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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출자 금지, 기업 분할 … “기업들 고용·투자 위축 우려”

[대선 D-16] 대선 후보들의 기업정책 분석
이번 5·9 대선의 특징은 뚜렷한 경제 이슈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7년만 하더라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7·4·7(연 7% 경제성장, 1인당 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무역강국)’,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문재인 후보 간 치열한 경제민주화 공방이 있던 것과 비교하면 조용하다. 그렇지만 문재인·안철수 양강 후보가 한목소리로 내세우는 공약이 있다. 바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다.

문재인 은산분리 원칙론 고수
“핀테크, 인터넷 은행은 어쩌나”

안 캠프 기업분할명령제 공약
“한국 이통업체 제재 가능성 커”

홍준표, 일감 몰아주기 처벌 강화
유승민·심상정은 법인세율 인상

 
문 캠프, 순환출자 놓고 ‘금지-허용-금지’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선 한 가지 사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날 문 후보 캠프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공식 등록한 ‘10대 공약’ 가운데 ‘기존 순환출자 해소’ 항목이 빠졌기 때문이다. 나흘 전인 13일 미디어 대상으로 선공개한 10대 공약에는 포함된 내용이다. 문 후보 캠프에 참여한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과정이 어찌됐든 삼성은 순환출자를 없앴고, 현재 순환출자가 총수 지배권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그룹도 현대차 한 곳뿐”이라며 “기업 스스로 해소할 문제인데 명분론에만 얽매이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일부와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진보진영에선 즉각 불만이 나왔다. 중도·보수로의 외연 확장을 위해 문 후보가 재벌 개혁이라는 원칙을 저버렸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은 결국 문 후보의 최종 공약집에 신규 순환출자 금지뿐만 아니라 기존 순환출자 고리까지 없애야 한다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 임원은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 입장이 도대체 몇 번 바뀐 것이냐”며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서라도 정책 일관성이 중요한데 지지율 1위 후보 캠프에서 이런 고민이 읽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은산(銀産)분리 이슈에서도 문 후보 측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이 결합한 핀테크 등 신산업 육성을 위해선 은산분리 완화가 필요하지만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용인해선 안 된다는 명분론에 막혔기 때문이다. 문 후보 스스로도 입장이 미묘하다. 그는 올 1월에는 “금융이 재벌의 금고가 돼서는 안 된다”고 공언했다. 그렇지만 지난 14일 벤처창업인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선 “현재 국내 핀테크 산업을 보면 이중 삼중으로 규제가 이뤄져 있다. 이제는 사전규제에서 사후규제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은산분리는 비금융회사가 은행 지분을 4%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하는 은행법 규정으로 사전 규제에 포함된다.
 
당장 인터넷전문은행 두 곳은 혼란에 빠졌다. 지난 3일 KT·우리은행 주도로 출범한 K뱅크, 오는 6월 영업에 들어가는 카카오뱅크는 추가적인 자본 증자 없이는 향후 정상 영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두 은행 모두 전산망 구축을 위해 자본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이미 다 써버린 상황”이라며 “당분간은 흑자를 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연내 증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규제에 따라 제대로 된 영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문 후보의 경제정책 관련 입장이 다소 불명확해진 이유로 ‘총천연색 선거캠프’를 꼽는다. 관료 출신의 김진표 의원과 이용섭 전 의원, 5년 전 박근혜 대통령 선거캠프에 참여한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 다소 진보적인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학자·전문가만 약 900명 모인 문 후보의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소장은 참여정부 출신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맡고 있다.
 
