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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女의 반복되는 운명, 박정희 때도 하야권고안 발의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10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탄핵당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습니다.
탄핵이 인용된 경우는 처음이지만 역대 대통령 가운데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경우가 네 차례 더 있었습니다. 이승만ㆍ윤보선ㆍ최규하 전 대통령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굴욕적 대일외교와 금융특혜, 대통령 책임”
기록물로 살펴본 역대 대통령들의 탄핵과 하야

 
박정희 전 대통령 때는 국회에서 하야권고결의안이 발의됐습니다. 결의안은 폐기됐지만 박 전 대통령은 피격 당하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게 됩니다. 탄핵소추안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발의됐습니다. 
 
하야와 탄핵을 추진하는 과정에 남아있는 기록물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대한민국 첫 대통령이자 끝까지 임기를 마치지 못한 첫 대통령이기도 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야성명에서 “국민이 원하는 것만 알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할 것이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계기로 국회도서관 국회기록보존소가 공개한 역대 대통령의 하야·탄핵과 관련된 기록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1~3대, 1948.7.24~1960.4.26)
 1960년 3월 15일 대통령선거 때 여당(자유당)과 정부가 조직적으로 부정선거를 감행하면서 전국적으로 부정선거 규탄 데모가 벌어졌고 4 · 19혁명이 발발하였습니다. 4월 26일 이승만은 결국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하와이로 망명합니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성명」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 와서
우리 여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내 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만 알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할 것이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중략」...
첫째는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다.
둘째는 지난번 정부통령 선거를 많은 부정이 있었다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고,
셋째는 선거로 인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애게 하기 위하여
이미 이기붕 의장이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겠다고 결정하였다.
넷째, 내가 이미 합의를 준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하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
...「이하 생략」
 
 
1960.4.26 「시국수습에 관한 결의안」가결
一. 이승만 대통령은 즉시 하야할 것
二. 3.15 정ㆍ부통령선거는 무효로 하고 재선거를 실시한다.
三. 과도 내각 하에 완전내각책임제 개헌을 단행하고,
四. 개헌후 민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한다.
 
 
1960.4.27 이승만 대통령 국회에 사임서 제출
 


「이승만 대통령 사임서」
 
나 리승만은 국회의 결의를 존중하여
대통령의 직을 사임하고 물러앉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여생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바치고자 하는 바이다.
단기 4293년 4월 27일 리승만
[출처 : 대통령기록관]
 
하와이 망명길에 오른 이승만 대통령.

하와이 망명길에 오른 이승만 대통령.

 
 
▶윤보선 대통령 하야(제4대 대통령, 1960. 8.13~1962.3.22)
1960년 4ㆍ19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붕괴된 후 새롭게 집권한 민주당은 내각제 하에서의 대통령과 총리 자리를 둘러싸고 신파(新派)와 구파(舊派)간에 갈등이 빚어집니다. 구파의 대표였던 윤보선은 결국 신ㆍ구파의 협상에 의해 1960년 8월 12일 실시된 양원 합동회의에서 재적 259석 중 208표를 얻어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됩니다. 하지만 구파와 신파는 국정운영 과정에서 대립하였고, 1961년 5ㆍ16군사정변이 발생합니다. 윤보선 대통령은 군부세력과 갈등을 빚으며 5월 19일 하야를 선언했다가 다음날 번복했지만 결국 1962년 3월 22일 하야 성명을 발표하게 됩니다. 
 
 
1962. 3.21「대통령(윤보선)사임허가의 건」
사정에 의해서 본인이 대통령직을 사임코저 하오니
처리하여 주심을 요망합니다.
1962년 3월 21일 윤보선
 
 
 
 
1962.3.22 윤보선 대통령 하야성명
 
「윤보선 대통령 하야성명」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오늘 대통령직에서 완전히 물러날 것을
성명하는 바입니다.
원래 덕이 없는 이 사람이 국가원수 직에 있었던
19개월 동안에 일어났던 모든 일에 대해
나는 그 책임을 느끼는 바입니다.
...「중략」...
군사혁명 이후, 나는 한때 대통령직에서 물어날 결심을
한 바 잇으나 이 뜻을 꺾고 그대로 머무르고 있었던 것은
나의 개인의 생각보다 국가장래의 형편을 보아야겠다는
뜻 이외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중략」...
한 가지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정치정화법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군사정권과 정치정화법에 관해 생각을 달리했던 것도
이로 말미암아 인화단결을 저해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하생략」
 
 
1962년 3월 22일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안국동 사저로 돌아가는 윤보선 대통령.

