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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다시 ‘내일은 어제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허태균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허태균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very nation gets the government it deserves(모든 국가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프랑스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말이다. 정확히 따지면 약간 차이가 있지만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딱 그 수준에 맞는 리더를 가진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흔히 인용된다. 이 명언은 현재 많은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결국 탄핵되었고, 국민의 다수가 그 탄핵에 찬성했다 하더라도 그가 과반이 넘는 득표로 당선된 합법적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때는 박 전 대통령이 국민 수준에 딱 맞아서 당선되었고, 4년 만에 국민 수준이 갑자기 높아져 지금은 높아진 국민 수준에 못 미쳐 탄핵되었다고 이해하면 될까?
 

박근혜는 탄핵돼 과거가 됐다
실패한 전 대통령과 다를수록
성공할 대통령이 될 거란 믿음은
초점주의의 착각이다
전임자 미워해 그 반대를 찾으면
다시 그를 미워하는 악순환이 된다

박 전 대통령을 잘 모르고 찍었다고, 마치 감쪽같이 속은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정치인들마저도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탄핵을 당한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 유일하지만, 한국 역사에서 직선 대통령 대부분이 임기 말에 최악의 지지율로 국민들의 미움을 받은 사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김영삼 71%에서 6%로, 김대중 71%에서 24%로, 노무현 60%에서 27%로, 이명박 52%에서 23%로. 우리의 모든 대통령은 한결같이 국민을 속이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일까, 아니면 우리 국민은 모든 대통령에게 속을 정도로 멍청한 걸까? 그렇다면 이것 또한 국민 수준에 딱 맞는 대통령들을 가져왔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같은 일들이 반복된다면 우연일 리는 없다. 대선이 채 50일도 안 남은 이때 또다시 미워하게 될 대통령을 뽑지 않으려면 지금 그 원인을 고민해 봐야 한다. 한국의 모든 대통령이 임기 초에는 사랑받다가(당연히 그래서 당선됐을 것이다), 한결같이 임기 말에 미움을 받는다. 그런데 그 미움받은 내용을 보면 제각각 모두 달랐다. 그러니 그 원인이 계속 바뀐 대통령들에게만 있을까? 차라리 그들을 계속 뽑아 온 국민들에게도 잘못이 있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그리고 솔직히 인정해 보는 건 어떨까? 물론 그 모든 비극의 책임을 국민이 떠안고, 전 대통령들에겐 면죄부를 주자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유권자인 국민이기에, 지금까지 자신의 투표행위를 스스로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제안이다. 
인간의 사고에서 구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한계는 초점주의(focalism)다. 사람들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관련된 판단에서도, 한두 가지의 요인만을 고려해 편향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끝도 없는 옥수수밭으로 둘러싸인 미국 중부 거주민들에게 캘리포니아에 가서 사는 삶을 상상해 보라고 하면 엄청나게 행복한 삶을 예상한다. 아름다운 해변과 따사로운 햇볕, 그리고 피크닉과 다양한 야외운동을 상상한다. 하지만 실제 미국 중부와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행복도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사실 캘리포니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하루에 8시간 이상 실내에서 근무하고, 자녀를 양육하고, 싸우고 경쟁하고 노력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 해변과 햇볕은 삶의 극히 일부분인데도 중부 사람들은 그 영향을 과대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 한결같이 미움받는 원인 중에 바로 초점주의가 있다. 딱 전임자 같지 않은, 전임자가 미움받은 이유의 딱 반대인 대통령을 찾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다.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는 너무나도 다양한 능력과 자질이 필요한데도 전임자의 단 몇 가지 실패 요인에 매달리는 것이다. 마치 그 실패 요인만 없으면 당연히 나머지는 모두 다 갖추어졌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부족한 면이 드러나면 마치 몰랐던 것처럼, 속았던 것처럼 배신감을 느끼고 실망한다. 그래서 임기 말에 대통령은 국민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달걀과 닭 중에 무엇인 먼저인지가 헷갈리는 것과 같다. 전임자를 미워해서 그 반대를 후임자로 찾고, 그래서 다시 그 후임자를 미워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됐다. 이미 과거가 된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 다르면 다를수록 더 성공할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초점주의의 착각이다. 모든 전문가가 얘기하듯 한국은 국내외적으로 너무나 심각하고 다양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수많은 자질의 통합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다음 대통령은 미래를 책임지지 과거를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게 아니다’가 아닌 ‘이렇게 하겠다’는 대통령이 필요하지 않은가. 지난해 1월 새해를 준비하는 중앙시평의 제목이었다. ‘내일은 어제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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