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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회사에 들킬까 가슴졸이는 ‘투잡족’ … 일본처럼 규제 빗장 풀릴까

부업하는 직장인들의 애환 
연이은 행정고시 낙방으로 ‘늦깎이 취업’을 한 회사원 황민욱(가명·38)씨는 요즘 주말 과외에 열심이다. 고교생에겐 수학을, 취업준비생에겐 경제학을 가르친다. 고시를 오래 준비한 경험 등을 살린 것이다. 회사를 다니며 약 300만원의 월급을 받는 황씨가 과외로 버는 ‘추가 소득’은 매달 80만여원(1회당 10만원·총 8회). 월급의 20% 수준이다. 황씨는 “외벌이인 데다 두 자녀를 키워 벌이가 넉넉한 수준이라고 할 수는 없다. 회사에서 문제 삼을까 굳이 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계 지출 늘어 다양한 부업
고교생·취준생에게 과외 ‘경험형’
주말 웨딩 사진 촬영해주는 ‘취미형’
휴가 때 몸으로 때우는 ‘노가다형’

일본, 직장인 부업 전격 허용
저출산·고령화 따른 노동력 부족 탓
근로기준법·취업규칙에 규정 명시

한국, 부업 불허하거나 사전허가제
들키면 구두경고·정직·해고하기도
“최근 생계 보호 차원서 진보적 판결”

◆부업 뛰는 유형=황씨 사례는 직장인이 할 만한 대표적인 부업 유형으로 꼽힌다. 개인(과외교사·학부모)간의 약속으로 이뤄지며 자신의 지식을 전달해주는 식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소싯적 취미를 돈벌이로 탈바꿈시키는 유형도 있다. ‘취미형 부업’이다. 회사원 서모(31)씨는 매주 주말 신랑·신부의 웨딩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결혼식장을 찾는다. 전문 사진가만큼은 아니지만 대학에서 사진 동아리를 하며 갈고 닦은 촬영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진 촬영으로 버는 돈은 한 달에 적게는 60만원, 많게는 100만원이다. 월급(월 200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서씨는 “매주 휴일이 하루(일요일)밖에 없으니 생활이 고단한 건 사실”이라며 “여자친구와 결혼 준비를 위해 당분간 부업은 지속할 생각이다. 회사에서 퇴직하면 사진관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 자료: 안전보건공단(단위: 명)

※ 자료: 안전보건공단(단위: 명)

‘몸으로 때우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노가다(막노동)형’이다.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버는 임금(하루 평균 10만~13만원)이 제법 짭짤하기 때문이다. 휴가나 휴직 시 ‘반짝 돈벌이’를 노려 공사장 인부로 일하는 것이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막노동에 앞서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의 20~30대 이수자는 2013년 10만5000명에서 지난해 18만3000명으로 증가했다. 한국보건안전교육원 관계자는 “과거엔 막노동을 ‘3D 업종’으로 취급해 기피하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엔 잘 알려진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도 ‘생활비를 더 벌겠다’며 막노동 시장에 뛰어든다”고 귀띔했다. 부업을 목적으로 이 교육원을 찾는 수강생은 전체 수강생 60명 중 10명 안팎으로, 대부분 30대라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이 부업을 희망하는 이유로 생활비 부족(32%)과 수입 감소(17.4%)가 가장 많았다.
 
◆양극화 갈수록 심화=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월급 격차가 점차 벌어지는 점도 부업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생활비 부족도 있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한다”는 이유가 크다. 최근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 취업한 고여름(가명·31)씨는 서울 유명 로스쿨에 동시 합격했지만 끝내 기업행을 택했다. 또래에 비해 취업이 늦은 그는 “한 해라도 빨리 돈을 모으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그는 로스쿨 입학 포기 전 발급받은 학생증을 과외 제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인증’ 한다. 고씨는 “유명 로스쿨 학생증이 있으면 과외 교사로서 공신력을 증명할 수 있고, 과외비 흥정에도 유리하다”며 “적은 월급을 대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몰래 과외’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 대졸 정규직 직원의 초임은 2490만원으로 대기업 정규직 직원 초임(4350만원)의 57.2% 수준이었다. 전년도(62.1%)보다 더 낮아졌다.
 
