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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석유왕’ 록펠러의 마지막 손자 데이비드, 101세로 떠나

록펠러 가문의 최고 어른이자 은행 경영자와 자선사업가, 외교전문가로 활동해 온 데이비드 록펠러(사진)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포칸티코 힐스의 자택에서 숨졌다. 101세.
 

체이스맨해튼은행 CEO 등 거쳐
자선사업가·외교전문가로 활동

고인은 스탠더드오일의 설립자인 ‘석유왕’ 존 D 록펠러의 손자다. 존 D 록펠러의 외아들 존 D 록펠러 주니어의 여섯 남매 중 막내아들이다. 자선사업가인 존 D 록펠러 3세, 넬슨 A 록펠러 전 부통령(뉴욕 주지사 4선), 윈스롭 록펠러 전 아칸소 주지사 등 그의 형제들은 이미 사망했다.
 
그는 1915년 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와 런던경제대에서 공부했고,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의 가르침을 받았다. 70년대엔 JP모건체이스의 전신인 체이스맨해튼은행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록펠러’라는 가문은 그의 사업에서도 엄청난 후광으로 작용했다. 고인은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구 소련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협상해 체이스맨해튼은행을 이들 나라에 가장 먼저 진출한 미국 은행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은행가로서의 업적은 은행의 국제화 이외에는 뚜렷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동안 체이스맨해튼은행은 경쟁자인 씨티은행에 자산과 순익 측면에서 한참 뒤처졌다.
 
81년 은퇴한 뒤로는 자선사업가로 활동하며 현대미술관(MoMA)·록펠러대·하버드대 등을 비롯해 여러 학교와 자선단체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또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을 지냈고 북미·서유럽·일본의 관계 강화를 꾀하는 ‘3자 위원회’를 공동 설립하는 등 외교 부문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2003년에는 3자 위원회 회장 자격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기도 했다. 고인은 또 자본주의의 비전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한편 환경보호론자로도 활동했다.
 
제임스 다이몬 JP모건 회장은 “록펠러는 자선사업은 물론 예술·비즈니스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였다. JP모건도 그의 노력과 도전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취미로 딱정벌레를 수집했던 고인은 자녀들이 20대가 되기 전까지 돈 씀씀이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등 검소한 성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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