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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世에 여섯 번째 대멸종 올 수도 … 지속가능한 방법 찾아야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인류世와 닭뼈
가축화된 닭의 조상 적색야계(Gallus gallus).

가축화된 닭의 조상 적색야계(Gallus gallus).

우주의 나이 138억 살, 지구 나이 46억 살 그리고 생명의 역사 38억 년. 우리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이 숫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만이 우주와 생명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명과 우주의 가장 귀한 존재다.

산업혁명 후 인류 생물량 급증
척추생물 중 인류 32% 가축 65%
스스로 지구 망치는 인류세 열려

500~1만 년 지속 후 대멸종 예상
동위원소·플라스틱도 명확한 흔적

 
멸종(滅種)이라는 단어는 왠지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무서운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멸종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삶의 터전을 내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멸종이다. 멸종의 결과는 진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육상동물은 공룡이다. 그것도 티라노사우루스처럼 거대한 수각류 공룡을 좋아한다. 하지만 공룡들과 같이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육식공룡이 사나워서가 아니다. 스테고사우루스 같은 초식공룡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아직 살아있다고 해서 우리에게 우유를 줄 리 만무하다. 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젖소는 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신생대는 공룡이 멸종한 후에야 시작됐다. 그 전까지는 생쥐만한 크기로 머물면서 캄캄한 밤중에나 겨우 활동을 할 수 있었던 포유류가 기를 펴고 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이다.
 
 
멸종에 멸종을 거듭한 생명
5억 4100만 년 전 자연사에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단단한 껍데기가 등장한 것이다. 단단한 껍데기가 등장하자 산소가 제대로 투과되지 못해서 높아진 산소 농도에서도 몸을 보호할 수 있었으며 몸은 ㎝단위로 커다랗게 성장했다. 이때 고생대 캄브리아기가 시작된다. 함께 등장한 눈은 더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야 생명체들은 누구를 쫓고 누구에게서 도망쳐야 하는지 알게 됐다. 이를 위해 헤엄치는 기술이 발달하고 색깔과 모양이 변하면서 지구는 바야흐로 다양한 생명의 터전이 됐다.
 
하지만 생명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다. 멸종에 멸종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던 찬란했던 자연이 어느 한순간에 황폐화돼 생명들을 모조리 몰아낸다. 우리는 그 사건을 대멸종이라고 부른다.
 
1만 년 전에는 척추동물 가운데 단 0.1%만이 인간과 가축이었으며 99.9%는 야생동물이었다. 인류세인 현재는 척추동물 가운데 97%가 인간과 그들의 가축이며 야생동물은 단 3%에 불과하다.

1만 년 전에는 척추동물 가운데 단 0.1%만이 인간과 가축이었으며 99.9%는 야생동물이었다. 인류세인 현재는 척추동물 가운데 97%가 인간과 그들의 가축이며 야생동물은 단 3%에 불과하다.

고생대가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총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일어났다. 첫 번째 대멸종은 4억 4000만 년 전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말에 발생했다. 이때 전체 생물종의 85%가 사멸했다. 3억 6000만 년 전 데본기 말에 일어난 두 번째 대멸종 때는 70%의 생물종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가장 참혹했던 대멸종은 고생대 페름기에서 중생대 트라이아스기로 넘어가는 계기를 만든 세 번째 대멸종이다. 2억 5000만 년 전의 일이다. 이때 생명의 95%가 멸종했다. 95%의 생명이 멸종했다는 것은 100마리 가운데 5마리가 살아남았다는 게 아니다. 100종류 가운데 95종류는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죽어서 종 자체가 사라졌으며, 나머지 5종류도 거의 죽었지만 겨우 멸종만은 면했다는 뜻이다. 생태적 틈새(niche) 100개 가운데 95개가 텅 비었다는 말이다. 이 자리는 중생대 생명체들이 차지하게 된다.
 
이후에도 대멸종은 두 차례 더 있었다. 2억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 때 생물종의 80% 그리고 6600만 년 전 백악기 말 대멸종 때는 전체 생물종의 70%가 사라지고 신생대가 시작되었다.
 
 
인류의 탄생도 이전의 대멸종에 기인
생명보다 지구 환경의 힘이 더 세다. 생명이 환경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생명을 선택한다. 지난 다섯 차례의 대멸종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첫째 온도가 급격히 오르거나 떨어진다. 보통 5~6℃ 정도의 변화가 일어난다. 둘째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셋째 화산 폭발 등의 이유로 대기의 산성도가 높아지고 산성비가 내린다. 물론 여기서 급격하다는 것은 지구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인간의 시간 감각에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수만~수백만 년이 걸리는 일이다.
 
멸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대멸종은 급격히 변화한 자연환경에 맞선 생명의 혁신적 창조과정이다. 따라서 우리가 슬퍼할 일은 하나도 없다. 덕분에 우리 인류가 등장했으니 말이다.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은 우리 인류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사건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를 신생대 제4기 홀로세라고 한다. 지금부터 약 1만 2000년 전이 그 시작점이다. 홀로세는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황당한 시대다. 홀로세가 시작하기 전까지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지구 환경에 적응해서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환경에 적응하는 대신 환경을 제멋대로 바꾸는 생명이 등장했다.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현생인류는 농사를 짓겠다고 멀쩡한 들판에 불을 지르고 물길을 돌렸다. 남아메리카에 진입하자마자 수백만 년 동안 그 땅에 살던 거대 포유류를 멸종시켰다. 드디어 지질시대를 나누는 데 인류가 기여를 한 것이다.
 