※ 자료: 통계청(단위: 원)

※ 자료: 통계청(단위: 원)

직장인들이 부업에 뛰어드는 근본적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가계 지출 증가’를 꼽는다. 매년 임금 상승분이 덩달아 오르는 가계 지출 증가분을 크게 상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343만원이던 한국 근로자의 평균 근로소득은 지난해 422만원으로 23%가량 올랐다. 가계 지출도 317만원에서 367만원으로 16% 올랐다. 이인실(거시경제)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물가 상승 등의 요인으로 개별 가정이 고정 지출을 줄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부업을 통한 추가 소득이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부업 빗장 걷어낸 일본=만성적인 일손 부족 사태를 겪는 일본 정부가 직장인의 부업을 금지했던 빗장을 과감히 풀고 있다. 직장인의 겸업(부업)을 전격 허용한 것이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기업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일본 야후 등 외국계 기업은 경쟁 관계가 아닌 회사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겸업을 허용했고, 정보서비스기업인 리크루트홀딩스, 제약업체인 로토제약 등 일본 기업도 최근 자사 직원의 부업을 허용했다. 일하는 방식의 개혁이 추진되는 것이다.
 
많은 한국 기업은 취업 규칙을 통해 겸업을 불가하거나, 엄격한 사전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4대 기업인 삼성·현대차·LG·SK도 직원의 부업을 금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다른 기업도 부업 사실을 들킨 직원에겐 구두상 경고 등 경징계에서 정직·해고 등의 중징계를 내리기도 한다. 노무법인 유앤의 김성중 노무사는 “부업은 근로자가 사용자(회사)의 약속을 어긴 것으로 간주돼 중대한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 이직이 활발하고 경쟁이 심한 정보기술(IT)업계에선 동종업계에서 부업을 하다 들켜 해고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처럼 부업·겸업과 관련된 규정이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근로기준법이나 취업규칙 표준안에 명시되지 않아 근로자가 부업에 따른 징계 위기에 처해도 마땅한 구제 수단이 없다. 정홍석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과 서기관은 “겸업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진다면 근로자가 개별 소송 등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의 부업 허용 정책도 ‘권고안’ 성격이라 강제성이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판례를 살펴보면 부업·겸업에 따른 근로자 해고가 실제 소송으로 이어졌을 때 근로자에게 꼭 불리했던 건 아니다. 과거 서울행정법원은 부업으로 해고된 근로자의 소송 판결에서 “근로자가 다른 사업을 겸직하는 것은 근로자의 개인 능력에 따라 사생활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거나 “실질적으로 근로자가 겸업을 통해 (사용자와) 근로계약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라며 근로자 해고 사유를 한정했다. 법무법인 광장의 이상훈(인사·노무) 변호사는 “회사의 영업 비밀을 이용하거나 고객 정보를 무단으로 이용한다면 명확한 해고 사유로 근로자에게 불리한 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면서도 “최근 법원이 근로자의 생계 보호 측면에서 진보적 성향의 판결을 내리는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S BOX] 구글·페북 등 글로벌 기업, 직원의 부업 조건부 허용 추세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의 부업·겸업 관련 규정이 점차 완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 인구 고령화 등의 요인 때문이다. 이는 일본과 유사한 현상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나라의 재정 부족으로 공적 연금이 고갈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등 중산층과 서민의 노후 대비는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며 “약 10년 후엔 일본처럼 일손 부족에 시달릴 한국 기업이 앞장서서 겸업을 허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인공지능(AI) 출연 등의 요인으로 일자리 시장이 출렁이면서 일자리가 다양해질 것이다. 주업과 부업 간 경계도 허물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만약 택시기사가 근로시간 외에 대리기사로 일한다면 피로가 가중돼 본업에 소홀해질 것”이라며 “이는 명확한 성실 의무 위반이며 일반 직장인에게도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구글·페이스북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은 직원의 부업을 조건부로 허용하는 추세다. 구글은 검색기관과 안드로이드 OS 등 자사와 연관된 일을 하지 않고, 여가시간(free time)에 부업을 하는 조건으로 부업을 허용한다. 구글 관계자는 “헬스 강사로 일하는 미국 현지 직원도 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도 ‘부업 시 직무 관련성이 없어야 한다’고 자사 내규에 명시하고 있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한국 지사의 경우 국내 법과 환경을 감안해 부업 병행 직원에게 ‘리뷰 프로세스’(Review Process)를 거치도록 한다”고 말했다.
 
8년차 직장인 이모(31)씨는 “기업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대졸 초임부터 삭감한다는 뉴스를 자주 본다. 사정이 이런데 회사원을 본업에만 묶어두려는 기업들의 경직적인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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