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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보수·진보 함께하는 통일위 설치하자

조건식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전 통일부 차관

조건식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전 통일부 차관

우리 국민은 위기 때마다 이를 극복하고 오히려 국가 발전의 계기로 삼아 왔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거의 전 국민이 참가한 금 모으기 운동을 굳이 사례로 들지 않더라도 평소 모래알 같다고 자조 섞인 볼멘소리를 하던 우리들이지만, 일단 국가적 위기 상황이 오면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문제 해결에 앞장선다.
 

독일 통일은 정권 뛰어넘은
지속된 통일정책이 주효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이뤘듯
“범정파 통일위” 대선 공약해야

요즘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로 온 나라가 소란스럽고 마침내 현직 대통령에 대한 파면 선고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찌 보면 국가적으로 큰 불행한 사건이고 국민적 역량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헌법 개정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의 자정과 개선 노력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 제기를 하고자 한다. 지난 30여 년간 남북 관계의 현장 속에서 그 진행 과정을 관찰하고 또 참여해 왔던 사람으로서 지금이야말로 국민 모두의 지혜를 모아 국민적 합의에 바탕한 통일정책을 재정비할 절호의 기회(Golden Time)라고 강조하고 싶다.
 
통일정책은 어느 한 정권의 전리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라는 틀 속에 매인 5년 단임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무슨 깜짝쇼 하듯이 소위 ‘선거 캠프 떴다방’이 만든 작품을 전격 발표한 후 수개월 내지 수년에 걸쳐 뒤늦게 그 내용과 의미를 설명하느라 시간을 허비해 온 것이 현실이다.
 
보수와 진보는 우리 모두가 한반도 미래를 개척해 나아가기 위해 소중히 가꾸어야 할 상생의 가치이지, 서로 배척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의 통일정책 수립과 관련해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움이, 다른 한편으론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1988년 제6공화국이 출범한 후 우리 정부는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7·7선언)을 발표하고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우리 통일 방안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여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의한 대북화해협력정책을 89년 9월 정기국회에서 공식 선포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적극적으로 북방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통일정책에 대한 다양한 국민 의견을 하나의 용광로에서 용해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야당의 지도자였던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대중 평민당 총재, 김종필 신공화민주당 총재 모두 흔쾌히 이를 받아들여 만장일치의 통일방안이 채택되었다. 헌정 사상 국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초당적인 통일방안이 채택된 것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후 5년 단임 정부들은 장기적 비전을 갖고 통일정책을 계속 추진하기보다는 국민적 합의에 의해 수립되었던 통일정책을 정권의 업적 홍보용이나 남북관계 악화의 면피용으로 이용함으로써 통일정책의 지속성과 일관성을 무너뜨렸다.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다.
 
이런 면에서 독일의 사례는 부럽기 그지 없다. 1969년 진보 연립정부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시작한 ‘신동방정책’이 꾸준히 지속되어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82년 보수 연립정부의 헬무트 콜 총리도 기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함으로써 독일 통일의 기반을 닦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우리 앞에 놓여진 중요한 과제는 국민적 합의에 기반한 통일 방안을 다시 수립하는 것이다. 혹자는 시비를 건다. “통일 방안이 밥 먹여 주느냐?” 그렇다. 나는 감히 말한다. 통일 방안이 제대로 서 있어야 통일정책의 목표가 분명하게 제시될 수 있고 또 그래야 대북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국론 분열을 억제하고 통합된 국가적 역량을 바탕으로 통일의 과정을 밟을 수 있다고 본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이뤄내는 데 큰 역할을 감당했던 당시 이홍구 통일원 장관은 “통일 방안이라는 것은 각 정당을 통하여 국민의 진정한 뜻을 모으고 공청회도 열어 가면서 모든 길을 통하여 국민의 참뜻을 모아 확정 지어야 한다. …새 통일 방안은 반드시 세 가지 원칙을 구비해야 한다. 즉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 국민적 합의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처럼 소위 선거캠프 관계자들이 밀실에서 만든 통일정책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국민에게 따르라는 식의 독선적 행태는 삼가야 한다. 이를 위해 50일 남은 선거 기간 동안 각 대선후보들로 하여금 자신이 당선되면 공정하고 중립적인 ‘통일정책위원회’를 설치하여 우선 범국민적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공약을 표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절차가 핵심이라고 한다. 통일정책의 내용보다는 앞으로 탄생될 새 정부가 어떤 성격의 기구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투명하게 수렴할 것인지를 먼저 공약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국회의장이 주관하는 4당 원내대표들의 합의와 각계 사회단체들의 호소문 등을 활용하여 ‘사회협약안’을 발표하고 이를 통일정책 수립에 반영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물론 다양한 국민의 견해를 수렴하는 과정에서 국회 공청회 등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조건식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전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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