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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하는 이유

박신홍중앙SUNDAY 차장

박신홍중앙SUNDAY 차장

새뮤얼 헌팅턴은 “신생 민주주의는 두 번의 정권교체를 통해 공고화된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그 기준을 통과한 지 오래다. 1998년 김대중 정부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한국 민주주의가 공고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됐거나 공고화됐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는 갖췄을지 몰라도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루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의 실질적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했다는 비판도 끊이질 않는다. 오히려 민주주의 이행과 공고화 단계를 넘어 ‘더 좋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 민주주의의 질을 어떻게 높일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부족할 시점에 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과거의 권위주의 행태로 되돌아가려는 모습이 국가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작금의 농단 사태를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라. 직장·학교·단체에서 수평적 관계와 민주적 토론 대신 위계와 강압이란 군사 문화의 잔재가 부활하고 있진 않은가. 힘이 곧 정의고 승자에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이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진 않은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척 애써 외면하며 영혼 없는 샐러리맨으로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
 
20세기의 저명한 정치학자 아담 셰보르스키는 현대 국가들의 비교 연구를 통해 1인당 국민소득이 6000달러가 넘는 국가는 민주화된 뒤 다시 권위주의로 회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사회과학 법칙마저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 무엇이 이처럼 퇴보와 회귀를 재촉하는가. 이념인가, 독선인가, 아니면 뿌리 깊은 권위의식인가.
 
역사적으로 시대적 역류의 파괴력과 후폭풍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반추해보면 오늘날 민주주의는 부단히 개혁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한순간에 무너져내릴 수 있음이 자명해진다. 마치 자전거는 바퀴가 멈추는 순간 쓰러질 운명에 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 민주주의가 두 번의 정권교체를 통해 공고화의 ‘문턱’에 다다랐다며 모두가 잠시 자전거 페달에서 발을 뗀 순간 이미 권위주의로의 회귀나 사이비 민주주의로의 퇴보는 예정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않으면 대신 기득권이 공고화되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논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이념·독선·사욕이란 덫에 걸려 꼼짝달싹 못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구조적으로 해방시켜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1987년 이후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민주화의 진정한 과제이자 넉 달여 동안 1600만 명이 들었던 촛불을 이어받는 길이다. 우리가 자전거 페달을 끊임없이 밟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신홍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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