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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은 나의 힘 … 작품으로 만나는 작가의 사소한 취향

덕질(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관련된 것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행위), 입덕(특정 분야의 덕질을 시작함), 탈덕(덕질을 그만둠), 덕업일치(덕질과 직업의 일치, 덕후가 자신의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은 경우), 덕밍아웃(스스로 덕후임을 밝힘)…. ‘덕후’ 문화가 우리 사회에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엿보게 하는 신조어들이다.
 

북서울미술관 ‘덕후 프로젝트’전
10년 모은 휴대폰 액세서리·피규어
플라이 낚시와 엮은 미술작품도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御宅)’를 국내 네티즌들이 ‘오덕후’로 바꿔 부르다 생겨난 줄임말. 의미도 조금씩 달라졌다. 일본의 ‘오타쿠’가 대중문화, 특히 하위문화에 몰입하는 이들을 별종처럼 여기는 의미로 출발했다면 요즘의 ‘덕후’는 ‘정치 덕후’ ‘클래식 덕후’ 등 한 분야에 몰입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폭넓게 쓰인다. 무엇보다 초기의 부정적 뉘앙스가 줄고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급 지식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늘었다.
 
김성재 작가의 ‘수집에서 창작으로’, 2017, 조비클레이, 140x400㎝.

김성재 작가의 ‘수집에서 창작으로’, 2017, 조비클레이, 140x400㎝.

서울 중계동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이 마련한 ‘덕후 프로젝트:몰입하다’ 역시 덕후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바탕이다. 젊은 작가 10여명의 신작을 통해 덕후 문화가 지닌 기질적 특징을 조명하는 점에서 미술전시의 새로운 소재 발굴이다. 기혜영 운영부장은 “장르성, 주변성보다 대안성, 혁신성을 조명하려 했다”고 전했다.
 
신창용 작가의 ‘킬 빌1’, 2017, 캔버스에 아크릴, 70x117㎝.

신창용 작가의 ‘킬 빌1’, 2017, 캔버스에 아크릴, 70x117㎝.

먼저 덕질의 기본은 수집. 10년 동안 모아온 수집품을 보여주는 박미나 작가의 ‘핸드폰 액세서리’ 연작, 그동안 모은 방대한 피규어의 일부와 자신이 직접 만든 피규어를 함께 보여주는 김성재 작가의 ‘수집에서 창작으로’는 각각 그 제목만 봐도 이해가 쉽다. 이현진 작가와 신창용 작가는 좋아하는 만화나 영화의 장면을 직접 차용, 각각 흑백의 드로잉이나 아크릴 채색화를 선보인다. 신창용 작가는 이같은 그림을 아예 ‘덕화’(덕후의 그림)라 부른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장르적 특성을 반추하거나 작품의 특징을 변주하기도 한다. 장지우 작가의 영상작품 ‘지우맨 에피소드’ 연작은 작가가 직접 ‘지우맨’이라는 히어로가 되어 일본 특촬물이 지닌 전형성을 드러낸다. 이권 작가의 ‘평화의 시대’는 영화 ‘스타워즈’시리즈의 캐릭터들이 극 중 적대 관계라도 다함께 어우려져 춤판을 벌이는 모습을 연출한다.
 
대중문화가 다는 아니다. 식물 덕후(김이박 작가의 영상작품 ‘하엽정리’), 플라이 낚시 덕후(진기종 작가의 설치작품 ‘Match the Hatch’)도 등장한다. 진기종 작가는 가짜 미끼로 실제 물고기를 잡는 것을 “실제의 모방을 통해 진본을 얻어내는 행위”로 규정, 그의 다른 미술작업이 지닌 특징과도 연관을 짓는다. 화려한 케이크의 유혹을 마치 실제 제과점의 SNS(소셜네트워크)용 홍보영상인양 만들어 지금 시대 유행이 지닌 감수성을 부각시키는 작품(송민정 작가의 ‘Cream, Cream Orange’)도 있다.
 
반면 조문기 작가의 ‘초자연현상 매니아 류혹성’은 ‘작가=덕후’라는 전제 대신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작가가 초자연적 현상에 현혹된 가상의 덕후 ‘류혹성’을 연기하며 덕후에 대한 통념과 고정관념을 드러낸다.
 
전반적으로 미술작업의 스펙트럼을 통과한 덕후 문화, 그래서 날 것의 맛보다는 정제된 솜씨가 두드러진다. 일반인 덕후를 전시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를 묻자 김채하 큐레이터는 “관람객의 관심이 어느 정도의 덕후냐에 초점이 맞춰질까 우려했다”며 “덕후의 사회적 의미를 좀 더 객관적으로 읽어내는 전시로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좀 더 적나라한 덕후 문화를 기대한다면 전시장 마지막에 자리한 ‘더 쿠 메이커’가 그래서 더 흥미로울 수 있다. 이른바 ‘덕질 권장 잡지’인 ‘더 쿠(The Kooh)’에 실린 몇몇 내용을 전시물로 옮겨 놓았다. ‘수제 네비게이션’이라며 색종이를 접어 동서남북을 표시하는 낯익은 놀잇감 제작법을 단계별 사진과 함께 소개하거나 일본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고기 요리법을 진지하게 소개하는 대목에선 덕후 문화의 또다른 핵심인 유희성, 돈벌이와 관계없이 몰입하는 기질을 체감할 수 있다.
 
이 잡지의 고성배 편집장은 이번 전시에 참여한 이들 중 유일하게 미술작가가 아닌 경우다. 그는 독립잡지로 펴내고 있는 ‘더 쿠’를 "다섯 권 모으면 ‘오덕후’, 열 권 모으면 ‘십덕후’(발음 때문에 욕설로도 쓰이지만 여기서 ‘십’은 완결성을 뜻한다)가 된다”고 내걸고 있다. 그래서 "10권까지 내면 잡지제작을 중단할 것”이라고 당당히 계획을 밝혔다. 이번 전시는 7월 9일까지 열린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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