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예리JTBC 보도제작국장밤샘토론 앵커
탄핵당한 대통령도 트럼프도 회견 꺼리고 취재 막아
오바마는 “기자들 질문이 나를 열심히 일하게 했다”
남들 눈엔 자칫 위험해 보일 수 있는 게임을 굳이 시작한 이유는 격의 없는 소통을 위해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상명하복과 일방통행식 서열 문화는 언론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회사 선배가 어려워 말문이 막힌다면 과연 살벌한 취재 현장에서 겁 없이 날 선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던 거다. 나 역시 초짜 기자 시절엔 처음 보는 취재원 앞에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선배들이 해준 얘기를 주문처럼 되뇌곤 했다. “기자란 질문하는 게 직업인 사람이야.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걸 대신 물어보고 답을 들어 알려주는 사람. 그러니까 좋은 기자란 바로 질문을 잘하는 기자야.”
때로 서슬 퍼런 권력자를 상대로 심기가 불편할 게 뻔한 질문을 과감히 던질 수 있었던 것도 그게 내가 하는 일의 본령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새 기자들이 밥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이 이젠 전직 대통령이 된 바로 그이다. 웬만해선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한다 해도 질문을 받지 않고, 받는다 해도 미리 짜고 치는 것만 받았으니 말이다. 기자들 질문만 가로막힌 게 아니다. 최측근 참모였던 소위 ‘왕실장’조차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 “여성 대통령이라 결례가 될까 묻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렇듯 숱한 의문점을 아무도 제대로 따져 묻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을 불러온 것 아니겠나.
각종 논란으로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탄핵설이 나도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질문 기피 행태 역시 도를 넘는다. 부동산 재벌 시절 입맛에 맞는 기사만 딱딱 써주던 타블로이드 신문만 접하다 보니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판 기사를 도무지 참아내기 힘든 모양이다. 뉴욕타임스와 CNN 등 유수 언론에 ‘가짜 뉴스’ ‘국민의 적’이란 딱지를 붙이더니 콕 집어 브리핑 참석까지 막으며 재갈 물리기에 나섰다. 트럼프 취임 후 백악관 대변인이 첫 회견에서 질문을 일절 안 받질 않나, 국무부가 매일 하던 기자 브리핑을 두 달째 기약 없이 중단하지 않나…. 요즘 미국을 보면 언론 자유 선진국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자꾸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지만 전임자인 오바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다. 퇴임을 앞둔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그는 "여러분의 날카로운 질문이 나와 백악관 참모들을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게 만들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결코 권력자들을 순순히 봐줘선 안 된다. 언론이 비판적인 눈으로 감시해야만 그들은 비로소 권력을 쥐여준 시민들에게 책임을 다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정보로 무장한 시민(well-informed citizenry) 없인 돌아가지 않는다. 언론은 권력자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려주는 정보의 전달자가 돼야 한다.” 참담한 탄핵 사태를 겪고 나서 다시 보니 구구절절 폐부를 찌른다.
이 나라가 또다시 같은 불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많은 것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들 한다. 그래서 나부터 다짐해 본다. 앞으론 어떤 경우에도 굴하지 않고 외치겠다고. "질문 있습니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밤샘토론 앵커