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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의 긴가민가] 교보문고 23미터짜리 책상의 비밀

이번엔 책방 탐구다. 아래 그림부터 보자. 
뉴질랜드 출신의 교보문고 긴 책상

뉴질랜드 출신의 교보문고 긴 책상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을 주소지로 두고 있는 교보문고 매장 일부다. 여기 직원들은 다섯 가지를 꼭 지켜야 한단다.
 
1. 손님 누구한테나 친절허구, 쪼깐한 애기들한테두 꼭 존댓말 쓰구 
2. 한 자리에 오래 서서 책 읽는다구 뭐라 하지 말구 
3. 이 책 저 책 빼보기만 허구 안 사두 눈총 주지 말구 
4. 공책에 책을 베껴두 놔두구 
5. 책을 슬쩍해두 망신주지 말구, 눈에 띄지 않는 데 델구 가서 좋은 말루 타일러 보내야 혀 


돌아가신 신용호 창립자가 81년에 가게를 내면서 만들었단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의 쓰나미가 방파제를 넘어 마구 몰려오는 규칙이다. 


오라는 데 없어도 갈 데는 깔린 삽자루는, 심심하면 이 일대를 배회하며 한 달에 신상 대여섯 근은 입양한다. ‘책을 읽지 말자’는 가훈을 지키느라 그저 애완용으로 쓰니 오해는 마시고. 소매가로 책 한 근에 평균 1만5천 냥을 잡으면 다섯 근에 7만5천 냥이다. 이 엽전으로 칠성마트에서 철원오대쌀 20킬로 짜리 한 포대를 사면 1만4천냥이 남고, 막걸리 68통을 사도 거스름돈으로 600냥이 남고, 990냥짜리 콩나물을 사다 쟁여놓으면 4인가구가 일 년 내내 마르고 닳도록 끓여먹고 데쳐먹고 무쳐먹을 수 있으니 속이 아니 쓰릴 수는 없다. 


그러면 여기서 시 한편 공부하고 넘어가자. 제목 <긍정적인 밥>. 생산자는 함민복 아재.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 한 권이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가슴이 미어지고, 시야가 흐려지고, 목 메이게 전두엽을 후려치는 절창이다. 위인전에 올라가 마땅한 이런 형아가 국밥 자실 돈이 없다면 이게 나라냐. 내가 밥 두 사발, 탁배기 다섯 말, 콩나물 일곱 봉다리 못 먹어도 민복 형아가 배곯지 않고 시를 써야 나라가 흥하고 민족이 사는 법이다. 너도나도 책 사는 나라, 책으로 인테리어 하는 나라, 책 뜯어 벽지로 쓰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미래가 울울창창한 나라. 


어쨌거나, 이런 책들이 산처럼 서있고 바다처럼 누워있는 교보문고에는 눈 비비고 다시 봐도 무지막지한 책상이 있다. 그림 가운데,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저 길고 긴 책상이다. 


민쯩을 까보니 단군 할아버지보다 연식이 한참 높다. 가로 11.5m에 세로 1.5m~1.8m짜리이니 두 개를 붙이면 기럭지가 23m다. 몸무게는 약 1천600킬로그램. 80여명이 둘러앉을 수 있다. 


본적지가 뉴질랜드 북섬인 카우리 나무로 만들었다. 소나무의 5촌 당숙격인 나무다. 수천 년을 자라다 천재지변에 이단옆차기를 당해 늪지대에 5만년 동안 묻혀있던 나무다. 산소와 접촉이 차단된 덕에 원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는 믿거나말거나 전설 따라 카우리.


2015년에 광명세상을 만난 뒤 이태리로 가서 때를 빼고 새 옷을 입었다. 컨테이너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길이인 11.5m가 그대로 책상의 가로길이가 됐다. 귀한 몸이 된 카우리는 다시 배를 타고 9월 20일 부산항에 도착한 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11월 17일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이 할배 세계 유람을 제대로 한 건데 ‘오래 살고 볼 일’ 이라는 말은 이 나무의 인생역전에서 나왔다는 또다시 믿거나말거나 전설 따라 카우리. 


지난주 화요일인 7일, 현장에서 스케치를 하고 오후 4시 넘어 교보문고 대각선으로 건너편에 있는 동화면세점 쪽으로 나오는데 주위가 시끄러웠다. 선거유세 때 돌아다니는 트럭이 서있고 대형스피커에서 군가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이 지긋한 분들 오십여 명이 열심히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쌀쌀한 날이었다. 무슨 얘기들을 하나 들어보려고 주위를 기웃거리는데 아니 저 앞에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손을 호호 불며 달달 떨고 있는 기자, JTBC를 광내고 있는 신진 언냐 아닌가. 


나: 날두 찬데 고상이 많어유 
신: 추워요 엉엉. 
나: 여기 분덜이 뭔 연설을 하는 건지 궁금허구먼유 
신: 그래서 저녁 뉴스에 쓸 멘트 따려고 하는 중이에요 
나: 저분덜이 거시기 허니 성에 안 차는 방송이라구 해꼬지는 안혀유? 
신: 오늘은 그러지는 않네요 
나: 근무중 이상무로 계속 근무혀유. 나도 또 일하러 가야 허니 
신: 추워요 엉엉 


그렇게 이별을 하고 덕수궁 앞을 지나오는데, 그때서야 따신 커피 한 사발 들려주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정하고 매정하고 눈치도 코치도 없는 삽자루. 신진 언냐 미안, 아자씨가 좀 모지라. 


그림·글=안충기 기자 newnew9@joongang.co.kr
안충기 긴가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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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