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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안 듣고도 학점 받아요"…대학가에 확산되는 '자기설계 학기'

한양대 경영학부 이재홍(25)ㆍ김은진(24)ㆍ강희윤(26ㆍ왼쪽부터)이 20일 한양대 경영관3층 비즈니스랩에서 브래인스토밍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학기 강의식 수업은 듣지 않은 대신 소상공인의 점포 계획을 시뮬레이션하는 프로그램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한양대 경영대는 강의식 수업 전혀 안 받고도 프로젝트로만 학점을 인정하는 ‘프로젝트 학기’를 올해 첫 도입했다. 학교는 프로젝트 참가학생을 위해 벤처 사무실 처럼 책상,컴퓨터, 화이트보드 놓인 공간으로 꾸몄다. 조문규 기자

한양대 경영학부 이재홍(25)ㆍ김은진(24)ㆍ강희윤(26ㆍ왼쪽부터)이 20일 한양대 경영관3층 비즈니스랩에서 브래인스토밍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학기 강의식 수업은 듣지 않은 대신 소상공인의 점포 계획을 시뮬레이션하는 프로그램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한양대 경영대는 강의식 수업 전혀 안 받고도 프로젝트로만 학점을 인정하는 ‘프로젝트 학기’를 올해 첫 도입했다. 학교는 프로젝트 참가학생을 위해벤처 사무실 처럼 책상,컴퓨터, 화이트보드 놓인 공간으로 꾸몄다. 조문규 기자

졸업 전 마지막 학기를 맞고 있는 한양대 4학년 김은진(23ㆍ경영)씨는 22일 오전 9시 캠퍼스에 도착했다. 그는 강의실ㆍ도서관 대신 경영관 3층‘한양비즈니스랩’으로 향했다. 130㎡ 규모의 공간에 사무용 책상와 컴퓨터,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화이트보드 등이 마련됐다.
 벤처 사무실 같은 이 곳에서 김씨는 매일‘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을 한다. 그는 소상공인의 점포 입지 선정을 돕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김씨는 “예비창업자가 카페를 낼 장소와 컨셉트를 입력하면 예상 고객ㆍ매출을 산출해 성공 여부를 내다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학생 스스로 정한 창업, 창작, 연구과제 수행
학기말까지 목표 달성하면 학점 인정
아주대, 한양대, 건국대 등에 확산
"시행착오 속에 배우는 새 교육 방식"

 이번 학기 김씨는 강의식 수업은 일절 듣지 않는다. 학기말까지 자료ㆍ현장 조사, 프로그래밍에만 몰두한다. 그래도 졸업엔 지장 없다. 프로젝트를 끝내면 15학점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양대 경영대가 올해 첫 도입한‘프로젝트 학기’참가자다. 총 25명의 학생이 교수들과 협의해 발굴한 도전 과제에 몰두하고 있다. 교수들은 매주 회의를 통해 진전 사항을 점검, 조언한다. 학교는 사무공간과 함께 1인당 200만원의 장학금도 지원한다.
 장석권 경영대학장은 “곧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엔 경영학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며 “교수가 말하고 학생은 듣는 ‘일방통행’ 수업 대신 학생이 도전 속에서 스스로 배우는 교육을 실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4년 내내 경영학을 배웠어도 교과서 예제나 풀었을 뿐, 현장 문제에 도전한 적 없다. 소중한 경험이 될 것 같아 취업 준비도 미루고 참여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대학가엔 이처럼 학생이 스스로 정한 과제를 수행하면 강의를 듣지 않아도 학점을 주는 ‘도전 학기’의 도입이 잇따르고 있다. 교환학생, 기업 인턴에 한정됐던 학점 인정을 학생 주도의 창업ㆍ창작ㆍ연구로 확대했다. 목표도, 내용도 학생이 직접 설계하는 방식이라‘자기설계 학기’로도 불린다.
지난해 9월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열린 '일본 학생 포뮬러 대회'에 참가한 아주대 기계공학과 학생들. 이 학교의 '파란 학기' 제도를 활용해 600cc급 경주용 자동차를 설계, 제작했다 [사진 아주대]

지난해 9월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열린 '일본 학생 포뮬러 대회'에 참가한 아주대 기계공학과 학생들. 이 학교의 '파란 학기' 제도를 활용해 600cc급 경주용 자동차를 설계, 제작했다 [사진 아주대]

지난해 1학기 아주대가 도입한 ‘파란학기’가 원조격이다. 김동연 아주대 총장은 “학생들에게 학교ㆍ교수가 정한 정형화된 수업을 ‘따라오라’고 강요하는 대신 학생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시행착오에서 배우길 기대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ㆍ2학기엔 총 201명이 이수했고, 올 1학기에만 145명이 신청했다.
 학생들의 꿈 만큼이나 도전 과제도 다양하다. 지난해 기계공학과 학생들은 600cc급 경주용 차량의 설계ㆍ제작한 뒤 지난해 9월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열린 국제 학생 포뮬러 대회에 출전했다. 100여개 참가팀 중 유일한 한국팀이었다. 문화콘텐트학과 학생들은 대학 밴드들의 대결로 진행되는 ‘서바이벌 공연’을 기획했다. 4차례의 공연 모두 매진을 기록했다.
 학생들에겐 취업ㆍ창업의 디딤돌 역할도 됐다. 지난해 지영림(22ㆍ문화콘텐츠4)씨 등 10여명이 참여한 ‘시나브로’팀이 제작한 웹드라마는 포털 TV 캐스트 등을 통해 상영됐다. 당시 연출을 맡았던 지씨는 다음달부터 한 모바일영상업체에서 PD로 근무한다. 지씨는 “드라마를 실제 제작하면서 내가 꿈꾸던 진로가 적성에 맞는 지 탐색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파란학기 동안 가상현실(VR) 게임용 하드웨어를 개발한 오복성(25ㆍ기계공학4)씨는 정부로부터 1억여원을 지원받아 벤처 설립이라는 꿈을 이뤘다. 오씨는 “파란학기 동안 지도교수, 다른 학생들부터 벤처 설립과 경영 노하우를 얻었는데, 실제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1학기 웹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는 아주대 '시나브로' 학생들. '파란학기' 참가자들이 제작된 드라마가 네이버 TV 캐스트 등을 통해 방영됐다. [사진 아주대]

지난해 1학기 웹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는 아주대 '시나브로' 학생들. '파란학기' 참가자들이 제작된 드라마가 네이버 TV 캐스트 등을 통해 방영됐다. [사진 아주대]

 도전 학기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한 창작ㆍ창업 준비와 학업을 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올 1학기 ‘드림학기제’를 도입한 건국대의 강소이(22ㆍ영상4)씨는 하루 8시간 이상 그래픽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7분 분량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면 9학점을 받게 된다. 그는“스토리를 완성하고도 학업과 제작을 병행할 염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젠 졸업을 미루지 않고도 해외 페스티벌 입상이라는 꿈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 차원의 지원도 활발하다. 아주대는 파란학기에서 인정하는 1학점 당 10만원을 지원한다. 건국대도 평가 결과에 따라 소정의 장학금을 지원한다. 강황선 건국대 교무처장은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융합형 인재를 키우려면 대학도 교육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며 “학생들도 자기 진로에 대한 깨달음과 자신감을 찾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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