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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디지털 감옥 속의 투명인간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직업상 매달 한 번쯤은 날 잡고 앉아서 그달에 나온 패션지나 멤버십 잡지를 쭉 훑어본다. 대개 잡지들이 저마다 힘줘 만든 다양한 콘텐트가 여럿 눈에 띈다. 그런데 이번 3월호에선 이상하게 유독 사진 한 컷만 눈에 들어왔다. 고가의 프리미엄 패딩 브랜드 몽클레르의 광고였다. 
제품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다. 분명 광고 지면인데 제품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수많은 책이 책장과 책상과 바닥에 어지러이 쌓여 있는 서재 풍경이 전부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한 남자가 유리창과 책더미와 의자 위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바로 ‘도시 속에 숨기(Hiding in the City)’ 시리즈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중국의 보디페인팅 행위예술가 류보린(44·Liu Bolin)이다.
 
그는 이번 광고에서도 정교한 보디페인팅을 통해 프레임의 가장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됐다. 그간 선보여 왔던 만리장성이나 숲속, 혹은 수퍼마켓 진열장 앞에서의 작업처럼 카멜레온 같은 위장술로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류보린 몽클래르

류보린 몽클래르

이 사진이 그토록 인상적이었던 건 단지 매력적인 류보린의 ‘투명 예술’을 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스스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파는 럭셔리 브랜드가 스스로를 사라지게 함으로써 존재가치를 드러내는 예술가를 광고모델로 기용한 그 기묘한 모순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사람들의 숨겨진 욕망을 가장 앞서 가장 잘 읽어내는 럭셔리 브랜드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단지 비주얼적으로 근사하기 때문일까. 혹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숨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을 끄집어낸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세와 익명성, 다시 말해 주목받고 싶지만 동시에 다수 속으로 숨고 싶은 갈망이야말로 현대인을 잘 설명하는 두 핵심 키워드이니 말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타자의 추방』에서 현대사회를 디지털 판옵티콘(모든 걸 감시받는 원형감옥)으로 정의한 바 있다. 벤담이나 미셸 푸코가 말하는 판옵티콘처럼 시선이 지배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시선 없이도 지배한다고 했다. 감시받기는커녕 오히려 자유롭다고 느끼며 끊임없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노출시키는, 감시자 없이도 감시당하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중심에 당당하게 서서 스스로 투명인간이 되는 류보린이야말로 드러냄을 부추기는 이 디지털 감옥 속 현대인의 불안한 욕망을 가장 잘 짚어낸 게 아닌가 싶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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