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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지도자, 사드 도입 찬성한다면 중국 잠재울 '역사적 사드' 제시해야"

장편소설 『강화도』를 출간하며 소설가로 데뷔한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 5일 출간간담회 모습. [사진 나남]

장편소설 『강화도』를 출간하며 소설가로 데뷔한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 5일 출간간담회 모습. [사진 나남]

 1978년 이맘때, 서울대 사회학과 4학년생이던 송호근은 국문과 김윤식 교수가 불러 연구실을 찾아간다. 1분쯤 벌세우듯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던 김 교수, 대뜸 "자네 문학 하겠는가"라고 묻더란다. 시는 이성복에게 치이고, 평론은 한 해 전 정과리에게 밀렸으나 절치부심, 송호근은 마침내 김 교수가 심사한 대학문학상 평론 부문에 입상한 참이었다. 하지만 "돌아가겠습니다"라고만 답하고 연구실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 첫 장편 『강화도』 내고 소설가로 데뷔
1876년 강화도 조약 주도한 신헌 통해 사드 도입 혼란상 돌아본 작품
"현재의 모순 과거로부터 발원…상상력 통해 해결책 찾아보고자 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61) 교수가 5일 밝힌 문청(문학청년) 시절 일화다. 그는 첫 소설책 『강화도』(나남)를 내고 문인으로 데뷔한 자신의 선택을 이렇게 해명했다. 이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작가 데뷔가 40년 전 꿈에 대한 화답, 송호근식 응칠(응답하라 1977!)이라는 얘기였다. "같은 문사(文士)로서 소설이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라고도 했다. 


 장편소설인 『강화도』는 조선의 운명이 위태롭기 짝이 없던 1876년 2월, 문무를 겸비한 유장(儒將) 신헌(1811∼88)이 일본 측 구로다 기요타카와 한 달간 담판을 통해 강화도 개항 조약을 맺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러시아·중국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아득한 살길을 찾아 단말마적으로 몸부림쳤던 조선의 모습이 140년 후인 2017년 한국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는 게 소설의 문제의식이다. 


 송 교수는 "당시 일본인들의 심리 저변에는 고립감과 공포감이 있었다"고 했다. 세상의 중심 중국으로부터 떨어져 망망대해에 떠 있다는 고립감, 그러다 화륜선을 앞세운 러시아 등이 나타나자 생긴 공포감까지 겹치자 그에 대한 커다란 반동으로 천황 종교를 앞세운 메이지 개혁에 나서게 되고, 결국 조선 침범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강화도 심행일기』 표지. 

『강화도 심행일기』 표지.

 송 교수는 "신헌은 거의 맨손으로 일본 함대를 막은 격"이라고 평했다. "상대의 창을 붙잡고 쓰러지면서 조선의 심장에 박히지는 않게 만든, 공격을 굴절시키는 협상 성과를 일궜다"는 얘기다. 강화도 조약이 불평등 조약이라고 비판하는데 조선과 일본의 힘의 비대칭을 고려하면 선방한 것이고, 단순한 무장인 일본의 구로다를 상당 부분 조선에 유리한 쪽으로 회유했다고 했다. 신헌의 역할로 조선은 그나마 본격적으로 전개된 외세 침입을 앞두고 한숨 돌릴 수 있게 된다. 완충역할을 한 것이다. 


 문제는 현재. "가령 사드 문제의 경우 진보 성향 대선 주자들이 도입에 찬성인지 반대인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데 지도자로서 결격사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도입 반대는 미·일과의 군사동맹에서 탈퇴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찬성은 중국과의 역사동맹에 반하는 선택이다. 한국의 지도자는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다. 다만 미·일과의 군사동맹을 선택해 도입에 찬성한다면 중국을 달랠 '역사적 사드'를 제공해야 한다. "그 난제를 차분하게 해결할 신헌 같은 정치인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송 교수는 "작품을 쓰며 김훈 작가를 의식했다"고 했다. 외세에 맞서 싸운 『칼의 노래』, 주전·주화론으로 갈라진 『남한산성』, 천주교 박해를 다룬 『흑산』까지, 김훈 소설의 핵심 테마들이 신헌이라는 인물에 집약돼 있어서다. "내가 쓰라고 나뒀구나 하는 고마운 마음에 책을 한 권 보내드릴 생각"이라고 했다. 


 다음은 송 교수의 주요 발언. 


