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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루게릭요양병원’ 건립 15년의 꿈 … 온 몸이 마비돼도 희망이 보여요

루게릭 ‘눈’으로 쓴 박승일씨 그 후 12년, 희망콘서트 여는 누나 성자씨
2012년 겨울 시작된 루게릭희망콘서트는 25일 10회를 맞는다. 박승일 대표가 4회 콘서트에서 중창단 네이브로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다. [사진 박종근 기자]

2012년 겨울 시작된 루게릭희망콘서트는 25일 10회를 맞는다. 박승일 대표가 4회 콘서트에서 중창단 네이브로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다. [사진 박종근 기자]

대단한 집념의 남매다. 열 번째 루게릭희망콘서트가 열린다는 박성자(50)씨의 연락을 받고 처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온몸이 마비됐으면서도 다른 환자를 위해 요양병원를 짓겠다는 꿈을 15년 동안 놓지 않은 동생,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열 번의 대형 콘서트를 열어가며 모금에 나선 누나 말이다.
 
박씨의 막내 동생은 루게릭병 환자 승일(46)씨다. 막 국내 최연소 농구코치가 됐던 2002년 봄, 그러니까 꼭 15년 전에 그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온몸의 근육이 조금씩 마비되는 희귀병. 그 이후 승일씨는 자신과 같이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루게릭요양병원를 짓겠다는 꿈에 매달려왔다.
 
승일씨는 현재 눈동자 근육을 제외하곤 온몸이 마비된 상태다. 2004년 이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쉰다. 몸이 마비되기 직전까지 그는 기자들을 만나고 방송에 나갔다. 자리에 눕게 된 뒤론 눈꺼풀을 움직여 안구마우스로 글을 쓰고 책을 냈다. 루게릭병을 알리고 요양병원 건립 비용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동생의 꿈을 위해 성자씨가 나선 건 2009년이다. 승일씨의 눈꺼풀이 마비돼 안구마우스까지 쓸 수 없게 된 무렵이었다. 아이를 낳고 20년 가까이 전업 주부로 살아온 성자씨다. 동생 대신 뛰어 2011년 승일희망재단이라는 비영리재단을 세웠고 상임이사를 맡았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재단은 지금껏 아홉 번의 콘서트와 쇼핑몰 운영 등으로 35억원을 모금했다. 루게릭희망콘서트는 화려한 출연진과 제대로 된 기획으로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은 공연”이라는 평을 받는다. 지금까지 중 최대 공연은 3000명을 모았다. 25일 열 번째 공연을 앞둔 성자씨는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요양병원 건립이 조금씩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가을 승일희망재단의 걷기 대회에 휠체어를 타고 나온 박 대표(오른쪽 둘째). 공동 대표 션(왼쪽 둘째)이 막내 딸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종근 기자]

지난해 가을 승일희망재단의 걷기 대회에 휠체어를 타고 나온 박 대표(오른쪽 둘째). 공동 대표 션(왼쪽 둘째)이 막내 딸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박종근 기자]

6년 전에 재단 설립 소식을 전할 때만 해도 이 정도 성과는 상상을 못했어요.
“아무 계획 없이 시작한 일인데 여기까지 왔어요. 준비도 없이 그냥 ‘동생이 바라는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뛰어들었어요.”
 
예전에는 요양병원을 세우겠다는 승일씨를 오히려 말렸다면서요.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어요. 자기 건강 챙기기도 바쁜 아이가 모금을 하겠다고 다니는 게 싫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내 소견이 좁았어요. 동생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얼마나 큰 꿈을 갖고 있는지 몰랐지요.”
 
루게릭요양병원가 왜 필요한지 모르는 사람도 아직 많아요.
“동생은 루게릭병을 ‘가족을 말려 죽이는 병’이라고 해요. 병이 진행되면 끝내는 모든 환자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게 돼요. 폐 근육이 마비돼 숨을 쉴 수 없거든요. 24시간 간병인이 붙어 계속 가래를 없애주고 공기가 제대로 주입되는지를 지켜봐야 해요. 한순간을 놓치면 환자가 질식할 수도 있어요. 제대로 돌봐줄 사람이 없어 숨진 환자도 있고요.”
 
