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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재능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나는 왜 발레를 계속 하고 있는 거지? 잘하니까?”
 

천재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의 모든 것, 영화 ‘댄서’
감독 : 스티븐 캔터
출연 : 세르게이 폴루닌
등급 : 15세 관람가

뭐 하나 특출난 재능 없는 갑남을녀들에겐 이 무슨 배부른 투정인가 싶겠지만, 누군가에겐 삶을 통째로 내건 심각한 질문이었다. “골반이 끝없이 벌어지는” 타고난 신체를 갖고 태어나 열아홉 살에 영국 로열발레단 최연소 수석무용수로 발탁된 천재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28). 13일 개봉한 영화 ‘댄서’는 완벽에 가까운 춤으로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짐승’이란 찬사를 받았으나, 환호 뒤편에선 깊은 혼돈과 싸웠던 한 청년의 내면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우크라이나 시골 마을 출신인 폴루닌은 네 살 때 체조를 시작했고, 다섯 살에 발레로 전환했다. 눈 밝은 엄마는 아들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키예프의 발레학교에 진학시켰다가, 13살에는 영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하지만 집에는 아들의 천재성을 뒷받침할 돈이 없었다. 아빠와 할머니는 폴루닌의 학비를 벌기 위해 포르투갈과 그리스로 떠났고, 폴루닌과 함께 런던에 온 엄마가 체류 자격 때문에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폴루닌은 발레 명문인 영국에서도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며 2007년 영국 로열발레단에 입단했다. 그리고 3년 만에 19세 최연소 수석 무용수로 발탁된다. 세상은 아름다운 신예에 열광했고, 그의 인기는 아이돌급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톱스타 발레리노는 행복하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한다는 부채감에 스스로의 몸을 혹사했다. 실력이 늘어갈수록 고통도 커졌다. 가족이 다시 모여 살 그 날을 위해 연습, 또 연습하던 그는 부모님의 이혼 소식이 들려오자, 무너지고 만다.  
 
이후 그의 일탈은 유명하다. 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라는 무거운 이름에 일부러 반항이라도 하듯 온몸에 문신을 새기고, 클럽을 드나들며, 약물 복용 스캔들에도 휩싸였다. ‘발레계의 제임스딘’이라는 별명으로 타블로이드 신문의 1면을 장식하던 그는 결국 2년 만에 스스로 무용단을 나오고 만다. 자신에게 가혹했던 엄마를 원망하며, 그때까지 한번도 가족을 공연장에 초대하지 않았다.  
 
영화는 어릴 적 그의 가족이 찍은 홈비디오 화면과 사진, 가족들의 인터뷰 등을 교차하며 발레 천재 너머에 있는 ‘인간’ 세르게이 폴루닌을 그려나간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영화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의 압도적인 춤이다. 사자같은 걸음으로 걷다 돌연 중력을 거스르며 새처럼 점프하는 모습은 발레를 전혀 모르는 이가 보더라도 ‘천재란 저런 것이군’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영화의 후반부엔 큰 선물이 있다. 런던을 떠나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그가 2015년 발레계 은퇴를 결심하며 하와이 마우이섬의 텅 빈 집에서 추는 마지막 춤이다. 사진계의 거장 데이비드 라샤펠이 촬영한 이 영상은 유튜브에 공개돼 조회수 1900만뷰를 넘어서며 큰 화제를 모았다. 아일랜드 가수 호지어의 ‘테이크 미 투 더 처치(Take me to the church)’에 맞춰 흐느끼듯, 때론 절규하듯 움직이는 폴루닌의 모습은 그동안의 환희와 고통을 응축해놓은 듯 슬프게 아릅답다.    
 
그의 인생은 탄광촌의 발레 천재 소년을 그린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실제 인간의 이야기인만큼, 픽션처럼 소박한 감동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영화엔 폴루닌의 춤이 무수히 담겨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12년 1월의 새벽, 그의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짧은 영상이다. 왕립발레단을 탈퇴하겠다 선언하고 숙소로 돌아온 그가 눈이 쌓인 숙소 앞마당에서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뛰어오른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그가 가장 자유롭고 행복해보이는 순간이다. 인간이란 ‘재능-노력-성공-행복’의 깔끔한 도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임을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2년 전 발레계를 떠난 이 천재는 무얼 하고 있을까.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할리우드에서 제니퍼 로렌스와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올해 말 개봉 예정인 이 영화는 전직 발레리나가 주인공으로, 폴루닌의 춤 장면 역시 등장할 것이란 예상이다. 또 ‘20세기 가장 위대한 발레리노’로 불리는 루돌프 누레예프의 전기 영화에도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니 그의 춤을 볼 기회는 또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 자신의 재능이 한없이 버거운 천재는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최선을 다해 춤출 때 가장 즐거우니까요. 공기를 가르며 점프할 때면 ‘이게 나구나’ 싶어요.” ●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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