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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도시물 먹은 북한산 멧돼지, 개 무서워 않고 불빛도 안 피해

멧돼지 서울살이 10여 년
휴일이던 지난 2일 새벽 암컷 멧돼지가 서울 광화문에 나타났다가 택시에 치여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북한산에서 내려온 멧돼지가 인근 주택가에 발견되는 사례는 많았지만 도심 한복판인 광화문까지 진출한 것은 드문 일이다. 북한산 멧돼지는 왜 자꾸 시내로 내려오는 것일까. 본지가 지난 2월 말부터 북한산 현장 취재 등을 통해 북한산 멧돼지 실태를 취재했다.
 
지난달 3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청 옆 주택가와 북한산 숲이 만나는 경계 지점.
 
푹 꺼진 좁은 도랑 옆으로 풀이 밟힌 흔적이 이어져 있었다. 멧돼지가 밟고 지나다닌 흔적이었다. 그 옆에는 멧돼지 배설물도 눈에 띄었다.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검은색 배설물은 오래돼 바싹 마른 것도 있었고, 2~3일 정도 돼 보이는 것도 있었다.
 
동행한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의 한상훈 박사는 “이곳은 멧돼지가 도심 쪽으로 이동하는 주된 통로”라며 “배설물 속에 섬유질이 많은 것을 보니 먹이가 부족한 상태”라고 설명해줬다. 영양가 있는 먹이 대신 풀뿌리로 연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근에는 한 박사가 설치한 무인카메라가 있었고, 멧돼지 퇴치를 위해 녹음된 동물 소리를 들려주는 스피커도 있었다. 한 박사는 “호랑이·개 소리 등을 들려줬지만 멧돼지가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고 사람 음성이 녹음된 것도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개가 짖고 사람이 집 밖으로 나와 고함을 질러야 달아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산에 멧돼지들이 들어온 것은 2003~2004년 무렵이다. 당시 경기도 포천 등지에서 멧돼지 포획이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북한산까지 쫓겨 왔고 현재는 300여 마리로 불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한 박사는 “최근 광화문으로 내려온 멧돼지는 청와대 뒤 북악산에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산 본줄기에서 떨어져 나온 북악산에도 30마리 넘는 멧돼지가 있고, 청와대 경내에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산 일대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멧돼지들. 경기도 고양시 효자원.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북한산 일대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멧돼지들. 경기도 고양시 효자원.[사진 국립생물자원관]

 
북한산 멧돼지들은 서울 도심 인근에서 10여 년을 지내면서 어느새 인간의 생활 패턴에 적응하고 있다. 주택가의 환한 불빛도 피하지 않고 북한산 둘레길도 탐방객이 없는 시간을 골라 내려온다는 얘기다. 한 박사는 “주변 사찰 등에서 버리는 음식 쓰레기를 먹고 포동포동 살이 찌고 발육 상태도 더 좋아져 태어난 지 1년 만에 새끼를 낳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숫자가 늘면서 먹이 경쟁이 치열해지고, 음식 쓰레기의 유혹도 커지다 보니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서울소방방재청이 멧돼지 출현 신고를 받고 출동한 횟수를 보면 2011년 43건에서 지난해에는 무려 604건으로 늘었다. 한 마리가 중복 신고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도 크게 늘어난 수치다. 서울시가 따로 세세하게 집계한 지난해 출현 신고도 279건이나 됐다.
 
북한산 일대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멧돼지들. 서울 은평구 산골생태통로.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북한산 일대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멧돼지들. 서울 은평구 산골생태통로.[사진 국립생물자원관]

환경부와 서울시·경기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난해 3월부터 함께 ‘멧돼지는 산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배설물 발견 지점에서 남쪽으로 500m가량 떨어진 북한산 둘레길 탕춘대 성암문에는 높이가 1.5m가량인 철제 울타리가 길게 쳐져 있다. 멧돼지가 도심으로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멧돼지는 산으로!’ 프로젝트의 일부로 시범 설치한 길이 220m의 펜스였다. 이곳의 땅 밑으로는 구기터널이 지나고 있어 멧돼지가 꺼리는 큰 지상 도로가 없다. 그 바람에 이곳이 멧돼지의 도심 진출 통로가 됐다.
 
