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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보다 진한 진곰탕에 여성들 반해

아버님이 편찮으셨다. 의사는 뇌경색이 두 번 지나갔다고 했다. 노인에게 많이 발생하는 이 질환은 언어가 마비되고 반신불수가 되기도 하는 무서운 병이다. 다행히도 그런 심각한 증상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식사 장애가 생겼다. 삼킨 음식을 식도로 보내는 것도 뇌의 기능인데, 이 기능이 고장 나면 음식을 이물질로 인식해 기침을 해서 내보내게 하려고 한다. 고칠 수도 없단다. 그저 차도가 있길 바라며 챙겨드리는 수밖에.  
 

이지민의 "오늘 한 잔 어때요?"
<26> 은성장

문제는 식사를 자꾸 기피하신다는 것. 가족들의 시름은 깊다. 뭐라도 든든한 걸 드시게 해야겠다 싶어서 한번은 도가니탕을 포장해갔다. 안 드시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맛있게 드셔서 안도했다. 도가니탕, 꼬리찜, 수육 같은 음식은 자주 챙겨드리면 좋겠다 싶다는 차에 을지로의 한 노포가 떠올랐다.  
 
을지로는 미식가들의 천국이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유명한 곳이 많은데, 오늘 소개할 곳은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을지로 인쇄골목길의 한 켠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는 ‘은성장’은 1972년 오픈해 올해로 45년차가 되는 곳이다. 그리 크지 않은 식당 곳곳에는 오랜 세월이 그대로 녹아 있다. 수수하고 깨끗하다. 홀에서 항상 손님을 맞는 여사장님의 조용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올해 77세인 이신자 사장님은 교사 출신이다. 대구에서 교직 생활을 하던 중 가세가 크게 기울자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에 식당을 차렸다. 힘이 들었지만 아이들 교육시키겠다는 생각으로 묵묵히 일했다. 그렇게 청계천 5가에서 9년, 자리를 옮겨 지금의 을지로에서 36년을 이어왔다.  
 
“그런데 사장님, 왜 이름을 은성장이라고 하셨어요? ‘장’ 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여관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라고 여쭈었더니, 처음 을지로에 자리잡을 당시엔 주변에 모두 ‘은성’이 붙어 있더란다. 은성 목욕탕, 은성 미장원, 은성 다방 등등. 그래서 은성 타운을 만들면 좋겠다 싶었는데, 다니던 절의 스님이 이 얘기를 듣고는 ‘은성장’이란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재미있는 건 다른 ‘은성’들은 다 사라지고 ‘은성장’만 남아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주방장 최낙화(70) 씨가 45년을 함께 해왔다는 사실. 20대에 만나 지금은 칠순이 된 그는 은성장의 김치, 반찬류부터 모든 음식을 맡아오고 있다. 많은 식당을 취재했지만 주방장이 이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한 건 정말 드물다. 가족보다도 더 끈끈한 관계가 아닐까. “쉽지 않은데…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했더니 사장님이 조용히 웃는다. “우리 주방장 고집이 보통이 아니에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자기가 하고, 주방에서 방해받는 걸 싫어해서 방송에서 취재 오겠다는 것도 거절했어요. 자식들은 홍보되는걸 왜 안 하느냐고 아까워하는데 주방장이 싫다는데 어쩌겠어요.” 가게 홍보도 포기하고 주방장의 손을 들어준 사장님도 참 대단하다.  
 
메뉴는 설렁탕·곰탕 등 식사 메뉴부터 수육·꼬리찜·도가니 무침 등 안주류까지 다양하다. 속이 든든한 메뉴가 많다 보니 점심때는 어르신들이 많이 찾아 온다. 씹기 부드러운 우설탕이나 도가니탕은 노인들이 즐겨 찾고, 설렁탕보다 국물이 더 진한 진곰탕은 여성들이 좋아한다. 소화가 잘 되고 속에 부담이 없어 사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뭔가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 싶어 슬쩍 여쭈었지만, 비법은 없단다. 핏물 잘 빼고 삶은 국물 버린 뒤 누린내 나지 않게 깔끔하게 적당하게 끓여내는 게 끝이라고. 그저 신선한 재료를 쓰고, 이윤 남기려고 오래 끓여 그릇 수를 늘리는 건 가장 지양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특이사항은 반찬으로 김치, 깍두기와 함께 파무침이 나온다는 점. 경상도식 파무침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찬이다. 파가 비싸고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아 계속 내놓기엔 부담이 되지만 손님들이 좋아해서 꾸준히 내놓고 있다. 식사에 곁들여 먹기도 좋지만 이 파무침 한 접시만 있으면 술 안주로도 좋겠단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가장 인기 있는 안주 메뉴는 모듬 수육과 꼬리찜. 모듬 수육의 경우 도가니·양·꼬리·머릿고기·양지 등 다양한 부위가 풍성하게 담겨 나온다. 딱 봐도 보양식. 별다른 양념을 가미하지 않고 깔끔하고 담백하게 삶아냈다. 꼬리찜은 중 사이즈가 4만원. 가격도 적당하고 양도 꽤 된다. 예부터 꼬리찜 하면 ‘소 한 마리의 영양을 먹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몸이 허하다 싶은 직장인들이나 중년 남성들이 꼬리찜을 찾는다. 내장 무침이나 매운 도가니 무침은 별미. 재료를 야채와 함께 매콤하게 볶아내 딱 소주안주다.  
 
지난 주말. 아버님을 모시고 이곳을 찾았다. 꼬리찜과 모듬 수육을 시켜드렸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드셨다. 평소보다 기침도 덜 하시고 즐겁게 식사하시는 모습에 어머님도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약주는 드시면 안되지만, 평소 즐겨 드셨던 막걸리를 오늘은 한 잔 잡수라며 한 병 시켰다. 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나고 가게를 나가며 사장님에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 모쪼록 오래오래 건강하시라고. 이 곳이 50년, 70년, 100년 가게가 될 때까지 이어갔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안타깝게도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다. 그저 문을 닫게 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 그리고 아버님을 비롯해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항상 그 자리에 건강하게 계셔주기를. ●
 
 
이지민 : ‘대동여주도(酒)’ 콘텐트 제작자이자 F&B 전문 홍보 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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