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친 신조어의 사회학
부주의한 탓에 안 써도 되는 돈을 썼을 때를 일컫는 ‘멍청비용’도 있다. 미리 돈을 안 뽑아 놔서 현금인출기(ATM) 수수료를 냈다던지, 할인받을 수 있는 상품을 제값 주고 샀을 때 쓴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돈 썼다는 ‘쓸쓸비용’도 있다. 혼자 밥 먹기 싫어서 친구들에게 밥을 사줬다는 식이다. 외로워서, 멍청해서, 홧김에 쓴 돈이 소소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왜 이런 현상과 신조어가 생겨나는 걸까.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의 저자 건국대 하지현 교수(정신건강의학과)와 성균관대 구정우 교수(사회학과)를 전화로 만났다.
- 왜 ‘00비용’이 유행할까.
- “소비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인간의 심리 기제로 봣을 때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스몰 럭셔리(small luxury)’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길티 플레저의 경우 한밤중에 초콜릿을 먹을 때 죄책감을 느끼면서 즐거울 때 쓴다. 스몰 럭셔리도 나만의 작은 사치를 즐기는 거다. ‘시발비용’ 의 경우 같은 맥락이지만 즐거움이 빠졌다. 공격성이 담겼다. 금지된 것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보다 억압된 것을 터트리는 데 더 초점을 두고 있다. 우리 사회의 내부 압력이 올라간 것 같다.”(하)
“요즘 젊은 세대에게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는 것보다 현재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려는 욕망이 담긴 것 같다. 저축해봤자 집 못 사잖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봤자 평생 다닐 수 있는 것 아니다. 갑-을 관계로 드러나는, 계급 격차가 심한 사회에서 살다 보니 젊은 청년층일수록 스트레스 받을 수밖에 없고 이를 반영한 신조어가 나오는 거다.”(구)
- 왜 꼭 돈 쓰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할까.
- “소비지향적인 문화트렌드와 연관 있다. SNS에서 먹고 구입한 사진을 올려 과시하며 소통한다. 뒤처지지 않고 싶은 욕구, 사생활을 노출하고 싶어하는 욕구 등 모두 SNS와 연관되어 있다.”(구)
“마찬가지로 SNS상에서 ‘00비용’이 폭발력을 갖게 된 것도 센 단어, 센 말의 조합이어서 그런 것 같다.”(하)
- 큰 돈을 낭비한 것도 아닌데 자학하는 느낌도 있다.
- “젊은 세대일수록 스펙 관리에 몰두한다. 자기계발, 관리가 중요한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와 시간과 생각을 모두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의미를 찾고 관리하려 하는 데서 오는 것 같다. 내가 한 선택이, 내가 쓴 돈이 바른 것이었느냐는 압박감을 느낀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돌아가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구) ●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