직접 재단 일을 맡게 된 계기가 있나요.
“동생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쭉 이어지지 않는 걸 늘 안타까워했어요. 신문이나 방송에 한번 나가면 뜨거운 관심을 받지만 그런 관심은 또 금방 식곤 하니까요. 누가 맡아 이 일을 해줬으면 하면서도 제겐 말을 못 꺼낸다는 걸 알았어요. 엄마가 ‘네가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하셔서 마음을 먹었어요.”
 
박승일씨 사연을 보도한 본지 2005년 11월 9일자 1면.

박승일씨 사연을 보도한 본지 2005년 11월 9일자 1면.

루게릭희망콘서트는 재단 대표 사업이 됐죠.
“슬픈 이야기를 꺼내면서 기부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지 않았어요. 환자들의 삶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어두운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도와 달라’고 하면 기부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무거워지니까요. 루게릭병을 정확히 알리되, 기부 활동 자체는 밝고 즐겁길 바랐어요. 초창기에 재단 일을 도와주던 친구가 집에서 몇 번 후원 음악회를 열어줬어요. 그때 루게릭병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이렇게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데 놀랐어요. 그래서 콘서트를 본격적으로 열게 됐죠.”
 
콘서트 출연진이나 규모가 보통이 아니에요.
“우리 재단은 ‘만남의 축복’을 받은 재단이에요. 지금까지 콘서트에 도움을 주신 분들은 연예인 분들을 빼도 100명이 넘어요. 포스터 제작부터 출연진 섭외, 공연 연출 등 거의 모든 공연 준비 과정이 재능 기부나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뤄집니다. 제가 ‘포스터를 만들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하면 누군가 포스터 디자인을 하는 분을 소개해주고, ‘다음 공연은 더 그럴듯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누군가 대형 공연 연출감독을 소개해주는 식의 기적 같은 일이 되풀이됐어요.”
 
출연하는 가수들은 어떻게 섭외하나요.
“재단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션 대표님이 도움을 많이 주세요. 번번이 기대기는 죄송해서 내가 직접 나서서 섭외한 분도 여럿이에요. 한 분 연락이 닿으면 그분을 통해 다른 분을 소개받는 식이에요. 무작정 연락을 드린 경우도 많고요.”
 
왼쪽부터 박상민, 비와이, 서문탁, 서현.

왼쪽부터 박상민, 비와이, 서문탁, 서현.

6년 동안 35억원을 모으다니 대단합니다.
“콘서트는 사실 모금에 큰 보탬이 되는 건 아니에요. 루게릭병을 알리고 우리가 꾸준히 이 일을 지속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더 큰 목적이에요. 모금에는 2014년 유행했던 ‘아이스버킷챌린지’가 큰 도움이 됐어요. 루게릭 환자의 고통을 체감해 보자며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100달러의 성금을 내는 릴레이 캠페인이었죠. 최근엔 쇼핑몰을 통해 도움 주시는 분이 많아요. 지난해 쇼핑몰에서 팔찌로 올린 매출액이 7억원 정도 됩니다. 자발적으로 착용 사진을 올려주시는 연예인들 도움이 컸어요.”
 
