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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대선 슬로건의 운명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19대 대통령 선거를 알리는 현수막과 벽보가 일제히 길거리에 나붙었다. 첨단은 아니라 해도 대선주자들의 슬로건을 한눈에 보기엔 이만한 것도 드물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슬로건은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이다. ‘이게 나라냐’는 촛불 민심에 응답하면서 안정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국민이 이깁니다’라고 적었다. 중도와 보수 표심의 결집이 선거일까지 이어지리라는 자기최면이자 대국민 호소다. ‘당당한 서민 대통령’(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보수의 새 희망’(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노동이 당당한 나라’(심상정 정의당 후보)라는 글귀도 눈길을 붙잡는다.
 
정치의 백미가 말이라면 선거의 백미는 슬로건이다. 길지 않은 문장 속에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효율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토머스 제퍼슨은 “모든 재능 중에서도 으뜸은 한 단어로 족할 것을 두 단어로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하물며 대선이라면 슬로건의 역할은 더욱 막중하다. 국민 다수가 원하는 시대정신까지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도 그랬다. 정치적 이단아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외쳤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지미 카터를 누를 때 썼던 문구를 재활용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주인공 자리에서 밀려난다는 느낌을 받았던 백인 중산층과 노동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 2008년 버락 오바마의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 92년 빌 클린턴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도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명카피로 평가된다.  
 
역대 한국 대선에서 승리한 슬로건도 시대정신을 잘 포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내세워 승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07년 슬로건은 ‘성공하세요,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이었다. ‘새로운 대한민국’(2002년 노무현), ‘경제를 살립시다’(97년 김대중)도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상징한다.  
 
3주 뒤 대선이 끝나면 슬로건들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패자는 사라지고 승자만 남게 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승자에겐 더 중요한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선택받은 시대정신을 오롯이 현실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여기에 성공한 대통령은 흔치 않았다. 화려한 슬로건도 대부분 5년 뒤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다. 뒤따라선 안 될 전철이다. 대선 슬로건을 당당히 역사에 남길 수 있는 새 대통령을 기다린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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