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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독선에 저녁급식 끊긴 경기도 고교들… 학생들 “컵밥으로 때우거나 그냥 굶어요”

방과후 구리여고 앞 분식집에서 컵밥과 떡볶이로 저녁식사를 대신하는 학생들. 지난달부터 경기도 내 고등학교 중 석식을 제공하지 않은 학교가 많아지자 분식점이나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학생이 늘었다.

방과후 구리여고 앞 분식집에서 컵밥과 떡볶이로 저녁식사를 대신하는 학생들. 지난달부터 경기도 내 고등학교 중 석식을 제공하지 않은 학교가 많아지자 분식점이나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학생이 늘었다.

24일 오후 5시,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의 구리여고 교문 옆 분식점은 수업을 마치고 몰려든 학생들로 북새통이었다. 매장 내 10여개 남짓한 자리가 가득 차자 학생들은 분식점 옆 문구점 앞에 선 채로 컵밥이나 떡볶이를 먹기도 했다.
 

2000원짜리 컵밥으로 저녁 때우고
야자 대신 학원행, "사교육비만 늘어"
"공립고 학생만 받는 차별" 불만도

2학년 김모(17)양도 흰 쌀밥에 떡볶이 국물을 얹은 2000원짜리 컵밥을 먹고 있었다. 방과후 수업이 끝나면 교실에 남아 자습하는 김양은 평일엔 매일 이곳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김양은 “엄마는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하지만, 교실에서 냄새를 풍기면 ‘민폐’일 것 같다. 컵밥 먹는 게 싸고 편하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김양처럼 이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거나, 수업 뒤 학원·독서실을 가던 학생들은 학교의 저녁 급식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2월부터 학교의 석식 제공이 중단했다. 야간자율학습의 축소를 유도하는 경기도교육청이 저녁 급식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김양의 어머니는 “한창 클 나이에 영양도 위생도 부실한 컵밥으로 끼니 때우는 게 속상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저녁 대신 먹는 컵밥과 떡볶이. 왼쪽은 밥 위에 떡볶이를 얹고 마요네즈와 햄을 추가한 컵밥 메뉴인 '스팸밥'. 가격은 2000원이다.

학생들이 저녁 대신 먹는 컵밥과 떡볶이. 왼쪽은 밥 위에 떡볶이를 얹고 마요네즈와 햄을추가한컵밥 메뉴인 '스팸밥'. 가격은 2000원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가운고 3학년 정모(18)군은 이달 초부터 학원을 2곳 더 늘렸다. 정군은 부족한 과목은 인터넷 강의로 보충하고 자습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실력을 높일 작정이었다. 하지만 저녁 급식이 중단되면서 야자 참여 인원이 확연히 줄고 면학 분위기도 예전만 못해 공부 능률이 떨어졌다. 정군은 “집에는 공부방이 없어 자습하기 불편해 저녁밥만 먹고 학원으로 간다. 석식 중단으로 공부 리듬도 끊기고 경제적 부담만 늘었다”고 얘기했다.
 
이처럼 경기도의 공립 일반고 상당수가 개학 이후 석식 제공을 중단함에 따라 학생·학부모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애초 도교육청이 추진하려던 정책은 야간 자율학습의 전면 폐지였다. 지난해 6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취임 2주년을 맞아 열린 간담회에서 “입시·성적·성과 위주의 경쟁적 교육이 ‘야자(야간자율학습)’라는 비인간적, 비교육적인 제도를 만들었다”며 “학생들을 ‘야자’라는 틀에서 해방하겠다”고 말했다. 2014년 ‘9시 등교제’를 전면 도입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야자 전면 폐지’는 학부모, 학교로부터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지난해 12월 도의회가 학생 스스로 선택한 자습은 허용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제정하면서 무산됐다.
 
그런데 불똥이 저녁 급식으로 튀었다. 지난 1월 도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야간자율학습을 위한 석식 제공을 중단하라는 지침을 통보했다. ‘학교는 교육과정 내의 급식만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학교 수업이 없는 시간대의 저녁 급식은 근거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갑작스러운 석식 중단을 놓고 우려가 커지자 도교육청은 지난달 ‘석식은 학교운영위원회와 상의해 학교장 자율로 결정할 수 있다’는 공문을 다시 보냈다. 하지만 일선 공립고 교장들은 여전히 석식 제공에 소극적이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교장은 “인사권을 쥔 교육감이 부정적인데, 어떤 공립학교 교장이 나설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최근 고양시에 위치한 한 공립고는 야간 자율학습에 참가하는 3학년 학생들이 나서 석식 희망자를 파악했다. 전교생 1000여명 중 220명이 저녁 급식을 희망한다는 결과를 학교측에 제출하고 석식 재개를 요구했다. 3학년 이모(18)군은 “학교 앞에 마땅한 분식집도 없어 저녁을 굶고 공부하다가 새벽 1시쯤 집에 돌아가서 폭식하고 식곤증에 곯아떨어진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장은 “희망자 상당수는 학원·독서실에 간다. 이들을 위해 석식을 제공할 의무는 없다”고 거절했다. 이군의 아버지는 “학교와 교육청이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을 돕기는커녕 학습권과 건강권마저 침해하고 있다”고 화를 냈다.
 
도교육청은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조대현 도교육청 대변인은 “학생이 늦은 저녁까지 교실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것은 미래 교육이 나아갈 방향이 아니다”며 “고교생들도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방과 후 진로 탐색 시간을 갖는 게 좋다”고 설명한다.
 
학부모들은 “애꿎은 공립 일반고 학생만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경기도 내의 특목고·자사고는 물론 사립 일반고는 예년처럼 급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구리시 수택고의 학부모 최모(50)씨는 “내신과 수능으로 치르는 대입 경쟁은 바뀐 게 없는데, 경기도의 고교가 석식을 중단한다고 해서 변화하는 게 있냐”며 “이 지역 학생에게 걸림돌만 되고,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안승남 경기도의원은 “억지 자율학습은 금하는 게 맞으나, 자습을 원하는 학생의 건강을 해치는 건 불합리하다”며 “교육청의 일방적인 행정을 저지할 수 있는 조례안을 상정하겠다”고 말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과 급식을 그치면, 학교가 아니면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거나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경제적 취약 계층 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다”며 “아무리 이상적인 정책이라 할지라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특정 계층에게 피해를 준다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리=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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