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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패권의 핵심…팽창에 눈먼 중국에는 없어

로마, 차별 없는 열린 마인드로 제국을 유지
중국, 중화사상 벗어나지 못해…포용과 변화 필요

1870년에나 겨우 통일을 이루었을 만큼 근대 국가의 형성이 늦은 이탈리아는 영국, 프랑스는 물론이거니와 비슷한 시기에 통일을 완성한 독일에 비해서도 국력이 한참 뒤졌다. 혈통으로는 고대 로마와의 연결점이 희미하지만, 그들은 새롭게 통일한 그 땅위에 있었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었다. 로마가 작은 도시국가에서 출발하여 제국으로 발전하였듯이, 신생 이탈리아가 패권 국가로 발전하지 말라는 법 또한 없었다.
 
카르타고 군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을 묘사한 16세기 자코포 리판타의 프레스코화. 3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의 승자는 로마였지만 역설적으로 이 전쟁을 통해서 후대에 전설로 남은 이는 한니발이었다. [사진 wikipedia]

카르타고 군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을 묘사한 16세기 자코포 리판타의 프레스코화. 3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의 승자는 로마였지만 역설적으로 이 전쟁을 통해서 후대에 전설로 남은 이는 한니발이었다. [사진 wikipedia]

로마가 거대 제국으로 발전하게 된 극적인 전환점은 기원전 3~2세기에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와 벌인 3차례의 포에니 전쟁이었다. 승리한 로마는 이후 천년의 영화를 누렸고, 한니발의 눈물이 전설이 된 카르타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카르타고의 본거지는 오늘날 리비아ㆍ튀니지 일대가 된다. 이탈리아는 이곳을 점령한다면 로마의 영광을 다시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더구나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버거운 상대가 아닌, 어느덧 노쇠하여 만만한 상대가 되어버린 오스만이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오스만은 발칸 반도와 아라비아의 각지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 때문에 이곳까지 관리하기 벅찼던 상황이었다. 이탈리아는 이러한 기회를 노려 1911년, 3만 명의 병력으로 침략에 나섰다. 그러나 쉽게 점령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처음부터 고전이었다.

로마군과 달리 이탈리아군의 실력은 형편없었고, 노쇠하였지만 여전히 3대륙에 걸친 거대 제국인 오스만의 군대는 용맹하였다. 이듬해 발발한 제1차 발칸 전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이탈리아에게 구세주가 되었다. 바로 코앞에 위기가 닥치자 오스만이 리비아를 포기한 것이었다. 마침내 이탈리아는 그렇게 소망하던 식민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리비아의 원주인은 오스만이 아니라 대대로 살던 베르베르인들이었다. 그들에게 이탈리아는 단지 오스만을 대신한 새로운 탄압 세력이었을 뿐이었고, 더구나 종교적으로도 상이하였다. 새로운 지배자로 군림하려는 이교도에 대한 반감은 곧바로 충돌로 나타났다. 이때부터 독립을 쟁취하려는 원주민들의 20여 년에 걸친 기나긴 투쟁이 시작되었다. 2000년 만에 포에니 전쟁이 재현된 것이었다.
 
20년에 걸친 투쟁을 벌여 이탈리아군을 곤혹스럽게 만든 오마르 무크타르를 생포하여 후송하는 모습. 맨 앞에 서서 행렬을 이끄는 이가 당시 부총독 그라치아니와 국왕의 사촌인 아오스타 대공이다. 그만큼 이탈리아에서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사진 wikipedia]

20년에 걸친 투쟁을 벌여 이탈리아군을 곤혹스럽게 만든 오마르 무크타르를 생포하여 후송하는 모습. 맨 앞에 서서 행렬을 이끄는 이가 당시 부총독 그라치아니와 국왕의 사촌인 아오스타 대공이다. 그만큼 이탈리아에서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사진 wikipedia]

고대 전쟁에서 한니발이 카르타고를 영도하였다면 새로운 전쟁에서 리비아를 이끈 이는 오마르 무크타르였다. 계속된 연패에 이탈리아는 분풀이로 원주민을 대량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결국 이탈리아는 1931년 무크타르를 생포하여 공개 처형함으로써 20년에 걸친 전쟁을 끝냈다. 그것은 마치 로마가 카르타고를 불태워 없애고 끝까지 저항한 카르타고인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린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는 어설펐던 제국주의 이탈리아의 마지막 허세였다. 이후 새로운 로마 제국을 자임하며 제2차 대전에 뛰어들었으나 오로지 패배라는 단어만 전사에 기록했다. 1943년 추축국 중에서 가장 먼저 항복했다. 결국 이탈리아의 리비아 침략은 패망의 출발점이 되었다. 팽창에만 눈이 멀어 단지 거대한 로마라는 현상만 보았지 카르타고의 후손인 세베루스가 황제가 되었던 것처럼, 차별 없는 열린 마인드가 제국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진정한 본질이라는 점을 간과하였던 것이었다.
 
요즘 중국의 행태를 보면 고루한 중화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동서에서 거대한 제국이 탄생하였지만 포용과 변화를 수용한 로마가 천년을 가는 동안 고루한 명분에만 집착한 중국에서는 300년이 넘는 왕조가 없었다. 20세기 초에 커다란 실수를 한 이탈리아처럼 현재 중국은 그런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군사 칼럼니스트 남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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