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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으려면

김병연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병연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유력 대선후보들은 한국의 동의 없는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다음 한국 대통령이 선제공격을 하지 말라고 미국에 요구한다면 트럼프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한국에는 북한 핵 개발을 막을 방안이 있나, 있다면 뭔가?’
 
미국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 정책은 여론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갤럽에 따르면 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시리아나 이란이 아니라 북한이다. 미국인 다수는 북한을 국제테러 집단인 이슬람국가보다 더 위험하다고 여긴다. 전문가들은 수년 내에 북한이 소형 핵과 이를 미국 본토까지 운반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자신의 형을 화학가스로 죽인 자가 핵무기를 들고 미국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을 미국인은 상상하기도 싫을 것이다.
 
트럼프의 ‘최대 압박과 개입’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그만큼 미국에 막중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사업가 출신 트럼프가 가장 중시하는 경제적 이익을 타협하면서까지 중국에 북핵 문제 해결을 압박할 정도로 절박하다는 얘기다. 중국이 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겠다는 말은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미온적이라면 미·중 무역 분쟁은 물론 한반도 평화가 깨어질 수 있으니 각오하라는 통첩을 날린 것이다. 그리고 시리아에 수십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초대형 폭탄을 투하하는 결정을 간단히 내림으로써 자신이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의 운명에 위중한 시기를 맞고 있다. 북한의 핵 고도화가 계속되고 모든 비군사적 조치가 효과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지 모른다. 지금 정신을 차리고 온 역량을 결집해 북한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면 나중엔 너무 늦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현명한 설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보다 더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막아야 할 필요와 이유를 가진 나라는 없다. 또 우리만큼 북한을 잘 아는 나라도 없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단계적 정책과 전략을 담은 ‘코리아 포뮬러(Korea Formula)’를 만들어 이를 기초로 미국·중국 등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우리 책임이자 권리다. 그러지 않으면 한반도의 운명은 미국과 중국이 결정하고 당사자인 한국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된다.
 
코리아 포뮬러는 경제제재로 들어가서 비핵화와 평화로 나오는 구도다. 제재는 강하게 그러나 가능한 한 짧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는 북한산 무연탄을 수입할 경우 연간 총액 약 4억 달러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그런데 중국이 지난해 12월 초과 수입한 금액과 올해 1~2월 수입한 금액의 합이 상한선에 근접했다. 중국 당국은 트럼프 정부의 보복을 고려한 때문인지 2월 19일 이후의 북한산 무연탄 수입을 전면 금지시켰다. 이것이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2%포인트 이상 하락하고 북한의 순외화수입도 30%가량 감소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다면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도 막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재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대북제재 효과는 떨어진다. 공식 무역이 밀무역으로 대체되고, 북한은 무연탄을 타국산인 것처럼 속여서 수출할 수도 있다. 미국이 2차 제재를 발동해도 미국과 거래하지 않는 중국의 소기업은 별 피해 없이 무연탄을 계속 수입할 수도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제재의 최대 효과는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과 국제기구의 핵 사찰을 받아들이는 정도일 것이다. 따라서 압박을 통해 이 단계에 이른 후 북한 비핵화를 어떻게 완성시킬 것인지에 대한 설계가 필요하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시점에서 남북은 단일 시장을 위한 교류의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기초로 북한의 구조적 변화를 내부에서 유도하는 전략을 펴야 한다. 비핵화를 외부 압박으로 달성하기는 어렵다. 대신 동북아의 공동 시장 형성과 인프라 연결, 그리고 북한 내 시장화를 통해 북한의 경제와 사회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핵을 지키려는 김정은에게 반하는 인센티브를 가진 그룹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주민뿐 아니라 관료들마저도 경제적 이익에 몰두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된 것이 1970년대 말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이 확산된 동력이다. 92년 소련 사회주의 붕괴와 민주주의로의 이행도 근본적으로는 소련 경제와 사회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이 중차대한 시점에 어떤 대통령 후보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구체적인 설계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준비 없이 이대로 가면 대북정책은 또 실패한다. 그러나 이번 실패의 대가는 너무 엄중하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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