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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미술] 역사를 상상하다

이지은명지대 교수·미술사학

이지은명지대 교수·미술사학

하나의 ‘옳은’ 역사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마주하면 난감하다. 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뿐 아니라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 모두가 경계해야 할 신념이다. 겸허한 초심으로 과거를 바라볼 때 확신에 눈이 가려 보이지 않던 것이 드러난다. 과거는 오롯이 현재로 소환될 수 있을까. 과거와 견주었을 때 현재는 더 투명하고 확실한 것일까. 경기도 용인시 백남준 아트센터의 ‘상상적 아시아’(7월 2일까지)는 스크린에 담은 영상작업으로 이런 질문에 답한다.
 

백남준 아트센터 ‘상상적 아시아’

전시는 과거를 말할 때의 한계를 직시했다. 예술적 상상력을 동원해 다양한 ‘역사들’을 현재의 경험으로 불러왔다. 작품은 기록과 허구,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오가며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관람자를 그 앞에 증인으로 세운다. 딘 큐 레의 ‘모든 것은 재연이다’에 등장하는 일본인 나카우라는 베트남 전쟁사를 조사하고 재연하는 것이 취미다. 당시의 군복과 무기는 물론 군가나 전투식량까지 빠짐없이 수집하고 전쟁을 복기한다. 열 살 때 베트남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작가가 아는 전쟁과 나카우라가 말하는 전쟁은 사뭇 이질적이다. 철저한 고증과 개인의 경험 중 어느 것이 더 ‘진실’일까. 역사가 놓치는 개인의 경험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문틴과 로젠블룸의 영상 ‘디스코’. 제리코의 걸작 ‘메두사호의 뗏목’을 차용했다. [사진 백남준 아트센터]

문틴과 로젠블룸의 영상 ‘디스코’. 제리코의 걸작 ‘메두사호의 뗏목’을 차용했다. [사진 백남준 아트센터]

문틴과 로젠블룸의 영상 ‘디스코’는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쓰레기가 나뒹구는 클럽을 배경으로 낭만주의 화가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1819)을 재연했다. 혁명 이후 격변의 시기, 루이 18세의 왕정복고 때 왕당파의 낙하산으로 임용된 선장이 지휘한 메두사호는 세네갈로 항해하던 중 좌초됐다. 구명보트는 모자랐고 선원들은 구조보다 제 목숨 살리기에 급급했다. 급조된 뗏목에 의지한 사람들은 13일간 표류하며 굶주림과 공포에 서로 죽이고 죽는 생지옥을 겪었다. 발견된 생존자는 150명 중 15명에 불과했다. 당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은 정부의 무능함을 고발하는 걸작으로 남았다. 한편 ‘디스코’에서 밤새 몸을 흔들던 젊은이들은 참혹한 사건을 담은 그림 속의 포즈로 정지됐다. 무대 위 젊은 육체들이 만든 작위적인 군상은 원작의 포즈 또한 작가의 역사적 상상임을 역설한다.
 
르네상스 시대 『회화론』의 저자 알베르티는 성경 이야기나 신화, 영웅의 행적처럼 교훈을 주고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건이 역사화의 소재가 된다고 했다. 역사화는 처음부터 남기고 싶은 것만을 전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메시지에서 의미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수신자가 할 일이다. 중국 작가 송동의 ‘시작 끝’은 마주한 두 개의 스크린 사이에 관객을 세운다. 한쪽은 영화의 첫 부분에 나오는 디즈니·픽사·파라마운트 등의 로고를 비추고, 다른 한쪽에는 엔딩의 ‘The End’ ‘fin’을 보여주는 영상으로 관람객을 에워싼다. 영화의 시작과 끝 사이를 채우는 우리는 각자의 스토리가 된다.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어떤 모습으로 남을 것인가. 역사의 스크린에서 비칠 우리 뒷모습이 궁금하다.
 
이지은 명지대 교수·미술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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