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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일간 신문' 조보 추정 문서 발견

경북 영천시 용화사 지봉스님이 공개한 1577년 음력 11월 23일자 조보. 전날 밤의 날씨와 별자리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다. 영천=김정석기자

경북 영천시 용화사 지봉스님이 공개한 1577년 음력 11월 23일자 조보. 전날 밤의 날씨와 별자리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다. 영천=김정석기자

『조선왕조실록』 기록에만 언급됐던 세계 최초의 신문 '조보(朝報)'의 실물로 추정되는 문서가 발견됐다. 손으로 쓴 필사본이 아니라 조판으로 찍어낸 신문 형태의 활자본이다. 지금까지는 1660년 독일에서 발행된 '라이프찌거 짜이퉁(Leipziger Zeitung)'이 세계 최초의 신문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보다 83년이나 앞선 1577년 발행된 조보의 실물로 보이는 문서가 나오면서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독일 '라이프찌거 짜이퉁'에 83년 앞서
지봉스님, 고서적 경매 사이트서 입수
학계 관심 집중 "학술적 가치 매우 높아"

조보로 추정되는 인쇄물은 경북 영천시 야사동에 위치한 용화사에서 18일 공개됐다. 용화사 주지 지봉스님은 "이달초 고서적 경매 사이트에서 입수했다"고 말했다. 지봉스님은 "지난 1월 경매 사이트에 조보가 올라왔는데 4월까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내가 20년간 서지(書紙) 연구에 관심이 많았기에 입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봉스님이 입수한 자료는 8장 분량이다. 조보에 게재된 것으로 보이는 기사들이 담겨 있다. 1577년 음력 11월 6일과 15일, 19일, 23일, 24일 등 모두 5일치다. 6일자에는 공의전(인성왕후)의 안부를 묻는 내용, 경연(經筵·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협의하고 학문을 논하던 일)이 열리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어있다. 15일자에는 소 수백마리가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는 내용도 실렸다. 23일자에는 그날의 날씨와 별자리를 기록한 내용이 있다. 24일자에는 형조정랑 이정형(1549~1607) 등 신하들의 인사(人事)이동 내용이 적혀 있다.
경북 영천시 용화사 지봉스님이 공개한 1577년 음력 11월 24일자 조보. 형조정랑 이정형 등 신하들의 인사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다. 영천=김정석기자

경북 영천시 용화사 지봉스님이 공개한 1577년 음력 11월 24일자 조보. 형조정랑 이정형 등 신하들의 인사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다. 영천=김정석기자

 
조보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중 『선조실록』 1577년 음력 11월 28일자에 처음 등장한다. 선조가 우연히 조보의 존재를 알게 되자 대신들을 꾸짖는 내용이다. 선조는 "내가 우연히 조보를 보건대 마치 고사(古史)처럼 인출(印出)했으니 매우 놀랄 일이다. 당초 누가 주장해 인출했는가. 어째서 아뢰지 않고 마음대로 만들었는가"라고 질책했다고 한다. 이후 선조는 조보 발행에 참여한 30여 명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고 선조실록은 기록했다.
 
선조가 조보 발행에 이렇게 분노한 이유는 민간이나 외국에 국가 기밀이 빠져나가고 왕실의 체면이 구겨진다고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선조는 조보 발행에 대해 "이는 우리나라에서 있지 않던 변고"라고 말할 정도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지봉스님은 "조보 발행은 당시 조정에서는 매우 큰 사건이었다. 조보를 발행한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사라졌고 조보를 입수한 사람들도 이를 폐기하거나 숨겨야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에 발견된 조보 추정 문서도 서적 표지를 만드는 데 재활용됐다가 뒤늦게 발견됐다.
18일 경북 영천시 용화사에서 주지 지봉스님이 조보로 추정되는 문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천=김정석기자

18일 경북 영천시 용화사에서 주지 지봉스님이 조보로 추정되는 문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천=김정석기자

 
학계에서는 이 문서가 실제 조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형태적·내용적 측면으로 미뤄봤을 때 진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종이의 특성이나 글자들이 배치된 형태, 목활자의 상태, 책의 여백 간격 등이 16세기 후반에 쓰였던 형태이고 내용 면에서도 다른 기록들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조보가 서적처럼 접는 형태로 발행됐다는 점이 예상 밖이고 내용에 이두(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표기법)가 사용됐다는 점이 특이하다"며 "문헌정보학과 역사학적으로 가치가 대단히 높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아쉬운 점은 조보의 극히 일부만이 발견돼 문화재로 인정받기에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영주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세계 최초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과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 모두 한국에서 나왔는데 활자 조판 형태의 일간 신문도 국내에서 최초로 발간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지학자 김영복씨는 "조보는 중앙 정부의 주요 결정이나 인사 사항 등을 지방 관청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며 "조선 후기의 필사본 조보가 그간 종종 나왔지만 (임진왜란 전인)조선 전기의 인쇄본 조보는 아직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유물이 (8장의) 조각 형태로 나온 만큼 좀 더 정확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천=김정석 기자,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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