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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이 씹어서 만든 술? '여고생 입 술'로 바꿨어요. '너의 이름은.'은 창작에 가까운 작업이었죠"

1990년대 말 일본영화 국내개봉의 물꼬를 튼 '러브레터'부터 최근 흥행신드롬을 일으킨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까지.
 

일본애니 흥행작 '너의 이름은.' 자막번역한 강민하
올 여름 개봉하는 더빙판 대본 작업도 맡아
'러브레터' 등 200여편 일본영화 자막번역
"창작물 번역은 인공지능이 대신 할 수 없는 일"

번역가 강민하(41)씨는 지금까지 200여편의 일본영화 자막을 번역했다. 실사, 애니메이션을 막론하고 극장에 걸리는 일본영화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이와이 슌지, 기타노 다케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미야자키 하야오, 호소다 마모루 등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꼭 그를 다시 찾을 정도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낸다는 평가다.
 
특히 그가 오랜 시간 공들여 작업한 '너의 이름은.'은 역대 일본영화 최고흥행작(364만 관객)이 됐다. 이전까지 일본영화 최고흥행작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301만 관객)이었는데, 이 작품 또한 강씨가 자막번역을 했다.
 
'너의 이름은.'은 관객 요청에 따라 더빙판이 만들어져 올 여름 재개봉한다. 서울 대치동의 한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조만간 더빙판 대본작업에 들어간다"며 "작업하기 힘든 작품이었지만 반응이 좋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크게 흥행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국내에서 크게 흥행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미국과 일본 등 해외 대작 애니메이션의 경우 국내개봉시 자막판과 더빙판이 극장에 함께 걸린다. 자막판이 큰 흥행을 한 뒤 관객들의 요청에 따라 더빙판까지 개봉하는 건 '너의 이름은.'이 첫 사례다.
 
'너의 이름은.'은 남녀 주인공의 몸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수차례 등장한다.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의 몸에 들어간 시골소녀 미츠하가 여성 언어와 사투리를 쓰면서 주변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식이다.  
 
강씨는 이런 부분을 번역하는 게 꽤 힘들었다고 했다. 우리말에는 일본어처럼 남성·여성 언어가 따로 있지 않기 때문. 고심 끝에 그는 자신을 객체화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화법과 겸양어를 사용했고,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강씨는 "의역이 아닌, 창작의 수준이었다"며 "사투리 자막은 진지한 장면에서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에 미츠하의 사투리도 표준어로 바꿨다"고 했다. '무녀(여고생)가 씹어서 만든 술'이란 대사를 '무녀(여고생) 입 술'로 바꾼 것도 재치있는 번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원래 일본어 대사에는 여고생이 입으로 씹어서 만든 술이란 걸 강조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한국 관객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는 판단에 '여고생 입 술'로 바꿨다는 설명이다.
 
그는 '너의 이름은.'을 작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세월호 코드'를 꼽았다. 영화 후반부 주인공과 친구들이 혜성 충돌사고를 막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는데, 주민센터가 주민들에게 '집에 그대로 있어라'라는 방송을 내보내는 장면이 있다.  
 
강씨는 이 부분을 번역하면서 세월호 사건을 연상했는데, 나중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국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아 그 부분을 대사에 그대로 넣었다"고 언급한 것.
 
그는 '혹시나' 했던 생각이 '역시나'로 바뀐 그 순간이 마음 한 구석에 깊게 각인됐다고 했다.
 
'너의 이름은.' 자막번역한 강민하 번역가

'너의 이름은.' 자막번역한 강민하 번역가

"일본 관객이 웃는 장면에서 한국 관객이 웃지 않는다면 잘된 번역이 아니죠. 영원히 남을 작품의 가치를 훼손하고 싶지 않기에 유행어는 쓰지 않습니다." 강씨의 번역 철학이다.  
 
그는 "원래 대사가 밋밋하다며 신파조로 만들어달라는 영화사의 요구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학생이었던 강씨는 97년부터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1년간 일본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한 그는 교환학생으로 간 일본에서 국내 영화주간지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영화의 매력에 눈을 떴다.  
 
이후 부산국제영화제 통역 등의 일을 하면서 전문 번역의 길로 접어들었다. 강씨가 자막번역한 작품이 극장에 걸린 건 '우나기'(1999)가 처음이다.
 
그는 "자막 번역도 글 쓰는 일이기 때문에 작가의 꿈이 결국 이뤄진 셈"이라며 "번역 일을 17년간 해왔지만, 지금도 일본어·국어 사전의 용례를 찾아보며 작업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러브레터'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고 했다. 영화의 명대사 '오겡키데스카'를 중의적인 의미의 '잘 지내십니까'로 번역했고, 이후 이와이 슌지 감독은 "나의 언어를 가장 잘 아는 번역가"라며 그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자막 번역·통역은 물론 자신이 쓴 소설『뱀파이어』 번역까지 부탁했을 정도다.
 
강씨는 자신이 작업한 영화 중 '기쿠지로의 여름'(기타노 다케시 감독)에 큰 애정을 갖고 있다고 했다. "엄마 찾아 길 떠난 아이의 눈을 통해 인간의 고독과 용기, 성장을 표현해냈다"는 게 이유다.
 
인기공룡 애니메이션 '고녀석 맛나겠다' 3편의 프로듀서로도 일하고 있는 그는 "콘텐츠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게 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영화 '심야식당 2'의 자막번역 작업을 마친 그는 올 여름 개봉하는 대작영화 '군함도'(류승완 감독)의 일본어 대사 자막 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강씨는 "아무리 번역 프로그램과 인공지능이 발달한다 해도, 문학 창작물의 언어문화적 차이까지 감안해 번역하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단언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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