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중앙시평] 대통령 자신보다 뛰어난 외교장관을

최 훈 논설실장

최 훈 논설실장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평가해 줄 것 중 하나는 외교장관을 임기 중 같이 가려 한 시도였다. 긴 목표와 전략적 인내심이 요구되는 외교수장과 대통령이 호흡 맞춰 갈 포석 자체는 적절했다. 하지만 캠프 출신의 시종(侍從)형 직업외교관을 택한 건 한계였다. “미·중의 러브콜은 축복”이라며 섣부른 기대를 낳게 했던 그 장관이 다시금 “외교 지평을 크게 확대하는 한가운데에 한국이 서 있다”고 해 모두는 어리둥절해 할 뿐이다.
 

대선후보 모두 외교엔 취약
지정학적 세력 균형 감각에
전략, 역사 인식, 배짱 갖춘
외교명장 골라 믿고 맡기길

1948년 장택상 이래 지금까지 69년간 37명의 외교장관이 1년10개월꼴로 명멸해 왔다. 성과랄 건 노태우 정권 때 중·러 수교 등의 북방외교 정도다. 대통령의 이념이나 집권층의 정파적 이해에 목숨이 오락가락했던 우리 외교의 ‘그릇 크기’가 빚은 결과다. 각(角)이 센 진보 정권일수록 단명이었다. 김대중(DJ) 정권 5명, 노무현 정부 때 3명의 외교장관이 들락거렸다. DJ 때는 ‘동교동계 청탁을 안 들어줘’, 노무현 시절엔 “친미의 등에 업혀 다닌다”고 경질됐다.
 
을사늑약 직전(1902~1904년)의 2년간 구한말 외부대신이 21명이나 교체됐다. 학자들은 “고종이 관료들을 믿지 못해 직접 외교에 나선 데다 측근인 외국 고문들이 실권을 행사한 결과”라고 했다. ‘족보’나 ‘위패’용의 외교수장과 외교의 붕괴는 난세와 쇠망의 전조였다. 다시 절명의 위기를 맞은 우리 외교. 현 대통령 후보군에서 희망 찾기가 쉽지 않다. 인권변호사, 의사·벤처기업가, 검사 출신…. ‘사드’ 단문단답만 반복 중인 그들에게 미·중 사이 생존과 북핵 해법의 중장기 전략을 기대하는 건 과욕 같다.
 
믿고 맡길 외교 수장을 진정 고대하는 이유다. 근대 이래 명외교관으론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 미국의 헨리 키신저를 꼽을 수 있다. 놀랍게도 이들을 탄생시킨 주변의 국제정치 지형이 지금 한국과 닮아 있다. 3인 모두 지정학(地政學)과 장기 전략에 밝았다. 지리와 힘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기회로 창조해 갔다. 세력 균형과 실용적인 현실정치(Realpolitik)의 대가들이다.
 
유럽의 복판에서 프랑스·프로이센·러시아에 둘러싸인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는 39년간 외교 수장으로 조국의 생존을 지켜냈다. 평화적 유럽 질서의 조정자로 한 세기 동안 이어진 비엔나 체제를 만들어냈다. 그는 “가시방석 같은 괴로움을 우아한 미소로 넘기고, 세상살이에 무슨 큰 지장이 있겠느냐는 태도로 모호함을 무시한다”며 섬세한 둔감함으로 성취를 인내했다. ‘적과의 동침(collaboration)’이란 개념을 창조했다.
 
“명령을 내리는 데 익숙한 사람이 타협을 배우기란 불가능하다”며 각국 제왕들의 변덕을 때론 다독이고 혹은 겁박했다. 희대의 포식자이던 나폴레옹과 대불 동맹 사이에서 조정자 오스트리아가 지닌 역사적 정체성과 정통성을 강조한 건 우리 외교에 상상력을 보태준다.
 
난세일수록 배짱과 용기, 담대함 역시 외교 수장의 자원이다. 강력한 독일제국을 탄생시킨 비스마르크는 대학 시절 금지된 25차례의 결투로 지하감옥을 들락거렸다. 문제적 인간은 그러나 독일권의 통합에 뚝심을 발휘했다. 연방의회에 파견된 프로이센 대사 비스마르크는 당시 의장국 오스트리아 대사에게만 허락된 흡연을 못마땅해했다. “그에게만 특권이 주어져선 안 된다”며 여송연을 피워댔다. 흡연권이 자국의 위신 문제로 번지자 이후 연방의회는 연기 자욱한 ‘흡연회의’가 되고 말았다. (강미현 『또 다른 비스마르크를 만나다』)
 
그는 프로이센의 군비 확대가 진보당과 좌파 세력에 꺾일 즈음 “오늘의 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이 아닌 피와 철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연설로 관료와 군을 장악해 연승을 일궈냈다.
 
1972년 미·중 수교의 역사적 대전환을 이룬 키신저는 평생 메테르니히의 ‘세력균형’ 추종자였다. 중·소의 영토 분쟁을 틈타 감행한 중국과의 전격 수교는 바다 밖 확장 일로였던 소련과의 냉전을 이겨낼 힘의 균형을 미국에 선물했다.
 
킹을 쓰러뜨릴 체크메이트 로 끝장내는 서양의 체스 대신 키신저는 줄 건 주고 세력으로 대국적 우위를 좇는 중국 외교의 바둑 원리를 이해했다. 중국·대만의 양안(兩岸) 이슈, 이념의 충돌은 타개하지 않은 채 수교로 건너뛴 멋진 한 판을 어우러냈다. 닉슨의 전권을 받은 키신저에게 마오쩌둥이 “나 같은 사람들은 온 세상이 하나 돼 제국주의, 반동분자를 무찌르자는 허풍을 많이 떤다. 그런데 여러분이 모두 타도되면 친구라곤 안 남을 것 아니냐. 난 여러분처럼 우익 정권이 더 즐겁다”며 너털웃음 지은 건 성공한 대중 외교의 백미였다.
 
당시 인구 5000만 명의 오스트리아권이 낳은 메테르니히가 왜 한국엔 없겠는가. 남 침공 한 번 않고, 동북아 평화 번영에 우직이 기여해 온 우리의 정통성을 무기 삼을 지략가란 왜 없겠는가. 머리 좋은 한국인에게 ‘유대인 키신저’는 왜 없겠는가. 차기 대통령은 멋진 외교수장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곤 맡겨라. 단 ‘떴다방’ 대선캠프에서 국내 유세 지도만 들여다보던 사람들은 말고….
 
최 훈 논설실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