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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김정은이 대화 상대라는 문재인

이정재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에서 안보는 경제와 이음동의어다. 단적인 예가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행적이다. 무디스·피치·S&P 실사단이 한국에 올 때면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있다.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다. 국정원엔 아예 담당자가 지정돼 있다. 수십 년간 북한을 들여다본 전문가들이다. 1년에 한 차례 정례 면담 때는 기획재정부 담당 사무관이 배석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3대 신용평가사의 주된 관심은 북한 리스크”라며 “한국 정부와 국민이 안보에 자신감을 갖고 충분히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지를 캐묻는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 재는 잣대는
북한에 대한 대응 의지”

지금까지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국정원의 설명은 3대 신평사 평가단을 만족시켰다. 수년째 한국의 신용등급은 오르고 있다. 이웃 중국·일본을 제쳤다. 국정원은 “한국은 안전하다”고 주장하기보다 수치와 데이터로 평가단을 납득시켜 왔다고 한다. 올해는 그러나 걱정이다. 한반도의 안보 지형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여기에 정권 교체에 따른 우려까지 겹쳤다. 국정 공백의 원심력은 대선이 치러지는 두 달 동안 더 커질 것이다. 오는 4~6월 신평사들의 방문 때 과연 안보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을 것인지 걱정이다.
 
그러니 경제 기자로서 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가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서 더 그렇다. “문재인이 당선되면 회사 접고 이민 가겠다”며 걱정을 털어놓은 중견기업주를 여럿 봤다. 지난주 문재인의 뉴욕타임스 인터뷰는 그런 걱정을 더 키웠다. 문재인은 “김정은을 북한 지도자로, 대화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문재인은 “김정남 암살에서 드러난 포악하고 무자비한 면은 결코 인정 못한다”고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북한을 압박·제재하든 대화하든 그 상대의 실체로서 김정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김정은은 자기 고모부를 총으로 쏴 죽이고 이복 형은 독가스로 살해했으며 말레이시아 국민을 단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억류했다. 김씨 세습 왕조의 독재 군주요, 조폭 두목이나 다름없다. 그런 김정은과 지금 대화하자는 건 칼을 목에 들이대고 “다 내놔” 윽박지르는 강도에게 “대화하자”는 것과 같다. 이 때의 대화는 “달라는 대로 주는 것”밖에 없다. 지금 왜 굳이 그런 말이 필요한가. 이중 잣대도 문제다. 박근혜씨를 몰아내자며 광장의 맨 앞자리에 섰던 문재인이다. “탄핵 안 되면 혁명뿐”이라며 압박했다. 김정은과는 대화를 말하면서 박근혜는 청산의 대상으로 몰고 있다. 왜 “북한 동포들이 시민 혁명으로 (김정은을) 몰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설마 박근혜의 잘못이 김정은보다 크다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이런 얘기에 대해 문재인 쪽 반응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또 종북몰이”라며 일축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주기 바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빨갱이’란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해 김종필의 손을 잡았다. 그토록 미워했던 ‘유신 본당’마저 끌어안았다. DJ의 가장 큰 치적인 외환위기 극복도 자유민주연합과의 연정을 통해 가능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이어간 동력도 여기서 나왔다. DJ가 설마 문재인만 못해서 JP와 손을 잡았겠나.
 
국민 절대 다수가 다음 대통령의 소명으로 안보와 경제를, 덕목으론 통합과 소통을 꼽는다. 누구보다 지지율 1위, 대통령 예약 1순위인 문재인이 솔선해야 할 가치다. 그저 통합과 치유, 안보와 경제를 말하기만 하면 된다. 그게 그리 어려운가. 적폐 청산, 친일 청산에 집착할 다른 이유라도 있나. 항간의 소문대로 ‘적폐·친일 청산’의 타깃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서, 고 노무현의 복수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도 되나. 진영 논리로 정권을 잡을 수는 있어도 통치는 할 수 없다.
 
3대 신용평가사는 한결같이 “한국 경제를 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안보”라고 말한다. 이들이 안보 불안을 재는 잣대는 딱 하나다. “북한의 위협보다는 남쪽이 어떻게 대응할지 입장과 의지가 중요하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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