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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내 마음속의 적폐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적폐 청산’이란 말이 자주 들린다. 적폐란 문자 그대로 오래 쌓인 폐단이다. 국어사전을 보더라도 ‘옳지 못하고 해로운’게 폐단인데, 사라지지 않고 쌓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질긴 생명력은 폐단으로 보이지 않는 위장술에서 나온다. 흔히 관행이나 관례라는 위장 무늬로 몸을 감춘다. 인습 또는 전통이라는 고도화된 위장복을 입은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뭔가 잘못된 건 느끼는데 예부터 하던 거고, 너 좋고 나 좋으니 그냥 넘어간다.
 

구속영장 잉크 마르기도 전 사면 공방
제왕적 대통령 인정하는 집단 무의식

이들보다 훨씬 강한 놈이 있다. 이른바 ‘집단 무의식’이라는 내성이 생긴 폐단들이다. 이건 뭐가 잘못된 건지 느끼지조차 못한다. 마땅한 권리인 양 행사하고 으레 그러려니 받아들인다. 그 사이 골병이 고황에 든다. 요즘 뜬금없는 논란의 주제가 되고 있는 ‘사면’이 그런 거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사면권을 인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것부터 잘못된 거다. 법에 규정된 형식 요건과 절차를 따르기만 하면 언제든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니 말이다. 헌법과 법률로 규정됐으니 옳다는 집단 무의식에 은전인 양 베풀고, 자비인 양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나는 사면권에 절대 반대다. 죄를 지었으면 마땅히 죗값을 치르는 게 정의 사회다. 힘이 세든 약하든, 돈이 많든 적든 잘못의 대가는 똑같이 지불해야 한다. 범법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 건 법을 준수하며 살아가는 대다수 시민들에 대한 모욕이자 배반이다. 그걸 용인하는 국가권력은 존재 이유가 없다. 사면권이란, 특히 권력자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사면권이란 그런 존재 가치를 찾을 필요가 없던 전제군주 시대의 유물이자, 정통성 없는 독재 정부의 포퓰리즘일 뿐이다. 우리가 그토록 몸서리치는 ‘제왕적 대통령’의 출발점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헌법은 그런 사면권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면권의 행사 범위를 가능한 한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함은 명약관화하다. 삼권분립에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기에, 자칫 사법부를 무력화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사면이 논의되거나, 판결이 확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면권이 행사되는 걸 경계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대통령 구속영장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면 얘기부터 나온다. 검찰이 기소조차 안 했고 재판은 시작도 안 했으며 최종 판결은 아직도 멀었는데 사면 공방으로 날을 새운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무너지는 건 난센스일 뿐이다. 더욱 말이 안 되는 건 그런 공방이 대통령의 사면권 보유가 당연하다는 전제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전직 대통령이 미워서일 뿐,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다. 언론조차 그렇다. “대통령이 되면 사면할 거냐”는 질문을 예사로 한다. 대통령이 자기 맘대로 사면할 수 있다는 무의식이 마음 한가운데 똬리 틀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물음이다. 현명하게 대답하지 못한 후보가 곤경에 처한 걸 즐긴다면 성공한 건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 저도 모르게 먼지가 켜켜이 쌓인 낡은 권위주의 종식을 물 건너 보내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언론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오히려 가볍다.
 
이처럼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적폐가 더 무서운 거다. 우리의 집단 무의식이 죄 사함의 권한을 가진 신권적 대통령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게 먼저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적폐 청산을 외쳐본들 구두선에 불과하다. 법구경(法句經) 얘기가 다른 게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한평생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해도 정법을 모른다. 숟가락이 국 맛을 모르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잠깐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해도 정법을 안다. 혀가 국 맛을 아는 것처럼.” 숟가락이 될지 혀가 될지 결정해야 할 때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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