 "그동안 읽은 소설책을 다 합치면 5t 트럭 한대 분량쯤 되지 않을까. 그 책들을 읽으며 계속 소설 구상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쓴 소설이지만 굉장히 오래된 현재라고 할까.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89년 돌아와보니 조상호 회장이 운영하던 나남 출판사가 말하자면 프랑스 파리의 '세익스피어 콤파니 살롱'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미국 문사들이 모여 장 콕토, 앙드레 지드 같은 프랑스 작가들과 교류하며 1930, 40년대 문화전성기를 풍미한 장소 말이다. 당시 나남에는 오생근, 김인환 같은 분들이 드나들었다. 지금은 각각 고려대·연세대 총장이 됐지만 염재호·김용학 같은 분들과 사회비평 잡지를 한 10년 만들었다. 경세사, 세상에 대한 논의를 주로 했지만 바탕에는 언제나 문학이 있었다. 문학에서 출발해 경세사 논의로 갔다가 다시 문학논의로 돌아가곤 했다. 이번 소설은 당시에 대한 내 나름의 화답이다."


 -그래도 사회학 논문과 소설 쓰기는 달랐을 텐데. 
"학자가 책 써서 쑥스럽긴 한데 예전 선비가 쓰는 글의 종류는 논, 설, 상소문, 시 등 장르로 치면 7, 8개쯤 됐다. 지금은 전문화가 돼 있어서 그렇게 다양한 글을 쓸 수 없지만 어쨌든 소설은 문사가 쓸 수 있는 가장 높은 심급의 장르였다. 물론 맨 위에는 시가 있기는 하다. 시인은 하늘이 점지해줘야, 하늘이 언어를 줘야 탄생할 수 있다. 그동안 25권 정도 책을 썼다. 이번 소설에 담긴 내용을 논문으로도 쓸 수 있겠지만 사람들의 가슴에 파고들어갈 수는 없겠다는 답답함이 있었다. 뭔가 시로써, 소설로써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한때 논문의 언어가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막상 써보니까 그렇지 않더라. 반면 예술의 언어는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박경리 선생을 생전에 자주 찾아 뵜었다. 나를 상당히 예뻐하셨다. 계셨던 원주도 자주 가고 그랬다. 토지에는 무려 600명 가량의 캐릭터가 나온다. 그 인물들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불가사의했다. 그들 각각의 내면 심리 묘사를 정말 잘 하셨다. 캐릭터 창출의 귀재셨다. 그래서 한 번은 여쭤봤다. 어떻게 하시는 거냐고. 벽에다 모두 써둔다고 하더라. 스토리를 커다란 나무처럼 그리고 거기에 인물들을 배치했던 거다. 대하소설의 등장인물들을 현실에서 보는 것처럼 창출하는 그게 진정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논문은 객관의 세계여서 모든 인물이 말하자면 하나의 선과 색채로 돼 있다. 강약도 없다. 그러다보니 인물에 대한 고민도 있을 수 없다. 그게 소설과 논문의 차이다."


-실제로 쓰는 데는 얼마나 걸렸나. 
"지난해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는 걸 보며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과거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봉합한 채로 흘러온 결과 만들어지는 미래가 어떤 모습일까. 고민 되더라. 신헌이 떠올랐다. 그의 고민이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고민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달 15일쯤 춘천의 농가 작업실로 들어가 하루 10시간씩 두 달 가량 썼다. 올해 2월 20일쯤 거의 끝났다."


-신헌이 완충 역할을 했다고 했는데.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이 아닐까. 4대 강국에 둘러싸여 누가 이 땅을 집어삼키더라도 목에 걸려 병이 날 거다. 그건 우리에게 운명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다. 이땅의 지도자는 주변 열강 중 한쪽의 전략에 휘말려 정말 급박한 상황일 때 한국의 처지를 정확히 깨닫고 그에 대비하는 기간, 완충기간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신헌은 강화도 조약의 13개 조항을 일일이 다 수정했다. 조선에 우호적인 교린질서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었다. 나중에 총리도 지낸 일본측 담판 상대방 구로다는 어떤 면에서 단순한 무장이어서 신헌의 뜻에 슬슬 휘말렸다. 결국 조선에 불평등한 조약이라고 하기 어려운 조약을 맺게 됐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도성 한양은 주화, 척화파로 나뉘어 이념 논쟁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런 나라를 방어하는 보루가 강화도였다. 요즘 한국은 어떤가. 미국과 중국의 함대가 남중국해에서 맞붙고 사드배치로 한류가 중국에서 쫓겨난다. 촛불과 태극기가 강화도에서 대결했었다. 지금 이런 모습의 출발점이 1876년이었다고 본다. 거의 같은 동형구조가 140년 동안 반복됐다.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소설을 통해서 물어본 거다. 현재는 과거로부터 발원됐기 때문에 어떻게 상상력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지 따져보고 싶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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