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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7년 전 무서워 떨며 갔던 평양 … 헤어질 땐 정들어 눈물바다 됐죠

1990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통일축구 기념촬영을 한 남·북 여자축구대표팀. [사진 이재형 축구자료수집가]

1990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통일축구기념촬영을 한 남·북 여자축구대표팀.[사진 이재형 축구자료수집가]

빨강과 하양.
 

1990년 통일축구 참가 선수들 회상
순안공항 엄청난 인파에 공포감
북 선수들, 한국 못사는 줄 알아
축구 가르쳐 주고 음식 챙겨줘
7일 경기 아시안컵 본선 티켓 걸려
“협력 플레이로 천둥 응원 이겨낼 것”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다. 그런데 한 팀처럼 보인다. 친자매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고 있다. 1990년 10월11일. 장소는 남북통일축구가 열린 북한 평양의 능라도 5.1경기장, 사진 속 주인공은 남과 북의 여자축구대표팀이다. 뒤로는 15만 명의 북한 관중들이 보인다.
 
27년의 세월이 흘렀다. 남과 북의 여자축구대표팀은 7일 북한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2018년 아시안컵 B조 예선을 치른다. 중앙일보는 1990년 남북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을 단독 입수했다.
 
당시 평양을 다녀온 박경화(78) 전 여자축구대표팀 감독과 이명화(44) 부천 생활축구팀 코치, 임은주(51) FC 안양 단장을 4일 만나 당시 북한을 다녀온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남·녀축구대표팀은 1990년 9월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마친 뒤 남북통일축구를 위해 평양으로 향했다. A매치 68경기(10골)에 출전한 이명화는 “아시안게임 맞대결에서 북한 선수들이 ‘돌진하라’ ‘부숴버려라’라고 고함을 질렀다. 우리는 힘 한번 못쓰고 0-7로 졌다. 난 당시 여고생이라 북한으로 가는 길이 무서웠다”고 했다. 임은주는 “당시 평양순안공항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나와 ‘조국 통일’을 외쳤다. 그들은 환영의 의미로 버스를 좌우로 흔들었는데 우리는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고 전했다.
 
당시 여자축구대표팀은 아시안게임을 4개월 여 앞두고 축구 뿐만 아니라 하키·테니스 등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을 모아 결성했다. 반면 북한은 중국과 함께 여자축구 아시아 최강을 다툴 정도로 전력이 막강했다. 박 감독은 “실력 차가 너무 커 맞대결 대신 합동훈련을 했다. 남북 선수들을 반반씩 섞어 연습경기를 치렀다”고 회상했다.
 
이명화는 “북한선수들이 등번호가 같은 우리나라 선수들을 짝꿍처럼 챙겨줬다. 북한 등번호 7번 양미순 언니는 내게 축구 기술을 가르쳐줬다”며 “북한 선수들은 한국이 찢어지게 가난한 줄 알더라. 옥류관에서 언니가 자기 몫으로 나온 평양냉면을 내게 줬다”고 말했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명화는 “대한축구협회 관계자가 ‘방 안에 도청장치가 있을 수 있으니 TV를 크게 틀고 대화하고, 김일성 이야기는 자제하라’고 했다”며 “실제로 파인애플이 먹고 싶다고 혼잣말을 했더니 다음 날 방안에 파인애플이 놓여 있었다”고 말했다.
 
 
4일 훈련 중인 한국여자축구대표팀. [평양=사진공동취재단]

4일 훈련 중인 한국여자축구대표팀.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여자선수들은 남자팀의 맞대결을 관중석에서 지켜본 뒤 그라운드에 내려와 기념촬영을 했다. 당시 남자팀 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윤덕여(56)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은 “15만 관중의 응원 소리가 마치 천둥치는 소리 같았다. 박자를 맞춰 사용하는 짝짝이(응원도구) 소리 탓에 머리가 띵했다”고 회상했다. 윤 감독은 “1-1로 맞선 후반 추가시간에 북한 심판이 노골적인 오심으로 북한에 페널티킥 기회를 줬다. 어이없는 판정에 화가 난 골키퍼 최인영(55)이 공을 그라운드 반대편으로 뻥 차버려 일순간 분위기가 냉랭해졌다”면서 “북한 선수들이 2-1로 이긴 뒤 ‘미안하다’고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우리 선수들은 경기를 마친 뒤 기차를 타고 판문점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명화는 “친자매처럼 정이 들어 헤어질 땐 눈물바다였다. 양미순 언니가 ‘아버지께 드리라’며 벨트를 줬다. 몇년 후 국제대회에서 심판으로 변신한 언니를 만났는데 이산가족이 상봉한 것처럼 반가웠다”고 말했다. 임은주는 “심판으로 전업한 몇몇 북한 선수들과는 이후에도 각종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교류했다. 약품이나 운동용품을 가득 채운 가방을 선물하면 그들이 뱀술이나 말린 뱀, 내 얼굴을 그린 초상화를 답례품으로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27년 전에는 친선경기였지만 이번 대결은 2018 아시안컵 본선 출전권이 걸려 있어 양보 할 수 없는 승부다. 임은주는 “우리 선수들이 낯선 장소의 두려움과 엄청난 관중의 압박감을 동시에 느낄 것”이라면서 “마인드콘트롤과 협력 플레이로 극복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이명화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한국이 원정에서 꼭 이겼으면 해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어요. 만약 먼훗날 통일이 돼 남북여자축구대표팀이 합해진다면 더 강한 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송지훈·박린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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