1962년 3월 22일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안국동 사저로 돌아가는윤보선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하야권고결의안(제5~9대 대통령, 1963.12.17~1979.10.26) 
서슬퍼런 군부정권인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국회에서 하야권고결의안이 발의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신문기사(동아일보 1965년 3월 19일자)의 보도는 이렇습니다. 
 
「민정당은 19일 하오 ‘박정희 대통령 하야권고 결의안’을 국회에 제안했다. (중략) 양회수 민정당 원내부총무는 성명을 내고 “대일굴욕외교에 대한 매국적 행위는 차치하고라도 특혜금융이 현정권의 최고 책임자인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지시로 이뤄졌음이 확증되어 ‘대통령하야권고 결의안’을 제안했다”고 밝히고 “이러한 국민을 대변한 야당의 의사와 결의를 무시하고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르는한 국민의 이름으로 헌법절차에 의한 탄핵소추를 제의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1966년 2월 15일 폐기되었지만 박 대통령은 1979년 10·26 사태 때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의 총탄에 피격되면서 임기를 끝마치지 못하게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하야권고결의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하야권고결의안.

 
1965. 3 16.「대통령 하야권고결의안」
[주문]
대일굴욕흑막외교에 대한 매국적인 행위는 차치하고라도
금융질서를 유례없이 파괴시키면서까지 감행된
위규편타대출, 한도외대출, 편중대출 등은
현정권의 최고책임자인 박정희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사실이 확인되었으므로
대통령하야 권고를 결의함
 
 
▶최규하 대통령 하야(제10대 대통령, 1979.10.26~1980.8.16)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사망하자 당시 최규하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12월6일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그러나 12월12일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정변을 일으킨 신군부는 하야를 압박했고, 최 대통령은 1980년 8월16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납니다.
 
 
1979년 8월 16일 하야 성명을 발표하는 최규하 대통령. [출처=e역사영상관]

1979년 8월 16일 하야 성명을 발표하는 최규하 대통령. [출처=e역사영상관]

 
「최규하 대통령 하야성명」
...「중략」...
평화적 정권이양의 선례를 남기며
또한 국민모두가 심기일전하여 화합과 단결의 바탕위에
안정을 기하고 정의를 바탕으로 한
밝은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오늘 중대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국익에 우선하여
임기전에라도 합헌적 절차에 따라 정부를 승계권자에게
이양하는 것도 확실히 정치발전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내가 대통령직을 사임하더라도
국가운영에 차질을 주거나 국가안정이 흔들리지 않고
국정이 운영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의 이같은 충정과 결심을 이해할 것으로 기대하며
내가 비록 야에 있더라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심에는 변함이 없음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바입니다.
...「이하생략」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제16대 대통령, 2003.2.25~2008.2.24)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첫 대통령입니다. 임기 개시 1년여 만인 2004년 3월12일에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 등 야당 국회의원 193명의 찬성으로 소추안이 가결됩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탄핵안을 기각합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퇴임 직후 ‘박연차 게이트’로 대검 중수부의 수사 대상이 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2004.3.9 「대통령(노무현)탄핵소추안」
 
[탄핵소추 사유]
노무현 대톨령은 헌법과 법률을 수호해야 할
국가원수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특정정당을 위한 불법선거운동을 계속해 왔고
이로 인해 2004년 3월 3일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을
위반했다는 경고조치를 받았고
...「이하생략」
 
  
 
2004.03.12 박관용 국회의장, ‘국민께 드리는 말씀’ 발표
 
 

 
 
▶박근혜 대통령 탄핵(18대 대통령, 2013.2.25~2017.3.10) 
 
2016년 12월 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됨.  

2016년 12월 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됨.

 
[탄핵소추 사유]
...「중략」...
헌법 제65조 제1항은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게 그리고 중대하게 위배하였다.
...「이하생략」
  
10일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을 결정했다. 조문규 기자

10일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을 결정했다. 조문규 기자

12일 오후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 도착한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12일 오후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 도착한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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