘 관련 크라우드펀딩 1 블랭크컵 후원자 모으는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와 그가 참여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와디즈 사이트. 2 4300만원 펀딩 받아 책 출간한 이민경 작가. 3 펀딩으로 제작되는 국내 첫 생리용품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 4 텀블벅 주최로 열릴 페미니즘 페스티벌.

 
블랭크컵 한 번 구매하면 10년 사용
블랭크컵 프로젝트는 안지혜(31) 이지앤모어 대표가 이끌고 있다. 지난해 4월 창업한 이지앤모어는 생리대 등 여성용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기부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소셜벤처다. 포인트가 일정 수준 쌓이면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생리대를 기부한다. 현재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430명에게 두 달에 한 번씩 생리대를 지원한다. 창업 초기엔 ‘깔창 생리대’ 이슈가 불거지며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을 돕겠다는 손길이 많았다. 몇 달 지나자 점차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궁리하다 안 대표가 찾아낸 게 블랭크컵이다. 종 모양의 실리콘 컵으로 탐폰과 사용 방식이 비슷한 생리대다. 의료용 실리콘 재질로 값이 3만~4만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한 번 구매하면 최대 10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안 대표는 “미국·프랑스 등 선진국에선 이미 70년 전에 개발돼 30가지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선 의약외품으로 지정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아야만 제조·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내에선 아직까지 안전성 허가를 받은 이력이 없기 때문에 임상시험과 독성검사 등을 통과하는 데 약 2억원의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안 대표는 “펀딩에 실패하더라도 프로젝트는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펀딩을 진행하면서 무상으로 임상시험이나 컨설팅을 돕겠다는 후원자가 나타나고 있어 내년 6월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블랭크컵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와디즈에선 여성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 제작을 위한 지분투자형 펀딩도 성공했다. 170명이 참여해 약 4900만원을 모았다. 투자자는 극장 관람객이 4만 명을 넘거나 국내외 방송국에 판권이 팔리면 수익을 나눠 갖는 구조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맡은 오희정(30) PD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리용품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다음달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 PD와 김보람 영화감독이 여성들의 생리 경험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로 마음먹은 건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온 뒤다. 영화제에 참석한 네덜란드 여성과 얘기를 나누다 캐나다를 시작으로 영국·프랑스 등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탐폰세 폐지 운동’을 알게 됐다. 월경은 자연적인 생리 현상이기 때문에 관련 제품에 매기는 세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운동이다. 이후 미국에선 6개 주가 탐폰세를 폐지했고 뉴욕시에선 공립학교, 무주택자 쉼터 등에 생리대를 무료로 보급하는 ‘공짜 생리대 법안’이 통과됐다. 오 PD는 한국에서도 이런 주제에 대해 얘기하는 문화를 만드는 방법으로 크라우드펀딩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월경에 대해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문화가 여성의 삶을 조금은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예술계 제작자를 후원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선 지난해부터 페미니즘 관련 출판·디자인·패션 등 다양한 펀딩이 인기를 끌고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사회 제도와 관념에 억압받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포괄하는 용어다.  
 
 
출판 후원금 200만원 모금에 4300만원 쌓여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 중인 이민경(25)씨도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을 출판하기 위해 지난해 200만원을 목표로 후원금을 모집했다. 놀랍게도 20일 만에 목표 금액의 스무 배가 넘는 4300만원이 쌓였다. 이씨는 “지난해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이후 불거진 여성혐오 논란이나 성차별을 주제로 한 대화에서 여성이 상처 받지 않도록 실전 대응 매뉴얼을 만든 게 공감을 얻은 거 같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초기엔 소규모 독립서점용으로 찍었는데 책을 구하는 요청이 쏟아져 대형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씨는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독립출판사 봄알람을 세운 뒤 본격적으로 여성 인권을 알리는 책을 만들고 있다. 텀블벅은 다음달 13일부터 이틀간 문화예술공간 탈영역 우정국에서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을 열 계획이다. 김철민 텀블벅 에디터는 “개별적인 단기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페미니즘이 이번 페스티벌을 계기로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라는 인식이 강해 공론화가 쉽지 않았다. 문화평론가 손희정씨는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도가 높아지고 지지층이 늘어난 데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손쉽게 참여해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크라우드펀딩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페미니즘 관련 프로젝트가 생기면 많은 사람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소개하거나 구매 인증샷을 올리는 방식으로 참여를 독려한다. 남유림 언니미티드 대표는 “소비를 통해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를 드러내는 움직임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참여자가 보상받는 건 페미니즘 문구가 적힌 배지나 티셔츠 정도지만 펀딩 성공을 통해 연대의 힘을 보여줬다는 데 더 큰 만족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한정된 기간 안에 적은 돈이 모여 상품(가치)을 만들어내는 크라우드펀딩 운영 방식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소비 기부문화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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