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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몇 잔 먹다 보니 칠십이여”… 칠판 위엔 必日新 세 글자

[정재숙의 공간탐색] 소설가 김훈의 작업실
김 훈 1948년 서울 생. 신작 발표 때마다 독자와 평단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소설가 겸 산문가. 일간·주간지의 신문기자와 편집국장을 거치며 단련된 육하원칙과 사실 묘사 위주의 글쓰기가 장기다. 이순신의 삶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칼의 노래』로 2001년 동인문학상을 받은 뒤 영화로도 제작된 『화장』으로 이상문학상, 단편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 장편소설 『남한산성』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자신과 아버지 세대가 겪은 현대사를 다룬 장편소설 『공터에서』를 펴냈다. 올 하반기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이 개봉될 예정이다.

김 훈 1948년 서울 생. 신작 발표 때마다 독자와 평단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소설가 겸 산문가. 일간·주간지의 신문기자와 편집국장을 거치며 단련된 육하원칙과 사실 묘사 위주의 글쓰기가 장기다. 이순신의 삶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칼의 노래』로 2001년 동인문학상을 받은 뒤 영화로도 제작된 『화장』으로 이상문학상, 단편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 장편소설 『남한산성』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자신과 아버지 세대가 겪은 현대사를 다룬 장편소설 『공터에서』를 펴냈다. 올 하반기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이 개봉될 예정이다.

창작의 산실은 내밀한 처소다. 한국 문화계 최전선에서 뛰는 이들이 어떤 공간에서 작업하는지 엿보는 일은 예술가의 비밀을 훔치듯 유쾌했다. 창조의 순간을 존중하고 그 생산 현장을 깊게 드러내려 사진기 대신 펜을 들었다. 펜화가인 안충기 중앙일보 섹션에디터는 짧은 시간 재빠른 스케치로 작가들의 아지트 풍경을 압축했다. 이 연재물의 첫 주인공은 작가 김훈(69)이다. 언론인 생활을 30년 가까이 한 뒤에 소설가가 된 그는 여전히 현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최근 세월호가 거치된 전남 목포신항을 찾아 반잠수식 선박에 실린 세월호를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그는 취재수첩에 “칸칸이 캄캄하다”고 썼다. 

중국집 배달용 철가방은
소설·산문·자료 넣는 보관함

글쓰기가 사실은 가내 수공업
책상위 각종 사전들은 ‘工具書’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 없으면
단 한 줄도 쓰지 못한다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길 바라지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면
몇 개의 이미지가 걸려 들어오지요


나무판 세 개를 연결해 ㄴ자 형으로 만든 책상에 앉은 김훈 작가. 사진 오른쪽 아래 원고 보관함으로 쓰는 철가방이 보인다.

나무판 세 개를 연결해 ㄴ자 형으로 만든 책상에 앉은 김훈 작가. 사진 오른쪽 아래 원고 보관함으로 쓰는 철가방이 보인다.

평범한 오피스텔 철문 윗부분에 명함 한 장이 붙어 있다. ‘김훈’ 두 글자에 정자 그림이 새겨져 있다. “들어와요.” 손님을 맞은 방주인은 문패가 인상적이라는 말에 “단원 김홍도 풍속화의 한 부분인데 정자에 기대앉아 조는 노인이 바로 나”라고 했다.
 
그는 1992년 당시 허허벌판이던 경기도 일산에 처음 정착한 원주민 1세대다. 6년 전, 살림집에서 좀 떨어진 장항동에 집필실을 얻었는데 15층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이라 석양 햇살이 뜨겁고 한여름엔 찜통더위가 고역이다. 화장실 하나, 작은 주방시설을 빼면 예닐곱 평 직사각형 방은 단출하다. 글쓰기에 필요한 것들만 놓인 실내 풍경은 사실에 천착하는 그의 문체를 닮았다.
 
소설가 김훈은 컴퓨터를 쓰지 않는다. 외부와의 연락은 팩스를 애용하며 이런 불편함을 짐짓 즐긴다. 컴퓨터 없는 집필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없으면 단 한 줄도 쓰지 못한다”는 그의 말이 열쇠다. 자신의 한자 이름 ‘金薰’을 박아 넣은 작고 큰 원고지 두 종류가 책상 밑에 가지런하다. 주로 작은 원고지에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운 뒤 고쳐 쓴다. 수동식 연필깎이와 앙증맞은 쓰레받기가 그 해묵은 수작업을 돕는다. 글쓰기가 제 궤도에 오르면 책상 한구석에 지우개 똥이 수북해진다. 그가 장편소설 『칼의 노래』의 첫 문장 ‘꽃이 피었다’를 쓸 때 담배를 한 갑 피우면서 조사 ‘은’을 ‘이’로 고쳤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책상 위로 늘어뜨려진 한약방 저울 위에 다 쓴 몽당연필 몇 개가 놓여 있다. 한의사였던 외할아버지의 유품으로 극약 처방 때 양을 측정하던 소형 저울인데 작가는 “저게 내 밥벌이의 흔적이자 용량”이라고 말했다.
 
