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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차기 대통령의 북한 방문 비용

복거일소설가

복거일소설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을 먼저 방문하겠다”는 문재인 후보의 발언은 겹겹이 문제적이다. 이 발언에 문 후보의 인품과 이념이 고스란히 반영되어서, 많은 시민들이 그에 대해 품은 걱정이 더욱 깊어졌다.
 
먼저, 북한을 찾겠다는 발언 자체가 문제적이다. 온 세계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인권 유린에 대한 제재를 점점 엄중하게 하는 지금,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그런 발언은 제재의 효력을 줄인다.
 
다음,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는 것도 문제적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원래 회담의 물리적 환경을 통제해서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려 시도하므로, 남북정상회담은 제3국에서 하는 것이 온당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그것을 열망했으므로, 먼저 북한을 찾았다.
 
그런 선택은 당연히 문제들을 낳았다. 방문 직전 북한은 김 대통령에게 방북 사례금을 요구했다.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모두 방북에 걸었던 김 대통령으로선 그 부당한 요구를 물리치지 못했다. 결국 막대한 자금을 불법적으로 송금했고, 실무자들은 감옥에 갔다. 자신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자금을 댔다는 비난을 두고두고 들어야 했다. 북한 땅을 밟은 김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차에 탔다. 대통령이 자신을 적국의 통제 아래 둔 ‘의혹의 55분’은 김 대통령 둘레에 음산한 그림자를 던졌다.
 
김 대통령의 북한 방문 뒤, 일본 총리가 북한을 찾았다. 그는 한나절 회담을 하고 바로 돌아왔다. 북한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심지어 점심을 준비해 가서 따로 들었다. 일본이 한국의 쓰디쓴 경험에서 배운 것이다.
 
실정으로 지지를 잃은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말년에 정치적 자산을 늘리려 북한 방문을 원했다. 그러나 그런 계산을 잘 아는 북한이 대가 없이 그를 도울 리 없었고, 결국 북한의 입장만 반영해서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공동선언이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한 발언들을 밝히라는 요구를 ‘국가의 품격이 너무 깎인다’면서 거부했다. 새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사악한 북한 정권을 또 찾아가는 것은 도덕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어리석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하다.
 
원래 북한 지도자가 한국을 답방하기로 되었지만, 그는 끝내 한국을 찾지 않았다. 대신 한국 대통령들이 잇따라 북한을 찾자, 북한은 남한 지도자들이 정통성을 지닌 북한 지도자를 알현한 것이라 선전했다. 새 대통령이 정녕 북한 지도자를 만나 협의하고 싶다면, 먼저 북한 지도자에게 합의대로 한국을 방문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에 대해 북한에 물어서 그대로 따른 전력이 있는 문 후보가 북한을 또 찾아가면, 대한민국의 권위는 크게 손상될 것이다.
 
셋째, 북한을 맨 먼저 방문한다고 공약으로 내걸면,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북한에 맡기게 된다. 그 공약을 이행하려면 북한의 동의가 필요한데, 북한이 순순히 들을 리 없다. 김 대통령처럼 노련한 정치가도 북한의 덫에 걸려 큰돈을 바쳤다는 사실을 문 후보는 깊이 새겨야 한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강대국들에 앞서 북한을 먼저 방문하는 것이 세계에 혼란스러운 전언을 보내리라는 점이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라는 순서엔 우방이 먼저이고 6·25전쟁에서 우리를 공격한 나라들은 다음이라는 뜻이 담겼다. 새 대통령이 북한을 먼저 찾는 것은 그런 뜻을 부정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안보를 보장해 온 미국에 대해 은혜를 모욕으로 갚는 일이다. 그렇게 큰 비용을 치르고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
 
북한을 맨 먼저 방문하는 것을 논외로 하더라도, 새 대통령의 강대국 방문 순서는 여전히 미묘한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방문 뒤 느닷없이 중국을 방문했고 일본은 끝내 찾지 않았다. 이제 새 대통령이 일본과 중국 가운데 어느 쪽을 먼저 방문하더라도, 다른 쪽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이 곤혹스러운 처지에서 벗어나는 길은 새 대통령이 일본을 맨 먼저 방문하는 것이다. 일본은 크게 반길 것이고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단숨에 풀릴 수 있다. 지금 우리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일이므로, 이런 방안의 이점은 명백하다. 한·일 관계의 개선을 줄곧 촉구해 온 미국도 흔쾌히 동의할 것이다. 미국보다 먼저 일본을 방문하면, 중국으로서도 낯이 깎이지 않으니 시비를 걸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하면, 5년 뒤 우리 대통령에겐 선택의 여지가 생긴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라는 합리적 순서로 복귀할 수도 있고, 아예 일본을 맨 먼저 방문하는 것을 관행으로 삼을 수도 있다. 작은 나라는 외교에서 창의적으로 행동하기 어렵지만, 이번엔 창의적 결단이 가능하고 결과도 좋을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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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