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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팔뚝 힘줄 같은…

카잘스가 녹음한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 녹음이 낡았지만 듣지 않을 수 없다.

카잘스가 녹음한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 녹음이 낡았지만 듣지 않을 수 없다.

봄 바닷길을 따라 산책을 했다. 갈증이 날 무렵, 멀리 편의점이 보였다. 생수 한 병을 사려고 문을 열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어서오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파묻는다. 조금 전까지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의 중간고사 시험 기간인가 보다. 대한민국 흙수저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아르바이트로 버텨야 한다.  
 

WITH 樂 :
파블로 카잘스의 첼로

혹시 2017년 대한민국 시간당 최저 임금을 아시는가? 시급 6470원이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 이조차 못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의 냉정함과 부당함을 맛보는 셈이다.  
 
음악가 중에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이야기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정신의 위대함을 재현하는 예술은 육체노동보다는 한 끗 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실제 그렇게 대접받는다.  
 
하지만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는 달랐다. 그는 자서전에서 “내가 예술가라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예술을 실현하는 과정을 보면 역시 하나의 육체노동자입니다. 나는 일생 내내 그래왔어요”라고 말한다.  
 
카잘스의 말이 예술을 육체노동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 서너 시간씩 첼로 연습을 빼먹지 않았던 그였기에 육체의 무한한 잠재성과 몸을 사용하는 노동에 대한 존중을 잊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20세기 역사의 중심에 서 있던 카잘스는 정치적으로도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파시스트 프랑코 정권이 스페인을 점령하자 미련 없이 고향 땅을 떠나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불의에 침묵하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에 대해서 사자후를 토했다. “예술가들이란 상아탑 속에서 살며 동료 인간들의 고통과 투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지요. 나는 그런 생각에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은 곧 나에 대한 모욕입니다.”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기 10년 전, 카잘스는 고향 카탈루냐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그의 의문은 실로 단순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부의 대부분을 노동자들이 만드는데 왜 그들이 우리 문화의 위대한 유산을 함께 즐기지 못하는가? 그는 노동자 음악협동조합을 만들어 노동자들도 클래식을 감상하고, 직접 음악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도록 격려했다.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연주자인 동시에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연주자로서 카잘스하면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어린 시절 그가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악보는 소년의 삶 뿐 아니라 인류의 음악사를 바꾸어 놓았다. 이 곡은 현재 세상의 모든 첼리스트들에게 성경과도 같은 곡이 되었다. 소년 카잘스의 발견과 평생에 걸친 연구, 바흐 음악에 대한 헌신이 없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카잘스의 바흐를 아무에게나 추천할 수는 없다. 열악한 음질이 문제다. 물론 녹음 상태가 지금 기준으로 보면 형편없긴 하지만 이 시기가 초기SP 녹음의 전성기이긴 했다. 에드윈 피셔가 34년 최초로 바흐의 평균율 녹음을 시작했고, 아르투르 슈나벨도 35년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완성한다. 카잘스가 무반주 첼로모음곡 녹음을 완성한 것은 39년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매년 쏟아지는 새로운 바흐 음반들 속에 역사적 의미만을 가지고 처음 접하는 분들의 귀를 괴롭힐 수는 없는 일이다. 카잘스의 녹음은 이 곡에 익숙해지고 난 뒤 무반주 첼로모음곡의 순례길에 올라 보고자 할 때 찾으면 될 것 같다.  
 
카잘스는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1733년산 고프릴러 첼로로 연주했다. 우리가 음반으로 만날 수 있는 그의 음악 대부분이 이 악기로 연주된 것이다. 하지만 둔탁한 녹음 탓에 첼로의 통울림을 거의 들을 수 없다. 요요마나 마이스키 같은 날렵한 첼로와는 연주방식도 음색도 크게 다르다.  
 
대신 나무가 나무에 몸을 부딪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일하는 자의 걷은 소매 위로 드러난 굵은 힘줄 같은 연주다. 타협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진지하고 묵직한 첼로 소리가 심장에 더 깊숙이 박힌다. 특히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가 ‘슬픔과 의지’라고 묘사한 모음곡 2번과 ‘어둠’이라고 해석한 모음곡 5번, 두 단조 곡에서 지나간 시간의 잡음 위로 들리는 첼로 소리는 어두운 심연을 돌아 나온다.  
 
생수 한 병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는다. 아르바이트생이 보던 공책을 접고 계산을 한다. “일하랴 시험공부하랴 고생 많아요”라고 했더니 잔돈을 건네며 환하게 웃는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미싱이 잘 돌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청춘은 여전히 힘겹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르바이트 학생들, 시험 잘 보세요!  ●
 
 
글 엄상준 TV PD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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