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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의 아내 장잉, 어린애 같은 그를 최고 부자로 만든 내조의 비법

마윈(?云).  ‘알리바바 그룹’의 창업자다. 마윈의 창업 스토리는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소개될 만큼 유명하다. 중국에 관심이 있다면 마윈이 사범대 출신 영어 교사였던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가족에 대한 얘기는 생각보다 찾기 쉽지 않다.
 

마윈의 아내, 장잉. 알리바바 창업 멤버인 동시에
한 때 알리바바 그룹의 중국 사업부를 총괄.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내조에 주력

장잉. 마윈의 아내다. 동시에 알리바바 창업 멤버다. 한 때는 알리바바 그룹의 중국 사업부를 총괄할 만큼 수완도 좋았다. 하지만 회사 규모가 급속하게 커지고 나서는 일선에서 손을 떼고 내조에 주력한다. 이 과정에서 일과 가정을 놓고 마윈과 대판 다퉜다는 소문도 전해진다.
마윈(왼쪽), 장잉 [사진 바이두]

마윈(왼쪽), 장잉 [사진 바이두]

장잉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얼마전 마윈을 다룬 책 한권을 읽다가 장잉의 얘기를 발견하게 됐다.  마윈의 영어 교사 시절 제자이자, 후에 알리바바 그룹 비서실에서 일하게 된 천웨이가 쓴 ‘이것이 바로 마윈이다(?就是?云)’라는 책이다.
 
이하 책에 등장하는 장잉에 관한 내용이다. 순간 순간의 기록이라 내용이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지만, 장잉이라는 한 여성의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다.

마윈의 아내인 장잉은 항저우사범대학교 동기였다. 후에는 항저우전자공업학원 학과 연구실에서 일했다. 장잉은 당시 마윈이 일이 있어 수업을 하지 못할 경우, 대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수업 횟수가 그리 많진 않았지만,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에서 두 사람의 성향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마윈은 수업 시간에 영어보다 다양한 사상과 관련된 내용을 더 많이 가르쳤다. 형식의 구애도 받지 않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장잉은 교재에 따라 체계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어법과 어휘에 집중했으며, 마윈보다 전문적이었다. 영어 외의 것은 가르치지 않았다.
 
당시 마윈과 장잉의 집은 항저우 서쪽 끝에 있었다. 농지가 주를 이뤘고 밤마다 개구리의 소리가 들렸다. 마윈은 시끌벅적한 것을 좋아했다. 자주 학생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했고, 이로 인해 집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장잉은 학생들을 미소띈 얼굴로 차와 함께 맞이했다. 어떤 때에는 식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들이 떠나간 뒤 자리를 치우는 건 장잉의 몫이었다.
 
장잉은 영어 수업을 하는 동시에, 마윈의 창업도 도왔다.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어 농촌 출신의 보모를 구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였다. 그 결과 아이들이 보모의 농촌 발음을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장잉은 당장 보모를 해고했다.
영어 교사 시절 마윈 [사진 바이두]

영어 교사 시절 마윈 [사진 바이두]

마윈은 ‘차이나옐로우페이지(中???, 마윈의 첫 창업)’를 창업하기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 했다. 마윈은 당시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일을 언급했다. 장잉은 마윈의 결정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럼 그 이후에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요"라는 한마디만을 남기고 단념했다.
 
차이나옐로우페이지를 설립한 후 마윈은 흥분했다. 미국 출장에 갈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방 지쳤다. 피로를 느낀 마윈은 장잉을 미국에 대신 보내기 시작했다. 어느날 마윈이 작가(천웨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천웨이, 학생 모임 하나만 만들어줘, 오늘 밤부터 맨날 참석할꺼야", 천웨이가 되물었다 "요즘 많이 바쁘시지 않나요?". 마윈의 대답이 돌아왔다 "장잉이 미국에 대신 갔거든, 무려 15일 동안이나!!, 마치 길에서 200만 위안을 발견한 느낌이야, 이 시간을 다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어!!"
 
장잉은 마윈의 창업 초기, 창업 핵심 멤버의 역할도 했다. 차이나옐로우페이지의 첫 수입인 8000위안 역시 장잉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차이나 옐로 페이지 시절 마윈과 장잉 [사진 바이두]

차이나 옐로 페이지 시절 마윈과 장잉 [사진 바이두]

그러나 알리바바 창업이 성공한 이후 장잉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2008년 장잉이 알리바바 부총재의 사무실을 찾은 적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자 안내 데스트의 비서가 앞을 막으며 '아가씨, 누구를 찾으러 오셨나요?"라고 물었다. 장잉은 한참 어린 그 직원을 잠시 쳐다본 후 말없이 돌아갔다. 이 부총재는 장잉이 직접 키운 인물이다.
 
이날 이후로 장잉은 알리바바에 거의 방문하지 않았다. 장잉은 당시 “스스로가 천신만고 끝에 세운 회사인데, 이제는 그곳에 가지 않게 됐어요. 거기에서 제가 더 이상 할 일이 없었거든요”라고 했다.
 
장잉은 마윈을 내조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장잉에 따르면 마윈은 떼를 쓰는 아이와 같았다. 외부 손님과 대화를 할 때는 흥분하며 지칠줄 몰랐지만, 일이 끝난 후에는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일정이 많을 때는 장잉이 직접 스케줄을 관리하며 마윈이 일찍 마치고 집으로 귀가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마윈은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먹곤 했다. 점심 시간이 되면 장잉은 마윈이 밥을 잘 챙겨 먹는지 채근했다.
 
점심 시간 마윈의 사무실에 가면 종종 다음과 같은 마윈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어..고기는 두점 먹었고, 달걀은 반개 먹었어, 야채는 많이 먹었고….과일은 지금 먹고 있어!

마윈이 입는 옷은 모두 장잉이 직접 준비한 것이다. 장잉이 사는 옷은 곧 마윈이 입어야 한다는 의미다. 홍콩에 있었을 때 마윈은 스스로 옷을 사러 간 적이 있었는데, 실상 본인이 옷을 고르는 것 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전혀 주도권을 갖지는 못했다.

가정주부, 맞벌이 교사 그리고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창업가의 아내로 살아온 장잉.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걸어왔다. 많은 알리바바 관계자들은 장잉을 알리바바의 개국공신으로 꼽는다. 마윈 역시 강연을 할때마다 종종 여성 리더십을 강조하곤 한다. 이 모든게 아내 장잉이 준 영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알리바바에는 여성 직원 비중이 46%를 차지합니다. 한때는 49~50%였는데, 최근 인수한 회사들의 남자 직원들이 많더군요(웃음). 전세계 IT 회사 중 가장 높은 비중의 여직원이 알리바바에 있습니다. 우리의 계열사엔 여성 CEO, CFO, COO도 있습니다. 저는 여성이야말로 알리바바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남성이 갖지 못한 ‘이타심’을 갖고 있습니다. 스스로보다 가정을, 스스로보다 남편, 자녀를 생각하죠. 그들의 포용력이 점점 중요한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마윈-

장잉: 저장성 성저우시 출생, 1988년 항저우 사범대학 영어학과 졸업 후 마윈과 결혼. 1995년 남편 마윈의 차이나예로우페이지 설립 위한 8만위안 창업 자금 마련. 1999년 마윈 등 18명과 함께 알리바바 창업. 알리바바의 2번째 정식 직원. 2004년 돌연 은퇴. 은퇴 후 단한번도 공식석상에 나서거나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음.  
 
글= 유재석 원아시아 시니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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