환경부는 최근 이곳에 펜스를 설치한 결과 도심으로 가는 멧돼지 숫자가 58% 줄었다고 밝혔다. 설치 전에는 월 12회 정도 출현했는데 설치 후에는 월 5회로 줄었다. 지난해 환경부와 서울시가 포획틀로 생포하거나 사살하는 방식으로 107마리를 잡기도 했다.
북한산 일대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멧돼지들. 종로구 구기동 진흙 목욕탕.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북한산 일대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멧돼지들.종로구 구기동 진흙 목욕탕.[사진 국립생물자원관]

 
올해는 멧돼지 150마리 이상을 포획하고, 멧돼지 도심 출현 신고 건수도 최근 3년간 평균치인 316건보다 30% 이상 낮은 220건으로 줄인다는 게 환경부의 목표다.
 
서울시 자연생태과 문동일 주무관은 “올해는 구기터널 상부 나머지 부분과 북악터널 상부 등에 모두 4200m의 펜스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포획틀 18개와 포획장 5개도 추가로 설치한다.
 
포획틀이 멧돼지를 한 번에 한 마리씩 잡는 용도라면 포획장은 멧돼지 무리를 한꺼번에 유인해 들어오게 한 뒤 포획할 수 있도록 제법 넓은 공간을 울타리로 둘러친 시설이다.
북한산 일대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멧돼지들. 강북구 우이동 신익회 선생 묘 주변.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북한산 일대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멧돼지들.강북구 우이동 신익회 선생 묘 주변.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국립공원관리공단 자원보전처 김남호 주임은 “포획틀이나 펜스도 필요하지만 도심 진입을 차단하려면 멧돼지 서식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탐방객들이 불법 이용하는 샛길을 폐쇄하고 멧돼지와 서식 경쟁을 하는 유기견도 포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박사는 “북한산의 경우 5부 능선 이상은 암반이고 산자락은 사람들의 영역이어서 멧돼지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은 3~5부 능선”이라며 “사람들이 자꾸 집을 지으면서 산 쪽으로 파고들어 멧돼지와 충돌하게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젠 인간도 멧돼지와의 공존을 위해 관용과 포용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S BOX] 10월에 도심 출몰 많아 … 소리치지 말고 조용히 피해야
북한산 멧돼지가 서울 도심으로 가장 많이 내려오는 시기는 언제일까. 지난해 서울시가 집계한 월별 출현 신고 건수 자료를 보면 답은 가을이다. 전체 279건 중 10월이 60건으로 가장 많았고 11월이 46건, 9월이 30건 등이었다.
 
추운 겨울에 대비해 가을엔 먹이를 많이 먹어둬야 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활발하고 경쟁도 치열하다. 이런 경쟁에서 밀린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도심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새끼를 낳는 시기인 5월부터도 출몰이 늘어난다.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박사는 “봄에는 텃밭 농사 등으로 사람들의 야외 활동이 늘면서 멧돼지와 마주치는 일이 많아지는 것도 신고 건수가 늘어나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7월에는 막 태어난 어린 새끼들이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바람에 신고 건수가 많다. 12월엔 교미철이라 소강상태를 보이지만 뒤늦게 교미를 시도하는 수컷에 쫓겨 한겨울에 도심으로 뛰어드는 암컷도 간혹 있다.
 
멧돼지와 마주쳤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멧돼지는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다”며 “마주쳤을 때는 갑작스러운 행동을 하지 말고 조용히 바위에 오르는 등 자극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소리치거나 뛰어 달아나면 공격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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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