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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통렬할수록 좋은 것들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존 갤브레이스는 반 세기 전 이미 ‘불확실성의 시대’를 갈파했던 경제학자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불황의 좋은 점 하나는 회계감사관이 놓친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주머니가 두둑할 땐 작은 구멍으로 동전 몇 닢 빠져나가는 정도는 신경도 안 쓰지만 주머니가 비면 꼼꼼히 살펴 터진 곳을 꿰매게 된다는 말이다. 사드는 들어오고 유커는 사라진 오늘 이 땅에서 갤브레이스의 말은 여전히 진리다.
 

시위는 잦아도 얻는 건 별로 없는 이유
정경유착의 깊은 뿌리를 통렬히 캐내야

중국 자본에 의해 사방천지 파헤쳐지고 있는 제주도서부터 중국인들이 즐기는 주전부리 노점상들로 가득 찼던 서울 명동에 이르기까지 유커가 사라지고 나서야 진짜 문제가 뭐였는지 깨닫게 됐다는 얘기다. 좁게는 중국만 바라보고 있다간 큰일나겠다는 각성이요, 넓게는 눈앞의 이익만 좇다 우리의 본색을 잃고 있었다는 깨달음이다. 중국색으로 덧칠한 한국 대표 관광지, 서울 대표 거리가 웬 말이냐는 반성이요, 그런 곳을 다른 나라 관광객들이 뭐하러 찾겠느냐는 자각인 것이다.
 
불황은 통렬할수록 좋다. 어설퍼서는 경제에서 불건전 요소를 걸러내고 좀비와 기생충을 쫓아낼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순간에 벌어진 유커의 소멸은 통렬해서 좋다. 찔끔찔끔 사라졌다면 공허히 붙잡겠다고 중국색만 외려 두터워졌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길 필요는 없다. 불황이 그렇듯 유커의 소멸 역시 오래가서 좋을 게 없다. 이참에 건강하지 못한 중국 바라기를 버리고 보다 선명한 우리 고유의 색깔로 당당하게 겨룰 체력을 기르면 되는 것이다.
 
제 색깔을 찾아야 할 건 관광산업만이 아니다. 훨씬 더 뼈저리고 시급한 게 이 땅의 ‘정체성(政體性)’이다. 굳이 성(性)자를 보탠 건 헌법은 ‘민주공화국’을 일컫는데 그렇게 읽기가 도무지 낯뜨거운 유사 상표인 까닭이다. 국민주권, 권력분립, 법치, 의회주의라는 민주공화국의 가치가 한 사람의 최고권력자에게 조아려 왔지 않나. 한마디로 ‘전제적 민주공화국’이란 말과 다름 아니다. 이러한 형용 모순이 ‘제왕적’으로 시작했다가 ‘레임덕’을 거쳐 ‘실패한’으로 끝나고 마는 이 나라 대통령의 운명을 예고한다.
 
그나마 많이 나아졌다고 믿었다. 유신독재 때에 비하면 문자 그대로 환골탈태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한 사람의 시대착오적 인물이 권력을 잡으면 단숨에 70년대 수준으로 후퇴할 만큼 취약한 이 땅의 민주공화정을, 그 부실한 뼈대를 우리는 목격했다. 오죽하면 월스트리트저널이 촛불시위를 보며 “한국인들은 왜 시위를 자주 하면서도 정작 얻어낸 건 별로 없는가”라는 의문을 표시했을까. 우리는 왜 늘 이 모양일까.
 
불황처럼 이런 의문 제기 역시 통렬할수록 좋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통렬함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대통령을 탄핵했고 파면했다. 그리고 죄를 물어 법정에 세우려 하고 있다. 보다 통렬해야 한다. 그럴수록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지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뿌리 깊은 정경유착”이다. 권력을 차지한 자는 기업의 조공을 당연한 전리품처럼 기대하고, 기업은 특권과 특혜를 지켜줄 권력자에게 돈을 싸들고 달려가는 구조 말이다. 이 같은 독초를 뿌리째 캐내지 못했기에 권력자는 바뀌어도 부패는 이어지고 또한 시위도 계속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제 그 독초를 통렬히 뽑아내야 한다. 한 부패 권력자에 대한 한풀이가 아니라 부패의 순환고리를 깨뜨리기 위해서다. 잘못을 낱낱이 드러내 밝혀야 한다. ‘부패 헌장(憲章)’을 만들어 벽에 걸어야 한다. 권력에 다가가려는 자들에게 읽혀야 한다. 똑 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훨씬 더 큰 단죄를 각오하겠다는 약속을 받아야 한다. 이런 통렬함은 아무리 더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도 되풀이되기 쉬운 게 부패다. “정부(권력)는 결코 배우지 않고 오직 국민들만 배울 뿐”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말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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