안 캠프, 공정위 역할 강화 내걸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보안 소프트웨어 ‘V3’를 개발한 벤처기업가 출신이다. 그가 몸담았던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는 삼성SDS, SK C&C 등 대기업 계열 시스템통합(SI) 업체가 이른바 ‘갑질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다. 과도하게 단가를 낮추거나 프로젝트 완료일을 상의 없이 앞당기고, 심지어 하청업체의 직원을 빼오는 일까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자신의 경험을 배경 삼아 안 후보는 기업분할명령제 도입을 대기업 관련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기업분할명령제는 시장 독과점이 장기간 지속되고 현행법상 규제만으로 해결이 어려울 경우 법원에서 기업을 쪼개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 11일 안 후보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초청간담회에서 “미국에서 통신시장을 독점했던 AT&T를 미국 공정위가 산산조각 냈고, 이를 계기로 미국이 통신·인터넷 강국이 됐다”며 “어떤 기업이든 독과점 폐해가 있을 시 공정위가 분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7년 미 법무부로부터 반독점 제소를 당한 AT&T는 7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84년 1월 독립 회사 8개로 분할됐다. AT&T에서 분리된 소규모 회사 가운데 한 곳이 현재 미국 이동통신시장 1위 업체 버라이즌이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소비자 후생을 갉아먹는 독점 기업 하나를 여러 개로 쪼갰더니 새로운 혁신이 생겨나 경제가 성장했다”며 “독과점 문제를 국가가 조율할 수 있는 데다 법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도 기업이 조심하는 예방 기능을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98년부터 4년 가까이 이어졌던 마이크로소프트(MS)와 미국 정부 간의 반독점 소송도 안 후보 캠프에서 눈여겨보고 있는 사례다. 당시 MS는 운영체제(OS) ‘윈도 98’을 출시하면서 윈도에 ‘인터넷익스플로러(IE)’를 결합해 판매했고, 미 법무부는 이를 전형적인 끼워팔기로 판단했다. 실제 1심 법원이 2000년 6월 MS를 검색과 OS, 두개로 분할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으나 2심에서는 MS가 승소했다. 한 외국계 ICT 업체 임원은 “미국은 지금도 구글을 상대로 반독점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며 “제4 이동통신 사업 추진을 내건 안 후보의 입장을 볼 때 이동통신 시장이 독과점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기업분할명령제에 대해선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77년 이 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선 단 한 번도 실제 집행 사례가 없다. 심지어 미국조차 AT&T와 1911년 스탠더드오일(현 엑손모빌)에만 적용됐다. 노무현 정부가 2003년 제도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었지만 결국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공정위에 기업 분할 권한을 주는 일은 재산권 침해일 뿐 아니라 역효과를 초래할 소지가 크다”며 “글로벌 스탠더드도 아니고 검증받은 사례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홍준표·유승민, 감세·증세 서로 엇갈려
이외에도 안 후보는 공정위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약을 내놓고 있다. 공정위 상임위원 임기를 3년에서 5년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제안이 대표적이다. 안 후보가 공정위 위상 강화를 앞세우자 문재인 후보도 공정위 내 조사국을 다시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 12월 해체됐던 조사국은 ‘공정위의 중수부’로 불렸다. 문 후보는 기업 인적 분할 시 자사주 의결권 활용 금지를 상법 개정안으로 내놨고, 안 후보는 지주회사가 보유해야 할 자회사 지분을 올리는 방안(현행 20%→30%)을 공약에 포함시켰다.
 
전에 없이 강도 높은 규제·감독이 예상되지만 재계는 속수무책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에 과도하게 집중된 경제력을 완화시킨다는 취지는 바람직하다”면서도 “앞에선 지주사 전환을 권장해 놓고 세부적으로는 의결권 제한을 공약한다면 기업 대주주 입장에선 퇴로가 막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기업의 투자·고용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우려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주요 후보 5명 가운데 유일하게 감세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법인세 인상을 ‘최후 수단(last resort)’으로 남겨놓은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와는 대조적이다. 지난 19일 KBS 초청 토론회에서 홍 후보는 “법인세는 감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규직을 많이 채용하는 기업엔 오히려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는 게 홍 후보 주장이다. 문재인 후보 측이 주장하는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과 관련해서도 홍 후보는 반대를 분명히 했다. 그는 “국민 35~40%가 세금을 안 내고, 상위 20%가 전체 소득세의 93%를 낸다”며 “부자감세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홍 후보는 대기업 오너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선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계열사 중 오너 일가 지분이 30%(비상장사는 20%) 이상이 규제 대상이지만 이를 20%로 낮추는 방안이다.
 
경제학 박사(미 위스콘신대) 출신인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법인세·소득세뿐만 아니라 부가가치세(현행 10%)까지 최후 수단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현철 바른정당 수석전문위원은 “법인세는 이명박 정부 전 수준(25%)으로 환원하자는 것이 기본적인 방향”이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조세부담률에 이를 때까지는 세금을 좀 걷더라도 대규모 증세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법인세·소득세 인상에 더해 ‘사회복지세’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심 후보의 사회복지세는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특별 목적세 성격을 띤다. 아직 구체적인 세율은 밝히지 않았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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