이번 콘서트는 마음고생이 심했다면서요.
“나라가 뒤숭숭해지면서 공연 업계가 다 어렵다고 해요. 원래 3000석 규모의 공연을 기획했는데 다 채울 자신이 없었어요. 기획을 다 해놓고 결국 1500석 공연장으로 바꾸면서 속이 많이 상했어요. 객석이 많이 비어 있으면 오시는 가수들께도 죄송하고 대관료도 큰 부담이 돼요. 무엇보다 휠체어를 타고 콘서트를 보러 오는 동생에게 늘 꽉 찬 좌석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35억원 중 기업 기부는 5억원 정도밖에 안 된다면서요.
“이번에 기업들이 K스포츠재단 같은 데 수십억원씩 내놨다는 기사를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긴 해요. 요즘 기업들에 도움을 부탁하면 ‘최순실 사태 이후로 재단에 기부하기가 어렵다’고 하죠. 저희는 그 전부터 도움을 거의 못 받았는데 말이에요. 우리 재단은 500원 사용한 것도 다 홈페이지에 알리기 때문에 시비에 휘말릴 일이 없을 거라고 얘기해도 홈페이지를 들여다 보려 하지 않아요.”
 
요양병원 건립 꿈은 얼마만큼 가까워졌나요.
“땅을 알아보고 있어요. 땅과 요양병원 건물까지 짓는 데 65억원 정도 예상되니까 기금을 반 넘게 모은 거죠. 올해 안에 부지를 사고 2019년까지 건물을 짓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해요. 지금까지 그랬듯이 어느새 꿈이 눈앞에 다가와 있을 것 같아요.”
승일희망재단 상임이사 박성자씨와 10회 공연에 참석하는 현진영·양동근씨(왼쪽부터). [사진 강정현 기자]

승일희망재단 상임이사 박성자씨와 10회 공연에 참석하는 현진영·양동근씨(왼쪽부터). [사진 강정현 기자]

[S BOX] 지누션·윤도현·양동근·현진영 … 뮤지션 80여 팀 무보수로 공연
거미·박정현·윤도현·지누션…. 승일희망재단이 여는 ‘루게릭 희망콘서트’에 참여한 뮤지션들이다. 2012년 12월 첫 공연부터 지난해까지 뮤지션 80여 팀이 무보수로 노래를 불렀다. 이들의 참여 덕에 첫 공연 당시 200명에 불과했던 관객 수는 최대 3000명(8회 공연 때)으로 크게 늘었다. 누적 관객이 1만1200명(1~9회)에 달한다.
 
최다 참여자는 승일희망재단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션이다. 9번의 공연 중 7번을 참여했다. 그는 승일씨가 쓴 책 『눈으로 희망을 쓰다』를 읽고 2009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요양병원 건립을 위해 2억원을 내놨고, 재단의 주요 행사마다 연예인 군단을 동원해 도움을 줬다.
 
힙합가수 타이거JK도 재단과 인연이 깊다. 타이거JK 역시 척수염이란 희귀병을 앓았기에 승일씨 처지에 공감했다고 한다. 박성자 상임이사는 “타이거JK 자신도 척수염으로 불편한 생활을 했지만, 승일이의 밝은 모습을 통해 삶의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며 “승일이가 쓴 ‘행복의 조건’이란 글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어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박성자 이사는 특히 기억에 남는 가수로 윤도현을 꼽았다. “무작정 편지를 써서 재단을 소개하고 출연을 부탁드렸어요. 매번 굉장히 빨리 답을 주시고, ‘불러줘서 고맙다’ ‘행복하다’고 여러 번 말씀해주시죠. 김제동씨, 박정현씨도 소개해주셨고요.”
 
힙합가수 양동근도 이번 공연이 세 번째 참여다. 본지와 만난 그는 “어릴 적부터 연예 활동을 하며 우울증을 자주 겪었다. 불편한 몸에도 항상 희망에 가득 찬 승일이를 지켜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며 “조만간 승일이를 위한 노래를 만들어 콘서트에서 부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루게릭 환자에 대한 평소 관심이 공연 참여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가수 현진영은 “10년 전 소음 분쟁을 겪던 이웃에 루게릭 환자가 살았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마음이 무거웠다. 이때부터 루게릭 환자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10회째인 이번 루게릭 희망콘서트는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열린다. 개그우먼 송은이의 사회로, 가수 박상민·비와이·서문탁·소녀시대 서현·션·양동근·현진영 등이 무대에 선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글=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사진=박종근·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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