인류에게는 고약한 버릇이 있으니 멈출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농경과 목축은 나름대로 환경과의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농사 덕분에 인구수가 늘어났어도 지구 환경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하고야 말았다. 2000년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파울 요제프 크뤼천(Paul Jozef Crutzen, 199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은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제안했다. 인류세는 홀로세의 끝부분에 해당한다. 인류세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 이름은 이미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원인이 우리 인류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류세의 가장 큰 문제는 인류의 생물량이다. 인류의 생물량 증가 곡선의 기울기는 일정했다. 1769년에는 기껏해야 5억 명 정도였다. 그런데 이때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부터 곡선의 기울기가 조금 가팔라지고 1869년 석유를 사용하면서 더 가팔라지더니 1950년을 기점으로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수직적으로 증가했다. 결국 인류의 생물량은 화석에너지 사용량과 비례하여 증가한 것이다. 이제는 75억 명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인류세는 언제 시작했다고 봐야 할까? 여기에는 여러 의견이 있다. 첫째는 홀로세 자체를 인류세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미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됐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인류세를 이렇게 정의하면 우리 현대인의 책임이 너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는 산업혁명기 그러니까 대략 1750년대 인류세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이 인류의 급격한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이고, 또 이때부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멸종속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층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는 조금 더 현대인에게서 책임 있는 시점을 찾았다. 제2차 대전 이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지질학적 변화가 지구에 생겨났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재 육상 척추동물 생물량 가운데 65%는 가축이고 인간은 32%에 이른다. 야생 척추동물의 생물량은 단 3%에 불과하다.

현재 육상 척추동물 생물량 가운데 65%는 가축이고 인간은 32%에 이른다. 야생 척추동물의 생물량은 단 3%에 불과하다.

지질시대는 인류의 책임감만으로 정할 수 없다. 지층에 명확한 특징이 있어야 한다. 인류가 모두 멸종하고 외계인이 지구를 찾았다고 생각해 보자. 지층에서 명확한 경계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국제층서위원회는 1950~60년대에 활발했던 핵실험에서 생성된 동위원소가 가장 명확한 흔적이라고 봤다. 콘크리트와 플라스틱 역시 인류세를 상징하는 물질로 남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인류세의 출발점은 1950년이다.
 
홀로세 시작점과 현대를 비교하면 생물상도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지표 화석은 무엇이 있을까? 약 1만 년 전에는 새를 포함한 육상 척추생물량 가운데 야생동물이 99.9%를 차지하고 인간과 가축은 0.1%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야생동물은 단 3%에 블과하고 인류가 32% 그리고 가축이 65%의 생물량을 차지한다.
 
 
대멸종 땐 인류와 같은 최대 포식자 사라져
그렇다면 인류세의 표준화석은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닭뼈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중반부터 닭은 세계에서 가장 흔한 새가 됐다. 인류세의 대표적인 생물인 닭마저 결코 자연적인 수명을 누리지 못한다는 점이 유감이다.
 
인류세는 앞으로 500년~1만 년 정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길어봤자 1만 년이 지나면 여섯 번째 대멸종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여섯 번째 대멸종에서도 누군가는 살아남을 것이다.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은 당시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지금 인류세의 최고 포식자는 인류다. 인류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인류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연과 우주에게도 큰 슬픔이다. 우리 인류는 조금이라도 더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고 실천해야 한다.
 
 
비타민 D 합성하며 닭 대량 생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는 돼지고기다. 2020년이 되면 닭고기가 돼지고기를 앞지를 전망이다. 그런데 왜 돼지뼈가 아니라 닭뼈가 인류세 지층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돼지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전 세계에서 널리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류세의 표준 생물이 된 닭(Gallus gallus) 역시 일찌감치 가금(家禽)이 됐다. 사람이 닭을 키우기 시작한 때는 대략 1만 년 전. 신석기인들이 보기에 닭의 가장 큰 장점은 잘 날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달걀을 먹기 위해 닭을 키웠다. 특별한 날이면 더 이상 알을 낳지 못하는 늙은 암탉이나 알파 수탉이 아닌 여분의 수탉을 잡아먹었을 뿐이다.
 
닭이 대규모로 사육된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인류세 시작점과 일치한다. 이때 부화장이 마련되고 엄청난 양의 곡물이 먹이로 제공되고, 백신과 항생제가 생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요소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타민 D. 모든 동물은 햇빛을 쬐어야만 비타민 D를 합성할 수 있다. (햇빛이 부족한 유럽의 정부들은 유아들에게 비타민 D를 무상으로 공급한다.) 비타민 D를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게 되자 닭을 좁은 실내에서 대량으로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5000만 명의 한국인이 매년 먹는 닭의 수는 대략 10억 마리에 이른다.
 
 

이정모
서울 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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