작가가 늘 앉아 일하는 의자 뒤에 엉뚱하게도 중국집 배달용 철가방이 의젓하다. 그 고색창연한 양철통이 원고 보관함이다. 경기도 안산 선감도 작업실 시절에 거리에서 주웠다. 그는 “요샛말로 득템한 셈인데 민속품이라 할 만하다”고 자랑했다. 세 단으로 나눠진 통 맨 위에 산문, 가운데 소설, 맨 밑에 자료를 넣어둔다. 통에 원고가 차오르면 자신의 육체노동이 거둔 수확의 밀도를 가늠한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경건한 것이지요. 나는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라지요. 그래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국선도로 몸을 정비하고 이 방으로 출근해 그날 봐야 할 책이나 자료를 읽고 들여다보지요. 재주가 없으면 부지런해야 된다는 것, 내가 나 자신에게 강철 같은 기운을 부과하는 것이지요.”
 
작가는 한때 자신의 직업을 ‘자전거 레이서’라 밝힐 지경으로 자전거를 즐겨 탔다. 과연 작업실 한복판에 산악자전거가 거꾸로 누워 있고, 현관에 또 한 대가 기대서 있다. 간이침대 뒤쪽 벽에 매달린 건 자전거용 스노타이어다. 예전처럼 자주 오래 타지는 못하지만 문장을 밀고 가는 그의 강건하고 차진 몸은 오랜 자전거 타기의 산물이다.
 
“협소하고 왜소한 작은 길로 가려 하죠. 사람들로 가득 찼던 광화문광장이 다시 공터로 변한 걸 봤지요.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고 적었죠.”
 
벽 한쪽을 차지한 긴 책상은 오로지 사전과 법전들이 보기 편하게 펼쳐지거나 꽂혀 있는 ‘김훈 식 자료실’이다. 큰사전 대여섯 개 위에 다양한 크기의 돋보기가 놓여 있다. 백과사전, 한글사전, 영어사전, 옥편, 법전, 고사성어 사전, 명구 대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이 사전박람회장을 이뤘다. 그는 이들을 ‘공구서(工具書)’라 불렀다. 사진이나 그림을 세밀히 들여다보는 데 쓰는 확대경인 루페도 있다.
 
“나는 법전 읽는 걸 좋아하지요. 문장 하나하나를 따지려면 진이 빠지는데 그런 노력 없이는 문체를 만들 수 없지요. 소설을 쓰기 위해 많은 데를 다니는데 꼭 망원경 두세 개를 챙기죠.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면 몇 개 이미지가 걸려 들어오지요. 그걸 붙들고 세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문학이지요. 사실을 사실로서 전하는 힘이 세야 하지요. 나는 사실과 생활의 바탕 위에다 진실을 건설할 수 있다고 믿어요.”
 
팩스 위에 작은 칠판 하나가 눈길을 끈다. 그 위에는 한자 세 글자 ‘必日新’이 분필로 적혀 있다. ‘필일신’은 중국 송나라 때 주자학 입문서인 『근사록(近思錄)』에 나오는 말이다. 군자는 날마다 반드시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필일신의 뜻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현상 유지가 아니라 반드시 퇴보한다는 엄격한 경계의 뜻을 담고 있다고 풀었다. “나는 지금 필일신이 아니라 필일퇴 상태인 것 같으니 저 구절을 지워야 하나 생각 중”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예전에는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라는 구절을 써놓았는데 여기가 무슨 공장이냐는 친구 말에 한마디 했다고 한다. “글쓰기가 사실은 가내수공업이다.”
 
이 방의 이름이 있는가 물었다. 그는 자료 선반에 놓인 글씨 한 점을 가리켰다. ‘風化庵’. 풍화암의 속뜻이 무엇인가 했더니 “자연의 섭리 속에 부서져 사라지겠다는 것”이라 답했다. 한때는 ‘격문당’이라 불렀다 한다. 모기를 잡는 집이란 뜻이다.
 
그는 아홉 번째 장편소설 『공터에서』 작가 후기에 “지난 몇 년 동안, 늙기가 힘들어서 허덕지덕하였다”면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났다고 썼다.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첫날은 눈뜬 심청 아비 심정이었다가 다음 날이 되니 다시 흐리멍덩한 예전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며 “여생의 시간을 아껴 써야 할 것”이라 말하는 목소리가 쓸쓸했다.


창문 밖 해가 지는 일산호수공원을 바라보던 그가 “목이 마르다”고 했다. 얼마 전 일본어판 칼의 노래 인세를 받아 지인들과 한잔했는데 술맛이 각별했다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술 몇 잔 먹다 보니 칠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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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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